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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가 뭐예요? 이미향(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눈을 뜨면 새로운 기계가 나타나는 세상이다. 전자 장비가 발달하면서 사람을 대신하여 일하는 기계가 더욱 늘었다. 기차역이나 식당, 전시장 등지에 사람인 양 이용자를 맞이하는 기계가 있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 표를 사거나 주문하는 이것을 흔히 키오스크(kiosk)라고 부른다. 최신 장비는 아니나 전염병의 확산세 가운데 비대면 접촉이 선호되면서 사용량이 급성장한 기기 중 하나이다. 그림 1.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키오스크. 주로 무인 ○○기로 바꿔쓸 수 있다. 우리는 키오스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을 이르는 말인지, 어디에서 온 말인지는 잘 생각해 보지 않는다. 여러 사전을 찾아보면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라고 공통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터치스크린 방식을 사용’한다거나 ‘정보·통신 키오스크 단말을 이용’한다는 설명이 덧붙어 있다. 그렇다. 무인 안내기 중에서도 터치스크린을 사용하는 신문물을 부를 때 우리는 특별히 키오스크라고 한다. 이 말이 매우 낯설지만 마땅히 대체할 이름이 없다. 사전에서조차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휘의 보물 창고라는 사전이 아직 감당해 내지 못한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키오스크라는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려보자. 키오스크는 설치된 장소에 따라 하는 일이 다양하다. 기기의 기능에 따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표를 팔면 무인 발권기, 물건을 팔면 무인 판매기, 정보를 안내하면 무인 안내기와 같이 써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100년 전과 모양이 바뀌어도 모자는 여전히 모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익숙한 말이 새로운 대상을 충분히 지시할 수 있다. 새로운 문물에는 꼭 기발한 새말을 만들어 붙여야만 하는가? 신기술이 들어간 문물을 유독 외국어로 부르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키오스크(kiosk, kiosque)는 궁전을 이르는 페르시아어 ‘쿠슈크(kushk)’에서 유래되었다. 그 흔적이 남은 터키어 ‘쾨슈크(köşk)’는 작은 여름용 별장 또는 정원에 건축된 작은 누각을 이른다. 이후 키오스크는 그러한 모양으로 지은 간이 건축물을 이르게 된다. 20세기 초, 사람이 잘 모이는 길목이나 광장에 앞면이 열린 작은 가게들이 문을 열고 신문이나 잡지를 팔았는데, 이러한 간이 건축물을 키오스크와 닮은꼴로 여긴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키오스크는 한 번 더 의미를 갈아입는다. 정보화 사회의 기세를 타고, 사람 없이 정보를 제공하거나 업무를 자동으로 수행하는 기계를 부르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림 2. 20세기 초부터 간이 건축물에 설치한 상점을 키오스크라고 불렀다. 키오스크는 여전히 유동 인구가 많고 개방된 장소에 설치된다. 상품 정보와 시설물을 안내하는 동시에 광고도 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를 설명한 어떤 사전에든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이라는 설명이 함께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키오스크가 공공성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것은 주로 식당, 버스터미널, 지하철, 관공서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다. 그러면 과연 키오스크는 대중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 공공장소에 세워둬도 될 만큼 대중의 공익에 이바지하고 있는가? 키오스크에는 온갖 외국어가 도배되어 있다. 셀프 오더, 테이크 아웃, 솔드 아웃, 사이즈 업, 더블샷, 사이드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온통 외국어로 적혀 있는데도 항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더욱 놀랍다. 최신 문물은 응당 외국어로 되어 있다는 뜻인지, 이용에 서툰 사람으로 보이기 싫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기계 앞에서 헤매는 사람은 굳이 연로한 분들만이 아니다. 분야가 조금만 달라지면 누구든지 소외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개발되는 키오스크가 유독 비용 절감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비용상 일어나는 문제 이외의 것은 문제로 여기지 않고, 그저 감내할 불편 정도로 여기고 만다. 사회 분열과 세대 간 소통 단절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앉는다. 공공이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어떤 이는 정보를 소유할 권리를 두 배로 가지고, 어떤 이는 정보를 얻지 못해도 되는가? 신문 기사를 보니, 요즘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사용법을 익히는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같은 버튼을 여러 번 누르다가 햄버거 8개를 받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실습용 키오스크, 키오스크 활용 수업, 키오스크 디자인’과 같이, 하소연을 하는데도 여전히 키오스크라는 말이 쓰이기 때문이다. 통합과 소통을 외치는 시대이다. 소수가 알아듣는 말은 옹알이에 불과하다. 한국의 정보 통신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데, 전자 장비에 한국말이 들어갈 수는 없는가? 공공성이 깃든 좋은 말을 고민하다 보면, 현명한 언중이 사전의 빈칸을 메워 내는 날이 올 것이다. 이미향(영남대학교 교수) 영남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한국일보 사설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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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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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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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 ‘센터’를 선호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특별한 기능을 담당할 신규 조직이나 공간을 마련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업무 중 하나가 거기에 해당하는 명칭을 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명칭은 담당 주무관이 자의적으로 짓지 않고 이해가 걸린 주민을 대상으로 공모, 선호도 조사 등 공개 과정과 최종 결재권자의 낙점을 거쳐 결정된다. 그래야 주민, 의회 의원 등이 “명칭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라고 따지더라도 ‘주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임을 들어 비난이나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주민 공모, 선호도 수렴을 거친 결과를 보면 우연이겠지만 이상하게 ‘센터’가 많이 선정된다. 자원봉사센터, 데이케어센터, 장애인복지센터, 모자보호센터, 위기가정구호센터, 청소년자치센터 등등이 모두 그렇다. 조직이 방대하지 않고,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담당할 경우 센터가 가장 흔하게 쓰이고 있어 익숙하고 무난한 이유도 있겠지만 필자 생각에는 전혀 엉뚱한 이유도 하나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림 1. 해당 공간 운영 책임을 맡을 인력 중 최고 책임자 호칭은 공간 이름을 따라가는 것이 관행이다. 가령 남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보호하고, 관광객에게 그것들을 알릴 목적으로 남산 자락에 서울시가 조그만 건물을 새로 마련해 민간단체에게 운영을 위탁할 경우 건물 명칭은 대개 ‘남산식물전시관, 남산식물연구원, 남산식물보호소, 남산식물알림터, 남산식물센터’ 같은 고만고만한 이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해당 공간 운영 책임을 맡을 인력 중 최고 책임자 호칭은 공간 이름을 따라가는 것이 관행이므로 ‘관장, 원장, 소장, 센터장, 터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데 ‘관장, 원장, 소장’은 주무관이 편히 다루기에는 어감이 좀 높은(?) 사람이다. ‘센터장’은 상대적으로 다루기 편한 어감이고, ‘터장’이란 호칭은 쓰이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000센터’가 많은 것이 아마도 이런 연유도 한몫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러한 사실은 몇 번의 명칭 선정 과정에 관여했던 필자의 개인적 촉이자 느낌일 뿐 과학적 연구나 면담 결과가 아니므로 엉터리 주장일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란다. 센터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직위 호칭으로 ‘매니저’가 있다. 대개 센터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공간인데 명칭에 센터가 붙지 않았을 때, 해당 공간의 운영과 관리를 총괄하는 책임자에게 ‘매니저’라는 호칭이 애용된다. 매니저는 ‘관리인, 관리자’인데 ‘관리인’은 ‘건물 관리인’ 정도 어감이라 콘텐츠(?)가 빈약하고, ‘관리자’는 너무 일반적이라 호칭으로 적당치 않다. ‘매니저’라고 부르면 그나마 좀 있어 보인다. 만약 ‘데이케어센터’ 대신 ‘주야간보호터’라는 명칭으로 변경을 검토할 경우 해당 공간 책임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부터가 어려운 결정이라 기각될 확률이 높고, 변경이 된다면 책임자는 필시 ‘터장’ 대신 ‘매니저’라고 불릴 확률이 높다. 공공기관에서 쉬운 우리말 대신 어려운 외국어를 굳이 쓰는 데는 마땅한 대체어가 없거나 왠지 외국어를 써야 주민 호감도가 높아질 것 같은 언어 사대주의 말고도 ‘담당 주무관의 기분이나 자존감’ 같은, 생각지 못할 엉뚱한 이유들도 있다고 필자는 강하게 의심하는 것이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관악구청 청년정책과 구로구청 구정연구관 ‘최보기의 책보기’ 연재 서평가 저서 『거금도 연가』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 『박사성이 죽었다』 『독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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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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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줄임말, 암호와의 전쟁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소확행. 여러 번 들었음에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아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말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해보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가족의 품평을 들어가며 함께 저녁을 먹는 풍경이라면 코로나 시국이든 아니든 ‘소확행’이라고 할 만하다.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젊은 날부터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면 이건 내게 ‘소확행’임에 분명하다. 처음엔 너무 낯설어서 당혹스럽더라도 줄임말의 뜻과 용법에 익숙해진다면 마치 하나의 새로운 어휘를 얻는 기분이 들 수 있다. 줄임말은 이런 강점이 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직접 사용해 보고 싶어진다. 그런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말들은 생명력이 긴 법이니, 밀당, 꿀잼, 가성비 같은 새 줄임말들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우리의 말 줄이기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전경련’으로 줄이는 식의 한자어 위주 문화였는데, 21세기 들어서는 일상의 토박이말에서도 과감하게 어근만 떼어내거나 앞대가리 말만 떼어내 말을 줄여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즐감, 내로남불 등이 그런 사례이다. 새로운 느낌이나 문화, 사회 현상, 개념, 기술, 이론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말이 필요한데, 완전히 낯선 새말보다는 기존의 말을 묶어 복합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은 길어지기 쉬우니 앞머리만 끌어내어 줄이는 게 가장 초보적인 새말 만들기 방법일 터이다. 달리기를 하며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일이라는 뜻의 ‘플로깅’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쓰레기 주워 담으며 달리기’로, 이걸 줄여서 ‘쓰담 달리기’로 줄인 것이 하나의 사례이다. 외국어 사용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간단하게 ‘줍다+조깅’의 방식으로 ‘줍깅’을 쓰기도 한다. ‘쓰담 달리기’도 ‘쓰담달’로 더 줄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말 줄이기는 경제성이라는 명분, 아니 실리가 작동하여 벌어진다. 지면에 길게 쓸 공간이 없으니 줄인다, 말을 길게 할 시간 여유가 없으니 줄인다, 길게 말하고 쓰려면 힘이 드니 줄인다, 생각의 진행에서 방해받지 않으려면 덕지덕지 늘어지는 말보다는 날씬한 말이 편하니 줄인다, 문자 위주의 대화 환경이 득세하니 길게 쓰기 힘들어서 줄인다. 모두 납득할 만한 사연이다. 물론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거나 그 줄임말을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동네 사람들이 처음에 당황하고 대화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오해와 혼란이 생길 수 있기에 이런 줄임말은 공식적인 문화로 자리 잡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국민의 안전과 재산, 권리와 의무, 기회와 행복을 다루는 공공언어에서는 매우 신중하게 도입해야 한다. 우리말 줄임말이 비교적 생활문화 속 유행에 따른 일상어가 많다면, 로마자 줄임말은 사태가 좀 다르다. 요즘 텔레비전 뉴스에 자주 들리는 말이 오티티(OTT)이다. 넷플릭스와 드라마 ‘오징어 게임’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전통적인 텔레비전 송출―방영권 계약―타국과 타 지역 텔레비전 가입자에 대한 제한적 송출 등 과거의 드라마 유통 수출입 방식과는 다른 인터넷을 이용한 전 세계적 송출을 뜻하는 말처럼 들리긴 했다. 그런데 이놈의 말이 도무지 추정이 쉽지 않았다. ‘on the ...’에 ‘tv, table, target, tablet ?’ 아무리 생각해도 뜻과 구성이 닿지 않는 말이었다. 정답은 ‘over the top’이란다. 이때의 ‘top’은 셋톱(settop)의 톱에서 따온 것이란다. 아마도 셋톱 장치를 통해 제공하는 것으로 한정된 서비스를 넘어선다는 뜻인가 보다. 외국어를 철자 대가리만 떼어내서 짧은 용어처럼 줄여 쓰거나 부르는 방법은 이미 외국에서 많이 써왔다. 기업 이름으로서는 IBM이 낯익고, 국제기구로는 UN, OECD, WTO, WHO가 매우 낯익으며, IMF, FDA, NASA와 같은 기관들도 그렇다. 이런 조직 이름 말고는 주로 정보통신 분야에서 새로 등장하는 기술과 현상 이름에 로마자 줄임말을 가장 많이 쓴다. 새로운 기술과 영역과 흐름의 융복합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SW, HW, PC, DOS, TFT LCD, TCP/IP, HTML, SNS, AI, VR, AR 등 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정보통신 분야의 문제만은 아니다. 업무 관련한 활동을 가리키는 말 가운데에도 로마자 줄임말이 제법 쓰인다. 연구개발을 뜻하는 R&D, 전담 조직을 뜻하는 TF, 업무협약을 뜻하는 MOU 등이 대표적인 말이다. 사업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지식 재산권은 IP, 기업 투자설명회는 IR, 창업투자사는 VC로 부른다. 언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무원들이 보도자료 등의 공문서에서 이런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어 적지 않고 로마자 그대로 적어버리면 사실은 실정법인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는 일이다. 법 조항은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라고 정하였다. 여기서 ‘한글’이라는 문자로 작성하여야 한다는 뜻은 로마자나 한자로 적지 말라는 말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이 분명한 규정이다. 물론 법에서는 예외를 생각하여 꼭 필요한 경우엔 괄호 속에 한자나 외국 글자를 병기할 수 있게 허용한다. 그러니 괄호 속에 적지 않고 본문에 그냥 적은 로마자는 국어기본법 위반 요소인 것이다. 공무원들이 작성한 보도자료에서 한자나 외국 글자를 본문에 그대로 쓰면 언론에서도 그대로 나가기 쉽다. 특히나 신문의 제목 공간과 텔레비전의 자막 공간은 좁기 때문에 로마자 줄임말 좀 쓰면 어떠냐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문자 사용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로, 앞의 오티티 사례에서 보았듯이 로마자 줄임말만으로는 전체 뜻 구성을 추정하기 어렵다. 비슷하게 모호하여 답답한 사례가 ‘ASF’라는 줄임말인데, 이건 아프리카돼지열병을 가리킨다. 신문 제목에서 자주 보는 이 말을 일반 국민 97%가 어렵거나 전혀 모르겠다고 한다. 2021년에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티앤오 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27.7%는 ASF를 전혀 모른다고 했고, 70%는 어렵다고 응답했다. 둘째로, 철자는 동일한데 원어가 다른 말들이 계속 생겨난다. 대표적인 예로, ‘AI’는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IP’는 지식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과 인터넷 접속 주소(Internet Protocol), ‘IC’는 나들목(Interchange)과 구동칩(Integrated Circuit), ‘PM’은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와 사업 관리자(Project Manager) 따위로 헷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로마자 줄임말을 정부 공무원들과 언론에서 자주 사용하다 보면 우리말에서든 외국어에서든 줄임말 사용 경향이 지나치게 강해질 위험이 있다. 이는 공공 차원의 소통에는 분명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말은 모두 우리말로 바꾸어 한글로 적도록 애써야 소통이 편해진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적기에 너무 길다면 우리말 줄이는 방식으로 과감하게 줄이는 게 그나마 로마자 줄임말보다는 의미를 추정하기에 쉽다. 예를 들어 ‘OECD’를 ‘경제협력개발기구’로 바꾸어 쓰는 게 너무 길다고 느낀다면 ‘경협기구’로 줄이라는 제안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에도 너무 길거나 말 만들기 쉽지 않다면 음을 따서 한글로 적는 방법이라도 써야 한다. 예를 들어 ‘UNESCO’는 ‘유엔교육과학문화위원회’인데, 줄이기도 마땅치 않으니 이럴 때는 로마자로 적지 말고 한글로 ‘유네스코’라고 적으라는 것이다. 공무원과 언론에서 일반 국민에게 암호와의 전쟁을 강요할 까닭이 없다. 이 글은 한국어문기자협회 소식지인 <말과 글>에 기고하였습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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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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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 장애인 차별하는 말 소준섭(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블라인드 채용? 차별을 없애자면서 왜 차별어를 쓸까? ‘블라인드 터치’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나 워드 프로세서에 키보드로 입력을 할 때 자판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손가락 끝의 감각에만 의지하여 자판을 두드리는 기법을 말한다. 그런데 영어 단어 ‘blind’는 “눈이 부자유한”이나 “눈이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시각 장애인’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차별 언어’이다. 더구나 이 말은 ‘브라인도 탓치(ブラインドタッチ)라는 일본식 영어에서 온 말이다. 이러한 차별어는 당연히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림 1. ‘블라인드’는 차별어이자 일본식 영어 표현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비슷한 용법으로 ‘블라인드 채용’이란 용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지원자들이 이력서에 차별당할 수 있는 사항들을 기재하지 않은 채로 시험과 면접을 치를 수 있는 채용 방식을 뜻한다. 이러한 ‘블라인드 채용’은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한 차별’을 없애고 공정한 채용을 실천한다는 명분으로 널리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블라인드, blind’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차별 용어’에 속한다. 차별을 없앤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채용 방식에서 정작 ‘차별어’를 사용하는 현상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용어를 널리,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장애인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에서 차별 용어를 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은 마땅하다. 이렇듯 일본식 영어 남용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산업 동향 보고서에서 “미국 거대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플랫포머로 미래차 시장 지배 전략을 모색 중”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포머는 반도체, 소프트웨어에서의 독보적 경쟁력을 갖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기업들을 의미한다(2021년 9월 28일). 최근에 발행된 한 언론 기사의 내용이다. 이 글에 나오는 ‘플랫포머’는 일본에서 최근에 만들어진 용어다. 즉, ‘플랫포머, platformer’는 정보 전달이나 사업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사업자 또는 인터넷에서 대규모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대 정보통신 기업을 지칭한다. 상당한 공신력을 지닌 연구원의 보고서에서 일본식 용어를 ‘보급’하는 셈이다. 이렇게 일본식 영어 남용 현상은 단순한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는 현재형이다. 프랑스 헌법 제2조, “프랑스의 언어는 프랑스어로 한다.” 프랑스어는 이 지구상에서 우아하고 고상한 언어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프랑스어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 헌법 제2조에는 “프랑스의 언어는 프랑스어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공적 영역에서 공용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도록 국민에게 강제하는 규정이다. 대중 매체를 포함한 모든 공식 문건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신조어는 언어의 규범화(codification)라는 목적으로 세워진 국가 언어정책 기구인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1972년 용어 및 신조어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부 각 부처에 반드시 전문용어위원회를 설치하고, 새로 유입되는 외국어에 적절한 번역용어를 지정하거나 새로 출현한 물건이나 개념을 지칭할 단어를 제정하는 등 관련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프랑스 헌법 제2조, “프랑스의 언어는 프랑스어로 한다.” 언어란 한 나라의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적 구성 요소이다. 우리말을 소중히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엄중한 임무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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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소준섭
- 등록일 : 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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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프리와 동물 학대 김주만(문화방송 뉴스투데이팀장) 뼈를 드러낸 돼지 사체가 굵은 쇠갈고리에 꿰여 흔들거리며 이동하고 있다. 1차로 손질돼 가죽을 잃은 살덩어리는 이미 돼지의 형상을 잃었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생명이 완전히 끊기지 않은 채 발작하듯 고통스럽게 꿈틀대기도 한다. 몇 년 전 케이비에스(KBS)에서 방영한 돼지 가공시설 방송의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소비하는 돼지는 약 1,500만 마리,(여기서 ~이다를 붙이든지, 아니면 마침표로 끊어주든지 할 것. 뒷문장과 호응이 되지 않음)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받는 닭은 10억 마리, 소 등 다른 육용 동물을 합치면 연간 1억 1천만 마리의 생명이 우리의 밥상을 위해 소비된다. 물론 불법 도축되는 개나 뱀, 곰 같은 동물은 통계에서 빠졌다. 농장의 닭과 돼지, 소는 그들의 오롯한 생명 자체와 무관하게 오로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한 달도 살지 못하고 도살되는 닭은 물론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수놈으로 판별된 직후 산 채로 분쇄기에 갈아져 또 다른 동물의 먹이로 쓰인다. 살을 쉽게 찌우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최종 목적지인 ‘도살’에 이르기까지 겨우 살아가는 ‘생존 동물’들의 삶도 행복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림 1.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 동물실험도 같다. 신약의 효과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증하기 위해 동물들은 일상에서 노출되는 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과다하게 약물을 맞고서 온몸으로 약효를 검증해야 한다. 플라스틱 틀 안에 갇힌 토끼의 눈에는 화장품 성분이 직접 주입되고, 개의 입에 흡입용 마스크를 씌워 담배 성분의 위험성을 검증한다. 신약과 화장품, 담배 같은 새로운 기호품이 상품으로 만들어질 때마다 필수적으로 거치는 ‘안전성 검사’는 이렇게 동물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최근 이런 잔혹한 실험/사육 사실이 알려지면서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를 내세우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크루얼티 프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제품이나 방법을 의미한다. 외국에서는 토끼 문양의 상징이 들어 있는 ‘크루얼티 프리’ 제품 사용을 권하는 윤리적 소비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어 그대로 ‘크루얼티 프리’를 표기하거나, 시민운동을 하는 쪽에서는 ‘동물해방’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크루얼티’를 그대로 쓰는 것은 외국어 남용인 만큼 직역하여 ‘잔혹성 배제’나 ‘잔혹성 없음’의 의미를 담은 ‘동물복지’, ‘반(反)동물학대’ ‘비(非)동물학대’도 사용할 만하다. 장애인에게 장벽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배리어 프리’나 동물을 학대하지 않는다는 ‘크루얼티 프리’나 모두 ‘~이 없는’ 상태를 영어 단어 ‘프리’로 표현하지만, 자칫 ‘장벽이 자유롭게 널린’, ‘잔혹함이 자유롭게 자행되는’의 뜻으로 오해할 위험이 있다. 인간이 일부러 잔인하게 동물을 학대하고 도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간적 기대’와 달리 사람은 훨씬 잔인하다.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동물을 때려잡거나, 숨을 남겨둔 채 멱을 따는 식의 야만성은 많이 사라졌지만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전기나 망치를 이용하는 도축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아직 ‘인간적 기대’가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돼지의 이를 뽑고, 맛을 위해(냄새를 없애기 위해) 마취 없이 거세가 이뤄지는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동물복지’가 점차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각 제약사나 의료기관이 동물실험 결과를 공유해 추가로 진행되는 동물실험을 최소화하고, 국민 간식이 된 치킨이나 유독 삼겹살에 집착해 돼지의 과대 도축을 불러오는 우리의 식습관도 고민해야 한다. 개고기 금지와 관련해 대통령의 언급도 있었던 만큼, 도축은 불법이고 판매는 합법인 개고기 관련 법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중국 등 일부 나라의 경우 동물실험을 통한 안전성 검사를 필수 조건으로 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대체육을 개발하는 등 동물복지를 폭넓게 진행하되 당장 타격이 불가피한 축산농가에도 합의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림 2. 동물복지와 축산농가 타격을 모두 고려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 사회의 언중이 사용하는 말은 그 사회를 직접 반영한다. 인간들이 동물들의 잔혹한 죽음을 ‘비인간적’이라고 부르거나 ‘동물복지’를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동물에게 인간은 가장 잔인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동물의 죽음 앞에 도덕적 부담을 피하려는 알량한 양심임과 동시에, 인간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측면에서 말부터 손질하자. 김주만 문화방송 뉴스투데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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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주만
- 등록일 :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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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외국어의 우리말 대체, 언론이 먼저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가장 난감한 문제 중 하나는 아마도 ‘망각’일 것이다. 양로원과 청년복지센터 개소식, 지역 축제 등 공식 행사는 물론 개별 복지 서비스 제공까지 주민을 직접 만나는 일이 잦다. 미리 원고를 준비해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즉석에서 인사말이나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때 꼭 해야 할 말이나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당황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이런 일은 주로 해당 용어가 어려운 외국어일 때 많이 발생한다. 그림 1. 즉석에서 연설을 해야 할 때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당황하기도 한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거시기’다. 이 ‘거시기’는 사투리가 아니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말인데 ‘거시기: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 않거나 직접 말하기 곤란한 사람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 ‘거시기하다: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상태나 속성을 언급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현장 실무 공무원에게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쓰라고 하는데, 외국어를 대체하기에 적당한 우리말을 찾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외국어 중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치킨처럼 이미 우리 국어 체계에 편입돼 국어 단어로 허용된, 쉬운(?) 외래어가 있는데 해당 외국어가 외래어인지 아닌지 딱 부러지게 판별해 주는 ‘규정’이 없는 것도 실무 공무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예를 들어 공공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는 ‘콘텐츠(Contents)’라는 단어가 있다. 지역 축제를 기획할 때 ‘자발적 주민 참여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 콘텐츠 강화’ 같은 문장에 쓰고, ‘스마트 도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때는 ‘다양한 IT 콘텐츠 강화’ 식으로 쓴다. ‘문화 콘텐츠, 디지털 콘텐츠, 교육 콘텐츠, 공동체 의식 강화 콘텐츠, 킬러 콘텐츠’ 등으로 매우 널리 쓰는데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 따라 번역하자면 ‘내용’, ‘내용물’, ‘내실’ 등이 가능하겠으나 어떤 단어도 콘텐츠가 내포하는 의미를 100% 대변하지 못한다. 우리말로 설명하기는 복잡하지만, 암묵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 통하는 ‘거시기’가 콘텐츠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와 유사한 단어로 센터(Center)가 있다. ‘주간보호소’나 ‘주간보호터’로 써도 되는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나 ‘도시농업센터’, ‘청년복지센터’ 등 어떤 목적을 위해 물리적 공간이 생겼는데 간판이 애매하거든 그냥 ‘000 센터’로 하면 거의 해결된다. 그림 2. ‘콘텐츠’를 사용한 공공기관 보도자료 이때 반드시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상황이 되면 공무원들은 주로 가장 최근 대체어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용례를 찾는데, 공적 기능이 있는 언론 기사를 상대적으로 많이 참조한다. 누가 뭐라고 하면 ‘언론사 기자도 그렇게 썼다.’라고 하면 충분히 면피할 수 있어 그렇다. 그러므로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하려면 관계 기관이나 단체에서 무엇보다 언론을 향한 계도 활동을 우선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관악구청 청년정책과 구로구청 구정연구관 ‘최보기의 책보기’ 연재 서평가 <저서 『거금도 연가』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 『박사성이 죽었다』 『독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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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최보기
- 등록일 :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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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걸린 '이른바 병'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방역 당국의 언어 사용이 매우 신중해졌다. 의미가 모호한 ‘위드 코로나’ 대신 ‘단계적 일상 회복’을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다른 부처에도 요청하였다고 한다. 전부터 그랬어야 했다. 국민 가운데 외국어 약자들이 공적 정보를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리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 전까지 방역 당국에서는 코호트 격리, 드라이브 스루, 팬데믹, 포스트 코로나, 트래블 버블, 부스터 샷 등의 말을 썼다. 방역 당국이 먼저 꺼냈든 언론에서 먼저 쓰기 시작했든 간에 코로나19 관련 외국어 사용은 코로나 사태의 진면목과 방역 대책을 파악하는 데에 걸림돌이었음에도 뼈저리게 다가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위드 코로나’라는 말 앞에서는 국민의 오해를 불러 방역에 긴장이 풀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을 느끼고 이 말 대신 일부러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용어 사용을 선택한 것이다. ‘일상 회복’이 ‘위드 코로나’보다 낯선 말이라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말이 의미가 분명해서 공공언어로서는 매우 적합하다. 코로나 사태로 정신없는데, 말 가지고 뭘 자꾸 따지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누구나 잘 알아듣게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방역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다. 우리말 써야 한다는 민족 감정에서 나온 게 아니다. 어디서든 일을 잘하려면 듣는 사람에게 쉽고 편한 말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제 버릇 남 주기 어렵다고, 2021년 10월 중순에 일상 회복 지원위원회가 출범하면서는 곧 일상 회복 로드맵을 발표하겠노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로드맵’이 공무원들이나 기업에서는 많이 쓰는 말이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쉽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티앤오 코리아의 조사에 따르자면, 일반 국민 34.6%는 ‘로드맵’이 어렵거나 전혀 모르는 말이라고 응답했고, ‘로드맵’ 대신 ‘단계별 이행안’이라는 우리말로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답한 국민은 58.7%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느껴져 나는 매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에 위원회에서는 ‘로드맵’ 대신 줄곧 ‘이행 계획’으로 쓰고 있다. 얼마나 말이 편해지고 분명해지는가? 그러나 언론인들은 국민의 편안함보다는 자기네 명예, 아니 사회적 위신이 더 중요한가 보다. 잘 들어보면 요즘 언론에서는 ‘이른바’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쓴다. ‘이른바 위드 코로나, 이른바 부스터 샷’하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엔 마구 외국어를 쓰다가 국민의 눈총이 느껴지면 슬그머니 그 앞에다 ‘이른바’를 붙인다. 자기가 먼저 주체적으로 한 말이 아니고 남들이 이렇게 부르니 어쩔 수 없이 인용해서 부른다는 식으로. 자기는 책임 없다는 투다. 대체로 방역 당국에서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부스터 샷’이라는 말도 ‘추가 접종’으로 바꾸었고, ‘코호트 격리’도 ‘동일집단 격리’로, ‘트래블 버블’은 ‘여행 안전 권역’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그런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언론인이다. 그들은 왜 말을 바꾸지 않아서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까? 자신들은 불편한 거 전혀 모르겠다는 사정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입에 달라붙은 외국어를 그냥 떼어내기가 쑥스러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 앞에 나서는 사람들은 그래선 안 된다. 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사실, 예전엔 대개들 ‘소위(所爲)’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 ‘이른바’로 바뀌었다. 물론 그냥 바뀐 건 아니다. 딱딱한 느낌이 권위주의 분위기 피운다고 수많은 시민이 지적하니까 한 20년 사이에 ‘소위’라는 말은 거의 다 사라지고 모두 ‘이른바’로 바뀌었다. 쉬운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뀌어 가는 말이 있는 법이다. 말로 살아야 하는 언론인들이 그 주체가 되면 좋겠다. 이젠 ‘이른바 병’ 좀 털어내자. 이 글은 동아사이언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0795)에 기고하였습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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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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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러시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조형근(사회학자)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쓴 영화 <기생충>의 한 줄 평이다. 그리고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두고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크게 두 입장으로 나뉘었다. 굳이 이렇게 어렵고 현학적인 단어를 써야 하느냐는 비판과, 이 정도 단어도 모른다니 충격이라는 반응이 서로 부딪혔다. 내 느낌은 후자에 가까웠다. 특히 두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놀랐다. 어느덧 나도 ‘꼰대’가 된 것이다. 어느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이동진 평론가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라는 말까지 인용하면서, 명징과 직조라는 단어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쉬운 말을 써야 한다는 쪽과 정확한 말을 써야 한다는 쪽 사이 인식의 틈을 메우기 쉽지 않다. ‘리터러시’가 문제가 되는 이유다. 언제부터인가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이 말의 원뜻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어로는 ‘문해력’이나 ‘독해력’, ‘이해력’ 같은 말로 옮길 수 있겠다. 여기서 파생되어 “특정 분야에 대한 역량이나 지식”을 뜻하기도 한다. 사전을 보니 리터러시보다 일리터리시(illiteracy), 즉 ‘비문해’라는 단어가 먼저 있었다. 리터러시라는 단어는 19세기 말에 등장해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널리 쓰였단다. 구글이 제공하는 사용 빈도 자료를 보면 20세기 전반에도 별로 많이 쓰이지 않다가, 20세기 후반, 특히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사용 빈도가 많이 늘어난 단어다. 그림 1. 리터러시의 원뜻은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빈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용하는 맥락에도 변화가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50년대 이전까지 리터러시라는 말은 말 그대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라는 좁은 뜻으로 사용됐다. 1950년대부터 뜻이 넓어지면서 작가와 독자가 처한 사회나 문화와 분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맥락들을 고려하는 게 중시되었다고 한다. 옥스퍼드 사전과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리터러시라는 단어는 19세기 말에 만들어져서 20세기 전반기까지는 문해력이라는 좁은 뜻으로만 쓰이다가, 20세기 후반 이후 뜻이 확장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쓰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리터러시라는 말이 홍수처럼 난만하다. 리터러시 홀로 쓰기보다는 앞에 다른 단어가 붙어서 함께 쓸 때가 훨씬 많다. 검색으로 대략 스물한 가지 용례를 찾았다. 얼추 성격이 비슷해 보이는 것들끼리 묶어서 나열해 본다. 미디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컴퓨터 리터러시, 에스엔에스(SNS) 리터러시, 메타버스 리터러시, 인공지능 리터러시, 문화적 리터러시, 이미지 리터러시, 콘텐츠 리터러시, 시네(영화) 리터러시, 게임 리터러시, 다문화 리터러시, 광고 리터러시, 금융 리터러시, 스포츠 리터러시, 피지컬 리터러시, 헬스 리터러시, 육상 지도 리터러시, 멀티 리터러시 등등. 여기서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좁은 뜻의 문해력만 뜻하지는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로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 컴퓨터와 통신, 인공지능 기술 등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새로이 요구되는 지식, 역량의 습득, 강화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모두 현대인의 사회경제적 생활과 민주주의 운영에 필수적인 역량이다. 리터러시가 중요한 이유다. 그림 2. 매체 환경과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리터러시가 여러 의미로 활용되고 있다. 사례를 보자. 강준만의 저작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보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수용자의 미디어 사용 능력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로 미디어의 올바른 이용을 촉진하는 사회 운동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1992년 미국의 싱크탱크인 애스펜연구소가 주최한 ‘미디어 리터러시 전미 지도자회의’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에 액세스(접근)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발신하는 능력”으로 정의되었다고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도 찾아본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뜻한다.” 컴퓨터 활용 교육과 함께 등장한 용어지만, 인터넷 발달과 모바일 기기의 출현, 소셜 미디어의 확장에 따라 단순히 기기 사용법만이 아니라 정보를 다루고 가공하는 일까지 범위를 확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터러시라는 말의 폭넓은 확장과 맥락을 고려하면 좁은 의미의 ‘문해력’이라는 단어로 옮기기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리터러시의 대상은 좁은 의미의 ‘독해’를 넘어선 다양한 역량을 포함하고 있다. 번역 없이 그대로 쓰는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편의를 추구하는 선택의 결과 리터러시라는 말이 의도하는 바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는 데 있다. 리터러시라는 말 자체가 리터러시를 가로막는다. 리터러시가 가장 필요한 보통사람들에게 리터러시라는 말은 무척 낯설고 생소하기 때문이다. 문해력이라는 말이 번역어로서 충분하지 않다면 새로운 번역어를 고민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전문가의 자세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자계급의 일상 문화를 다룬 문화연구 분야의 고전인 리처드 호가트의 저작 《The Uses of Literacy》(1957)의 경우를 보자. 번역자 이규탁은 리터러시의 번역어로 교양을 선택하고, 책 제목을 <교양의 효용>으로 옮겼다. 여기서의 리터러시가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서, 대중소설, 신문, 잡지 등의 출판물과 방송, 음악, 영화 등과 같은 ‘교양으로서의 문화’를 읽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위키피디아가 알려주는 것처럼 리터러시가 좁은 의미에서 넓은 의미로 확장되던 20세기 중반의 변화를 포착한 책이고, 또 그에 맞는 번역어라 할 것이다. 교양이 리터러시의 가장 적합한 번역어라는 말이 아니다. 리터러시에 딱 맞는 한국어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데도 공감할 수 있다. 보통명사가 아닌 한 번역에서 1대 1의 정확한 대응어를 찾는 건 원래 어렵다. ‘이해 능력’이든 ‘사용 역량’이든 다른 무엇이든 적어도 리터러시보다는 리터러시에 도움이 되는 번역어들이 있을 것이다. 리터러시 운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형근(사회학자) 소셜랩 접경지대 소장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섬을 탈출하는 방법> 등의 저서와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 <좌우파사전: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두 개의 시선> 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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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조형근
- 등록일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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