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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에 ‘센터’를 선호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

  • 등록일: 2022.01.06
  • 조회수: 1,303

공공기관에 ‘센터’를 선호하는 숨은 이유가 있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특별한 기능을 담당할 신규 조직이나 공간을 마련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업무 중 하나가 거기에 해당하는 명칭을 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명칭은 담당 주무관이 자의적으로 짓지 않고 이해가 걸린 주민을 대상으로 공모, 선호도 조사 등 공개 과정과 최종 결재권자의 낙점을 거쳐 결정된다. 그래야 주민, 의회 의원 등이 “명칭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라고 따지더라도 ‘주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임을 들어 비난이나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주민 공모, 선호도 수렴을 거친 결과를 보면 우연이겠지만 이상하게 ‘센터’가 많이 선정된다. 자원봉사센터, 데이케어센터, 장애인복지센터, 모자보호센터, 위기가정구호센터, 청소년자치센터 등등이 모두 그렇다. 조직이 방대하지 않고,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담당할 경우 센터가 가장 흔하게 쓰이고 있어 익숙하고 무난한 이유도 있겠지만 필자 생각에는 전혀 엉뚱한 이유도 하나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림 1. 즉석에서 연설을 해야 할 때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당황하기도 한다. 그림 1. 해당 공간 운영 책임을 맡을 인력 중 최고 책임자 호칭은 공간 이름을 따라가는 것이 관행이다.

가령 남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보호하고, 관광객에게 그것들을 알릴 목적으로 남산 자락에 서울시가 조그만 건물을 새로 마련해 민간단체에게 운영을 위탁할 경우 건물 명칭은 대개 ‘남산식물전시관, 남산식물연구원, 남산식물보호소, 남산식물알림터, 남산식물센터’ 같은 고만고만한 이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해당 공간 운영 책임을 맡을 인력 중 최고 책임자 호칭은 공간 이름을 따라가는 것이 관행이므로 ‘관장, 원장, 소장, 센터장, 터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데 ‘관장, 원장, 소장’은 주무관이 편히 다루기에는 어감이 좀 높은(?) 사람이다. ‘센터장’은 상대적으로 다루기 편한 어감이고, ‘터장’이란 호칭은 쓰이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000센터’가 많은 것이 아마도 이런 연유도 한몫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러한 사실은 몇 번의 명칭 선정 과정에 관여했던 필자의 개인적 촉이자 느낌일 뿐 과학적 연구나 면담 결과가 아니므로 엉터리 주장일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란다.

센터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직위 호칭으로 ‘매니저’가 있다. 대개 센터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공간인데 명칭에 센터가 붙지 않았을 때, 해당 공간의 운영과 관리를 총괄하는 책임자에게 ‘매니저’라는 호칭이 애용된다. 매니저는 ‘관리인, 관리자’인데 ‘관리인’은 ‘건물 관리인’ 정도 어감이라 콘텐츠(?)가 빈약하고, ‘관리자’는 너무 일반적이라 호칭으로 적당치 않다. ‘매니저’라고 부르면 그나마 좀 있어 보인다. 만약 ‘데이케어센터’ 대신 ‘주야간보호터’라는 명칭으로 변경을 검토할 경우 해당 공간 책임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부터가 어려운 결정이라 기각될 확률이 높고, 변경이 된다면 책임자는 필시 ‘터장’ 대신 ‘매니저’라고 불릴 확률이 높다.

공공기관에서 쉬운 우리말 대신 어려운 외국어를 굳이 쓰는 데는 마땅한 대체어가 없거나 왠지 외국어를 써야 주민 호감도가 높아질 것 같은 언어 사대주의 말고도 ‘담당 주무관의 기분이나 자존감’ 같은, 생각지 못할 엉뚱한 이유들도 있다고 필자는 강하게 의심하는 것이다.


최보기

최보기(작가, 서평가)

  • 관악구청 청년정책과
  • 구로구청 구정연구관
  • ‘최보기의 책보기’ 연재 서평가
  • 저서 『거금도 연가』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 『박사성이 죽었다』 『독한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