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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프리 플로팅’보다는 ‘자유 주차 방식’으로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로운 밀레니엄이 막 시작되던 2000년,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이『접속(접근)의 시대(The Age of Access)』라는 책을 펴냈다. 국내에는 ‘소유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래는 더 이상 물질을 ‘소유’하지 않고 일시적으로 접근(접속)해서 ‘임대’하는 ‘공유 시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실로 접속과 공유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 ‘탈 것’의 공유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무료 자전거 ‘따릉이’를 비롯한 공유 자전거, 전기 킥보드 등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프리 플로팅(free floating)’이라는 낯선 외국어도 자주 눈에 띄고 있다. 프리 플로팅이란 공유 자전거나 킥보드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지정된 전용 구역이 아니라 불특정한 장소에서 빌리고 반납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자동차 공유업체 관계자가 <데일리임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차고지 제한 없이 차를 마음대로 갖다 놓고 빌리는 ‘프리 플로팅(Free-Floating)’이 가능하도록 카셰어링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라며 이 용어를 처음 소개했다. 이후로 관련 업계에서는, 이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하며, ‘도킹(혹은 도크) 방식’ 즉 전용 주차 지역이나 거치대에서 탈 것을 반납하는 방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도크리스(dockless)’라는 외국어도 함께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프리 플로팅’은 주차 방식을 일컫기 위해 만들어진 전문 용어가 아니다. 원래는 ‘걷잡을 수 없다’, ‘자유롭게 떠다닌다’라는 뜻으로 폭넓게 쓰이는 형용사다. 사전에서 용례를 찾아보면 주차가 아니라 오히려 금융 용어로 검색된다. ‘마음대로 요동치는 환율’이라는 뜻이다(옥스포드 영한 사전). 뜻을 검색해 봐도 ‘특별한 목적이나 방향이 없이 떠다닌다’라는 정의가 나와 있고(미리엄 웹스터 사전), 용례로는 개구리밥이나 부레옥잠 같은 부유 식물, 컴퓨터 디스플레이, 떠돌이 행성 등에 사용된 경우가 검색된다. 물론 영어권 누리집에서도 주차와 관련해 이 용어를 쓴 경우를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많은 용례의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처럼 ‘주차 전문 용어’로서 배타적으로 쓰지 않는다. 영어권의 사용 범주와 우리 언어사회의 주요 쓰임새가 일치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프리 플로팅을 우리말로 다듬는 이번 작업에서는 영어 단어의 뜻에 일대일로 대응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쓰임새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노력했다. 기존 우리말 다듬기 작업에서 ‘프리(free)’를 주로 ‘자유’, ‘무료’로 다듬은 반면, 이번에는 다양한 시도를 해본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말 모임이 1순위로 올린 후보 말은 ‘유연 반납제’이다. ‘빌렸던 것을 반납한다’라는 의미를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주차’ 대신 ‘반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를 좀 더 우리말로 풀어쓴 ‘어디서나 반납’도 후보 말로 함께 올렸다. 물론 ‘자유’라는 핵심어를 활용한 후보 말도 정했으니, ‘자유 주차 방식’이 그것이다. 현재 ‘프리 플로팅’이 모든 임대나 탈 것 이용에 국한돼 쓰이는 데다 ‘반납’뿐 아니라 ‘빌리는’ 행위도 함께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차’를 사용했다. 이 외에도 ‘아무 데나 반납’, ‘마구 주차’, ‘비지정 주차’, ‘임의 (구역) 반납’, ‘자유 거치 방식’ 등의 표현이 토론 과정에서 오가기도 했다. 이중 여론조사에서 언중들이 선택한 표현은 ‘자유 주차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프리(free)’라는 단어의 영향력이 강하기도 할뿐더러, 기존 언론에서도 ‘프리 플로팅’의 우리말 풀이로 ‘자유’라는 표현을 많이 썼기에 익숙한 면도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과거 언론에서 사용한 우리말 병기로는 ‘자유 거치 방식’(<국제신문> 2021년 4월, <매일경제> 2023년 3월), ‘자유로운 반납주차/이용’(<비즈한국> 2023년 6월), ‘자유 반납방식’(<한국경제> 2021년 11월) 등이 있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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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에듀 푸어와 실버 푸어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두 가지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실버 푸어(silver poor)’와 ‘에듀 푸어(education poor)’다. 먼저 ‘실버 푸어’부터 살펴보자. ‘실버(silver)’는 나이가 들어서 하얗게 센 머리를 빗대어 노년층을 일컫는 데 흔히 쓰이는 말이고 ‘푸어’는 ‘가난, 빈곤’을 뜻한다. 그러니까 ‘실버 푸어’는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 해, 퇴직 후 바로 빈곤층에 진입하는 사람 혹은 그런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시대로 진입하고 은퇴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실버 푸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명한 투자와 자산 형성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기사(<파이낸스투데이> 2020년 12월)가 그 용례다. 다만 영어권 검색 사이트에서는 같은 의미로 쓰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한국식 조어’인 듯하다. 한편 ‘에듀케이션(education)’과 ‘푸어’를 결합한 말로, 사실 각 단어의 뜻만 보면 ‘교육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빈곤한 계층’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과다한 교육비 지출로 가난해져 살기가 어려운 계층(우리말샘)”을 가리키는 데 쓰이고 있단다. 2011년 12월 <매경이코노미>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하우스 푸어’, ‘스톡 푸어’, ‘베이비 푸어’ 등 각종 과잉 투자(주택 마련, 주식 투자, 자녀 출산과 양육을 위한 과다 지출)에 영어이름을 붙인 말들과 함께 소개되었다. 최근에도 <머니투데이> 2023년 1월자에 “학부모 상당수가 올해도 사교육 지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빚을 지면서도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는 ‘에듀 푸어’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되는 등, 이 용어는 빈곤해서 교육을 못 받는 ‘교육 소외층’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교육이 빈곤의 ‘원인’이 된 사람들을 일컫는 데 주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둘 다 ‘푸어(빈곤)’를 품고 있으면서도 말이 만들어진 맥락에 차이가 있는 만큼 우리말로 다듬는 과정도 서로 달랐다. 우선 ‘실버 푸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푸어’가 들어간 외국어는 지금까지 대부분 우리말 순화 과정에서 ‘빈곤층’으로 옮겨왔기에 이를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실버’의 경우 기존에는 공경의 뜻을 담아 ‘경로’, ‘어르신’ 등으로 다듬은 바 있는데(실버 시터→ 어르신 도우미/경로 도우미, 실버 비즈니스→ 경로 산업), 경제적 조건에 따라 계층을 가른 이번 용어에는 중립적인 단어로 ‘노년, 노후, 노인’ 등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후보로 올린 ‘노년 빈곤층’, ‘노후 빈곤층’, ‘노인 빈곤층’ 중 ‘노년 빈곤층’과 ‘노후 빈곤층’이 여론조사에서 둘 다 비슷한 지지를 얻어 우리말로 복수 선정되었다. ‘에듀 푸어’를 다듬는 것은 좀 더 까다로웠다. 기존 사례를 기준으로 다듬은 말은 ‘교육 빈곤층’이었다. 교육비 과다 지출은 주로 사교육 영역에서 이뤄지므로 ‘사교육 빈곤층’도 함께 후보로 올렸다. 하지만 “가난해서 교육의 혜택을 못 받는 빈곤 계층”을 뜻하는 말로 오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지나친 지출 규모가 빚어낸 ‘상대적 빈곤’을 ‘절대 빈곤’과 동일시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교육비 빈곤층’ ‘과교육 빈곤’ ‘교육 과잉 빈곤층’ ‘교육 탓 빈곤층’ 등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게 후보말을 고민해 보았으나 그리 알맞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덧붙인 후보말이 아예 ‘빈곤’이라는 말의 틀을 벗어버린 ‘교육 과소비층’이었다. 원말의 ‘푸어’라는 표현과는 거리감이 들 수도 있으나 의미상으로 가장 적절하다는 의견이었고, 과연 여론조사에서도 이 말이 가장 큰 지지를 얻어 결국 최종 새말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실버 푸어’와 ‘에듀 푸어’는 같은 ‘푸어’를 포함한 말인데도 ‘노년(노후) 빈곤층’과 ‘교육 과소비층’이라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새 단장을 했다. 하지만, 이 둘은 실상 현실 세계에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용어들이다. 노년(노후) 빈곤층이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시기에 은퇴 후 생활 자금을 미처 모으지 못한 원인 중에는 자녀의 교육비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투자한 ‘교육 과소비’가 한몫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적한 전문가들도 적지 않으니, 다음의 기사가 이를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자녀 교육비 지출로 빈곤하게 사는 ‘에듀 푸어’가 ‘실버 푸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중략) 노후를 대비해야 할 40·50대가 가장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경제> 2023년 6월자)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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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생소한 ‘긱 이코노미’, 이해하기 쉬운 ‘일시 고용 경제’로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신조어는 ‘새로 생겨난 말’을 가리키지만, 구성 방법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원래 많이 쓰던 단어를 둘 이상 결합해서 새로운 의미를 보태 쓰는 방법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쓰기 시작한 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단어를 새로 ‘발굴’해 요즘의 세태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 ‘아트 테크’, ‘퍼스널 컬러’, ‘블루 푸드’가 전자(단어 각각의 뜻을 보고 전체 용어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에 해당하고, 오늘 살펴볼 ‘긱 이코노미(gig economy)’는 후자에 속한다. ‘긱 이코노미’는 “산업 현장에서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ㆍ임시직ㆍ일용직 따위를 필요에 따라 고용하는 경제 형태”(우리말샘)를 뜻한다. 그런데 ‘긱’이라는 단어가 사뭇 낯설다. 일상에서 쉽게 접해온 단어가 아니다. 무슨 뜻일까. ‘긱(gig)’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단기적으로 섭외한 연주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왜 ‘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어원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귀가 밝은 사람이라면 2020년에 개봉한 디즈니 만화영화 <소울>에서 주인공이 클럽 공연자로 뽑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연주 따냈어!(I got the gig!)”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이후 이 말은 산업 전반에서 쓰이게 되어 ‘임시로 하는 일(직장)’을 두루 가리키게 되었으나 지금도 영어사전에는 이 말의 첫째 뜻풀이로 ‘음악 등의 공연(출연)’이 올라가 있다. 영어권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가 우리 사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15년, <주간경향> 기사를 통해서였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공유경제라고도 불렸던 우버 등의 ‘긱(gig) 이코노미’, 한국형도 최근 뜨겁다. 긱(gig)이란 원래 음악가의 하룻밤 일을 나타내는 속어로, 잡(job)보다 경박하고 찰나적인 모든 일을 일컫는 데도 쓰인다. 신조어 특히 외래어는 공유경제처럼 현상을 미화시키고, 원래의 함축을 가리곤 한다. 결국은 ‘일용직 경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날일꾼과 삯꾼이다.” 긴 기사 내용을 옮긴 이유는 8년 전 이 용어를 받아들일 때만 해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동 통신 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가 선호하는 고용 형태가 변화하고, ‘직장’에 대한 젊은이들의 시각도 함께 변하면서 이 용어는 이제 중립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자. “긱 이코노미는 전통적인 고용 구조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중략) 일시적이거나 프로젝트 기반의 일자리를 중심으로 하며 전 세계의 전문가들을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시킨다.”(<아웃소싱타임스> 2023년 8월) “지루한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일하려는 엠제트 세대의 특성은 긱 이코노미와도 잘 맞다.”(<서울경제> 2023년 5월) 하지만 불필요한 외국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번 글에서 썼듯 영어 낱말을 한글로 표기하면 장모음, 단모음 구분이 안 되고, g 혹은 k로 끝나는 단어의 표기가 모두 받침 ‘ㄱ’으로 표현되어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와 구별이 안 된다. ‘긱’도 그렇다. ‘gig’과 ‘괴짜,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가리키는 단어 ‘geek’을 우리말로 표기하면 전부 똑같이 ‘긱’이 된다. 표기만 보고는 어느 단어를 지칭하는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이 답이다. 그렇다면 ‘긱 이코노미’는 어떻게 우리말로 순화하는 게 좋을까. 2021년 새말모임에서 이미 ‘긱 이코노미’와 의미가 가까운 ‘긱 워커(gig worker)’를 ‘초단기 노동자’로 바꾸어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이와 일관성 있는 표현으로 ‘초단기 고용 경제’를 1순위 후보로 정했다. 또, ‘초단기’와 ‘경제’를 대신하여 다양한 조합도 궁리해 보았다. ‘일시 고용 경제’, ‘초단기 계약 노동자’, ‘비정규 경제’, ‘임시직 경제’, ‘초단기 노동 경제’ 등이 뽑혔다. 순우리말을 사용해 ‘날품 달품 경제’라는 어감 좋은 표현도 만들어 보았다. 이 중 ‘초단기 고용 경제’, ‘일시 고용 경제’, ‘날품 달품 경제’를 골라 선호도 여론조사에 붙인 결과, ‘일시 고용 경제’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아 새로운 우리말로 결정되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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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퍼스널 컬러’ 진단 말고 ‘맞춤 색상’ 진단 어떤가요?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최근 스포츠 연예 전문지에 한 아이돌 그룹 가수들이 개인 방송에서 했던 말이 실렸다. “팬들이 자신들의 ‘톤’을 갖고 토론을 하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퍼스널 컬러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라는 것이다. 가수의 팬들에게 ‘토론 거리’가 될 정도로 요즘 젊은 세대가 관심을 두는 게 이른바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다. “개인이 가진 신체의 색과 어울리는 색”을 일컫는 용어로, <우리말샘> 사전을 보면 “사용자에게 생기가 돌고 활기차 보이도록 연출하는 이미지 관리 따위에 효과적”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사실 ‘퍼스널 컬러’는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깔이 다양한 다인종 국가에서나 관심을 가질 법한 분야이지만, 일찍이 일본 패션계에서 이를 산업화했고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퍼스널 컬러’라는 용어가 우리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5년 12월로, <세계일보>사에서 발간하는 대학생 대상 매체 <전교학신문>에서였다. “자신에게 적합한 색깔을 발견하는 가장 기본적 항목은 피부 색깔....(중략) 집에서 간단하게 자가 진단하는 방법은 푸른 계통의 손수건과 노란색 계통의 손수건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중략) 바탕색보다 손이 환해 보이는 것이 내 퍼스널 컬러다”라는 내용이다. 이 분야에 관한 관심은 특히 최근 들어 매우 높아졌다. “이색 취미 클래스 가운데 증가율 1위를 차지한 학원은 ‘퍼스널 컬러’ 클래스였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색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영향으로, 퍼스널 컬러 클래스는 전년 대비 144% 급증했다”라는 기사(<매일경제> 2023년 7월)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다 보니 ‘퍼스널 컬러’라는 외국어가 슬그머니 우리 언어문화 속에 정착해 버리는 추세다. 언론에서도 누구나 뜻을 알 수 있으려니 짐작해서인지 별도의 풀이말을 덧붙이지 않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 언론에서 명사형으로 대체어를 제시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개인별 고유색상(<중부매일 2019년 3월>)’, ‘개인의 고유색(<전민일보> 2020년 11월)’, ‘피부 톤과 어울리는 색상(<동아일보> 2022년 10월)’, ‘개인의 신체 색(<중도일보> 2023년 8월)’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일회적으로 쓰였을 뿐, 지속해서 쓰이는 우리말 표현은 없는 형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 대부분이 영어다. 그 예로 ‘스킨 톤’, ‘쿨 톤’, ‘웜 톤’이 있다. ‘피부 색조’, ‘시원한 색감’, ‘따뜻한 색감’이라고 불러도 될 터인데, 외국어를 쓰는 게 ‘업계 관습’처럼 굳어져 우리말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젊은이들 사이에는 ‘톤 그로’라는 해괴한 신조어까지 나돈다. ‘톤(색조)’과 ‘어그로(aggro, 도발적 공격)’를 합성한 말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색조로 어색한 화장(옷차림)”을 뜻한다. 이 분야의 심각한 외국어 남발과 언어파괴를 한꺼번에 바로잡을 수는 없겠으나, ‘퍼스널 컬러’라는 말을 순화하는 데서 출발해 보자. 우선 국립국어원에서 ‘퍼스널’을 우리말로 다듬은 사례를 살펴보면 ‘퍼스널 트레이닝 → 일대일 맞춤 운동’, ‘퍼스널 컴퓨터 → 개인용 컴퓨터’, ‘퍼스널 파울→ 접촉 반칙’ 등이 있다. 새말 모임에서도 원말의 뜻에 충실하여 ‘퍼스널’을 ‘개인’으로 옮길 필요를 검토해 보았으나, 문맥상 충분히 뜻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개인’은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최종 후보로 걸러낸 우리말 후보는 ‘어울림 색’, ‘돋보임 색’, ‘고유 색상’, ‘맞춤 색상’이다. 어감으로는 ‘ㅇ’과 ‘ㄹ’이 많이 들어간 ‘어울림 색’이 좋고, 뜻을 살리기에는 ‘돋보임 색’이 가장 적합할 듯했으나, 언중이 가장 선호한 것은 네 번째 순위로 추천한 ‘맞춤 색상’이었다. 짐작해 보건대 ‘맞춤 서비스’, ‘맞춤 양복’, ‘맞춤형 상품’ 등 우리말에 ‘맞춤(형)+명사’ 표현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언중이 가장 친숙하게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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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리커머스’가 아니라 ‘재거래’!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쓰던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 거래가 요즘 활발하다. 예전에도 책이나 음반처럼 형태와 내용물이 일정한 ‘정보 상품’의 중고품 거래가 제법 있었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거래하는 품목에는 의류, 생활용품, 전자기기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쓰레기를 줄이고 제품 수명을 연장해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정말 반가운 일이다. 다만 염려되는 점은 이 분야까지 불필요한 외국어가 스멀스멀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살펴볼 ‘리커머스(recommerce)’라는 단어가 그 예다. ‘리커머스’의 사전상 의미는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재거래하는 제품 판매 전략. 새로운 상품을 살 때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반납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보상 판매와 일정 기간 후 새로운 상품으로 바꿔 주는 교환 판매를 통틀어 이르는 말”(<우리말샘>)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한 <한국경제> 2011년 10월 자 기사에 따르면, ‘리커머스’는 영국의 한 기업 자문 업체가 만든 신조어로 “기업들이 경기 악화로 새 상품을 쉽게 구매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그리고 “확산되는 기부문화와 보상판매를 연결시키기 위해” 도입한 주목받는 거래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후 우리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쓰였다. “리커머스 시장 활성화에 따라 중고 거래 메신저 사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물건을 전달해주는 게 골자다.”(<머니투데이> 2023년 2월)와 “리커머스 플랫폼은 ‘신상’ 상품과 신상의 ‘엔차 제품’을 함께 검색해 구입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헤럴드경제> 2022년 8월) 하지만 앞서 말했듯 중고 거래는 새로 등장한 거래 방식이 아니다. 굳이 영어를 사용해서 신규 사업처럼 지칭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리커머스’를 순화하는 작업은 사실 ‘새말’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사용하던 우리 이름 중 가장 적절한 것을 찾아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존 우리말 다듬기 작업에서는 ‘리-커머스(re-commerce)’를 각각 어떻게 바꿨을까. 접두어 ‘re’는 반복, 복구, 순환 등을 뜻하는 말로 이전 순화 사례로 ‘리사이클링→ 재활용’, ‘리프레시→ 재충전’, ‘리셀→ 재판매’ 등이 있다. ‘커머스’의 경우, ‘모바일 커머스→ 이동 통신 거래’, ‘이커머스→ 전자상거래’로 다듬는 등 주로 ‘거래’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러나 ‘소셜 커머스→ 공동 할인 구매’, ‘라이브 커머스→ 실시간 소통 판매’처럼 상호 거래보다 각각 구매, 판매 측면을 강조해서 순화한 경우도 있다. 현재 ‘리커머스’는 사용자가 쓰던 물건을 다른 소비자와 거래하는 ‘단순 중고 거래’, 명품이나 한정판 물품의 ‘재거래’, 기업의 ‘상품 임대’, 제조사가 기존 판매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보상 판매’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따라서 이번 다듬기 과정에서는 이 모든 뜻을 폭넓게 아우르는 표현을 찾으려고 애썼다. 자연스레 전부터 쓰던 ‘중고 거래’라는 말은 새말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여러 고민 끝에 새말 모임에서 최종적으로 골라낸 세 개의 후보 말은 ‘재거래’, ‘재거래 시장’, ‘재순환 판매’였다. 이중 여론조사에서 ‘재거래’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재거래’가 ‘리커머스’를 대신하는 우리말로 공식 선정된 것과 발을 맞춰, 이 업계에 갈수록 늘어가는 ‘○○마켓’ 같은 이름 대신 ‘○○시장’ 혹은 ‘○○장터’ 같은 우리말 명칭이 좀 더 힘차게 새싹을 틔우길 바란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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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스몰 럭셔리, 이제는 '소소한 사치'로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경제학 용어 ‘립스틱 효과’라는 말이 있다. 경기 불황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고급품으로, 립스틱의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서두부터 ‘립스틱’이라는 외국어를 쓰는 게 머쓱하지만, 국립국어원이 일본어 ‘구치베니’를 순화한 우리말로 입술연지/연지와 더불어 립스틱/루주를 선정한 바 있다) 이번에 살펴볼 ‘스몰 럭셔리(small luxury)’가 바로 이런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식료품, 화장품, 생활용품과 같이 비교적 작고 소소한 제품을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것으로 구매한다”라는 뜻이다. 높은 물가와 수입 감소 등으로 지갑을 쉬 열지 않는 소비자가 값비싼 자동차나 명품 가방 대신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높은’ 물건을 구매하며 작은 사치를 누리는 행위다.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 가끔 ‘작지만 고급스럽고 개성 있는 호텔’을 일컬을 때 썼던 이 말을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때였다. 그해 10월 8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금융위기로 미국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가격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라며, “1달러 안팎인 사탕이나 립스틱과 같은 필 굿 팩터(Feel good factor)가 있는 스몰 럭셔리 제품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라는 분석자료를 배포했다. 이를 여러 언론사가 기사화하면서 ‘스몰 럭셔리’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이 용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쓰였다. 3,000원짜리 봉지라면, 10만 원이 넘는 빙수, 25만 원짜리 케이크 등 식음료 업계가 ‘스몰 럭셔리’를 내세워 고가의 상품을 판매하는가 하면, 이른바 ‘1인 세신 샵(개인 맞춤형 때밀이)’도 스몰 럭셔리라는 수식어를 붙여 광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스몰 럭셔리’라는 용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이를 대체한 우리말 표현도 적잖이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작은 사치’와 ‘소소한 사치’다. 새말 모임에서는 ‘사치’를 대신할 만한 단어로 ‘호사’도 제시했다. ‘사치’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여론조사에 부쳐보니 사용자들은 ‘호사’보다 ‘사치’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고, 단어 앞에 ‘소소한’, ‘작은’이라는 표현이 붙어서 부정적인 느낌을 상쇄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그리하여 ‘스몰 럭셔리’의 최종 우리말은 ‘소소한 사치’가 선정되었다. 한편, ‘스몰’이라는 표현이 우리 언어문화에 빠른 속도로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게 ‘스몰 웨딩’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적은 비용으로 소규모 결혼식을 올려 일반인들에게 귀감이 된 것은 좋은 일이나, ‘스몰 웨딩’이라는 말까지 함께 유행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 ‘스몰 토크’, ‘스몰 비즈니스’, ‘스몰 라이선스’ 등 충분히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는 표현도 고스란히 영어로 쓰이고 있다. 이미 국립국어원에서 ‘스몰 웨딩’은 ‘작은 결혼식’으로, ‘스몰 라이선스’는 ‘소규모 인허가’로 순화해 발표했다. 이는 같은 ‘스몰’도 어감에 따라 때로는 ‘소소한’으로, 때로는 ‘작은’이나 ‘소규모’로 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스몰 토크’나 ‘스몰 비즈니스’는 공식적으로 발표한 우리 말이 아직 없지만, ‘잡담’, ‘소규모 사업’ 등으로 바꿀 수 있겠다. 이러한 사례보다 더욱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스몰 토론회’나 ‘스몰 플렉스’ 같은 말이 언론에 불쑥 등장할 때다. 전자가 우리말 앞에 영어를 갖다 붙인 국적 불명의 표현이라면, 후자는 ‘스몰’과 정 반대 뜻인 ‘플렉스(과시적 소비)’를 결합하였으니 가히 ‘어불성설’이다. 사실 ‘우리말 순화’조차 필요하지 않다. 아예 처음부터 쓰지 말아야 할 표현들이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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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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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오마카세와 페어링은 '주방특선'과 '맛조합'으로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최근 커피나 차와 같은 음료도 오마카세 형식으로 내는 것이 트렌드다. 티 카페를 방문하면 차를 우리는 퍼포먼스도 감상할 수 있고, 전문가가 차를 우리면서 하나 하나 큐레이팅을 해주고 차와 페어링하기 좋은 음식을 추천해준다.” 2022년에 발간된 <여성조선>의 기사 한 대목이다. 보다시피 웬만한 명사는 모두 외국어로 되어있다. 그동안 패션 용어가 외국어로 범벅되는 추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지금은 식문화마저 그런 모양새를 보인다. 외국어를 쓰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강박마저 느껴진다랄까. 그런 의미로 위 문장에서도 등장한 여러 외국어 중 최근 새말 모임이 다듬어 낸 ‘오마카세’와 ‘페어링’을 살펴보자. ‘오마카세(omaka[御任]se)’란 주방장이 만드는 특선 일본 요리를 일컫는 일본어로, 주방장이 엄선한 제철 식재료로 만든 여러 가지 요리를 하나씩 손님에게 내는 상차림 형식을 가리킨다. 2002년 한 일본 음식점의 한국 진출을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그런데 일식에서만 쓰이던 이 말이 <여성조선>의 기사에서 보았듯 다른 음식이나 음료에도 마구 사용되고 있다. 한우 오마카세, 디저트 오마카세, 커피 오마카세, 티(Tea·차) 오마카세 등등. 심지어 ‘이모카세’라는 말도 생겨났다. 음식점의 나이가 지긋한 여성 주인 혹은 주방장을 친근하게 부르는 우리말 ‘이모’에 ‘오마카세’를 결합한 잡종 언어다. 음식에서만이 아니다. ‘네일(손톱 관리) 오마카세’, ‘꽃 오마카세’, ‘헤어 스타일링 오마카세’ 마저 등장했다고 한다. ‘오마카세’에 “사물의 판단이나 처리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이라는 뜻이 있다니, 의미만 따지자면 ‘틀린 표현’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말로 오마카세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 언론에서는 ‘맡김 차림’, ‘주방 특선’, ‘맡김 요리’ 등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새말 모임은 ‘맡김 차림’에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기고 새말 후보로 올렸다. 기왕 새말로 다듬을 바에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싶었으나, 여론조사에서 선택된 새말은 ‘주방 특선’이었다. 매체에서 가장 많이 쓴 말이라 대중에게 친숙하다는 점이 큰 점수를 얻은 듯하다. ‘주방 특선’에 손님이 만족하려면 좋은 재료와 요리 솜씨도 중요하겠지만, 맛의 조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바로 살펴볼 두 번째 외국어, ‘페어링(pairing)’에 대한 이야기다. ‘페어링’은 음식 간 어울리는 짝을 맞추는 것, 혹은 전자기기 등을 서로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화이트 와인에는 생선류, 레드 와인에는 육류를 곁들여 먹는 것처럼 페어링은 주로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선정할 때 사용되는 용어였다”(<여성신문> 2022년 8월)가 전자의 예라면, “무선 충전과 모바일 연결성을 높인 엔에프시 페어링,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됐다”(<매일경제> 2023년 2월)는 후자의 예다. 식문화에서 ‘페어링’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2005년 8월 <이데일리>의 한 커피 전문점 행사를 알리는 기사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사용이 잦아지고 있어 역시 서둘러 우리말을 정착시켜야 할 용어다. 이번 새말 모임에서 ‘맛조합’, ‘맞조합’, ‘꿀조합’으로 세 후보를 다듬어 냈다. 이 중 ‘맛조합’은 “‘전참시’ 홍현희, 팬케이크에 김치 싸 먹는 파격 맛조합”(<한국경제> 2019년 12월) “돔베고기와 멜조림을 함께 싸서 먹어본 그(백종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적인 맛조합에 눈물을 훔친다”(<매일경제> 2021년 4월) 등의 기사에서 보이듯 기존에도 적잖이 사용되어 온 익숙한 표현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역시 ‘맛조합’이 언중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고, 그 결과 새말로 선정되었다. 다만, ‘페어링’이 음식이나 음료에 쓰일 때는 ‘맛조합’이 맞춤이지만, 전자기기 관련 용어로는 어색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새말 후보의 하나로 떠올랐던 ‘맞조합’으로 사용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그러다 요즘 음식점이 아닌데도 무엇이든 잘하는 곳을 일컬어 ‘맛집’이라고 하는데, 확장해서 전자기기에서도 ‘맛조합’을 써볼 수 있으려나 상상도 해본다. 두 말은 발음이 비슷하니.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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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아트 테크'말고 '예술품 투자'하자!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오늘의 신조어 ‘아트 테크(art tech)’의 뜻을 살펴보려면 먼저 ‘재테크’라는 단어부터 설명해야 하겠다. ‘아트 테크’의 풀이말에 ‘재테크’라는 표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트 테크’는 예술 작품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 주로 작품을 구입한 후 되팔아 이익을 남기거나 저작권으로 수익을 올린다(출처: 우리말샘).” 즉, ‘아트 테크’의 어원이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말이 곧 ‘재테크’인 것이다. ‘재테크’란 용어는 1986년 처음으로 우리 언론에 등장했다. <동아일보>가 일본 기업의 자산 늘리기 전략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재(財)테크란 일본 특유의 조어...(중략) 재무전략에 대한 테크놀로지를 줄인 말인데 쉽게 풀이하면 재산을 늘리는 테크닉”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이렇듯 처음에는 기업의 자산증식 기술, 그것도 주로 일본 기업에 국한해서 쓰인 말이었다. 그런데 점차 일반 가정에서 재산 불리는 방법을 일컫는 용어로 널리 쓰이게 되었고, 표준국어대사전에까지 올랐다. 그 이후, ‘재테크’도 아닌 ‘테크’만 붙여 특정 분야의 자산 관리나 투자 방법을 설명하는 말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집테크, 주(住)테크(집이나 부동산을 이용한 재테크)’, ‘주얼리테크(보석 투자)’, ‘금 테크(금 투자)’ 등이 그것이다. ‘아트 테크’도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아트 테크’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2006년 7월 <한경비즈니스>의 “미술품 경매시장도 해외에서 한국 작가들의 인기가 높아지고 높은 수익성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눈’ 밝은 이들은 이미 ‘아트테크’에 발을 들여놓았다”라는 기사에서다. 이후로 ‘아트 테크’는 ‘아트 재테크’라는 말과 함께 종종 언론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각 단어의 뜻만 살펴봤을 때 적절한 조어라 할 수 없다. ‘테크’는 ‘테크닉, 혹은 테크놀로지’의 줄임말로, 단어 자체에 ‘재산 관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의 개념을 담은 ‘재(財)’자가 삭제된 ‘아트 테크’ 역시 뜻만 보면 ‘예술(관련) 기술’이라는 의미다. 실제 2007년 <파이낸셜 뉴스>에서는 ‘아트 테크’를 ‘예술(관련) 기술’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중·장기적으로 건설업계의 저작권 트렌드는 단순 디자인보다는 모방이 어려운 기술과 예술성을 결합한 ‘아트 테크(Arttech)’가 중심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라는 보도가 그것이다. 현재 이 용어의 쓰임새만 보자면 ‘아트 테크’보다 ‘아트 재테크’가 더 적절한 표현이겠지만, ‘재테크’ 역시 한자어와 영어를 결합한 일본식 조어로 권장할 만한 단어가 아니다. ‘재테크’ 자체가 순화의 대상이다. 따라서 새말 모임에서는 ‘아트 테크’를 대신할 우리말로 ‘예술품 투자’라는 새말을 선보였다. 이미 국립국어원에서 1992년에 ‘재테크’를 ‘재산 관리’ ‘이재(理財)’로 순화해 소개한 바 있고, ‘재무 기술’이라는 대체어도 쓰이고 있으니 이를 먼저 활용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투자’라는 표현에 미치지 못했다. ‘투자’가 훨신 쉽고, 직관적으로 다가온다는 의견이 있었던 데다 글자 수도 두 자로 단출하다. 이전에 ‘리셀 테크’라는 신조어를 ‘재판매 투자’라는 새말로 다듬어 발표한 전례도 참고가 되었다. 한편 다소 어렵고 낯선 표현이지만 ‘재테크’라는 뜻을 충실히 살려 ‘예술품 이재’라는 후보 말도 함께 여론조사에 붙여보았으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예술품 투자’가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음으로써 ‘아트 테크’를 대체하는 새말로 최종 결정되었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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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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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끼워 맞춘 '블루 푸드', 국민의 선택은 '수산 식품'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해양수산부는 2023년 5월 17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글로벌 시장 선도 K-블루 푸드 수출 전략’을 발표하며,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블루 푸드 수출 규모를 2027년까지 45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블루 푸드(blue food)’란 생선, 조개류, 해조류와 같은 수산 식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 기관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수산 식품’이라는 엄연한 우리말을 두고 ‘블루 푸드’라는 외국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블루 푸드’라는 용어가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21년 7월이다. 26~28일에 열린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에서 세계 빈곤과 불평등을 퇴치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식생활을 전환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발표된 7개 실천 연합 중 기아 종식, 지역농산물 활용 학교급식, 식품 폐기물 감축 등과 더불어 ‘블루 푸드’가 꼽혔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지구 온난화 등 환경 위기를 맞아 수산 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잡지 <네이처> 등의 분석에 따르면 수산 식품은 먹거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생길 환경 오염의 가능성이 비교적 낮고 온실가스 방출량도 상대적으로 적다.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가 수산 식품에 주목한 이유다. 그래서 해수부도 “수산 식품이 최근 ‘블루 푸드’로 재정의되며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미래 식량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육성 방향을 설명(<주간조선>, 2023년 5월)”한 것이다. 나아가 ‘블루 푸드’라는 용어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7월 11일자 기사에서 “(설문 응답자 중) ‘블루 푸드’ 용어를 ‘못 들어봤다’고 답한 비중은 71.4%로 조사됐다”며 “미래수산특위는 ‘국민들이 블루 푸드의 영양학·환경적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 SNS,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한 정보 제공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정부는 ‘수산 식품’이라는 기존 용어에 ‘친환경’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블루 푸드’라는 외국어를 의도적으로 도입하여 홍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외국어를 써야만 하는 것일까? <뉴시스> 역시 2023년 1월 4일 기사에서 “바다를 연상시키는 ‘블루’로 그 뜻을 유추할 수도 있지만, 생소하다. 일반 국민들이 알기 쉽게 수산물이나 수산 식품, 미래 먹거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게다가 ‘블루 푸드’는 영어사전에 ‘색깔이 푸른 음식(블루베리, 블랙베리, 건포도 등)을 일컫는 말’로 등재되어 있는 바, 의미가 혼동될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블루 푸드’는 어떤 우리말로 갈음할 수 있을까. 그동안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우리말 가운데 ‘블루’라는 단어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대체되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로, ‘블루 콘텐츠’는 ‘해양 문화자원’으로, ‘블루 벨트’는 ‘청정수역, 근해 보호지역’으로, ‘블루칩’은 ‘우량주’로, ‘블루오션’은 ‘대안시장’으로 제시했다. 이번에 ‘블루 푸드’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서는 기존에 쓰여온 ‘수산 식품’, ‘푸르다/파랗다’는 색깔을 살린 ‘물푸른 식품’, ‘청청식품’을 후보말로 올렸다. ‘블루 푸드’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긴다면 ‘푸른 식품’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겠으나, 녹색 식품으로 혼동할 수 있어서 제외했다. 국민여론조사 결과, 익숙하게 접해온 ‘수산 식품’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최종 우리말로 결정되었다. 제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수산 식품에 긍정적인 의미를 더 부여하겠다는 정부 등의 의도는 좋았으나, 기왕 대대적으로 홍보할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영어 이름을 붙이는 대신 좀 더 새롭고 멋진 우리말 표현을 만들어냈다면 더욱 바람직했으리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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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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