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

어려운 외국어의 우리말 대체, 언론이 먼저다

  • 등록일: 2021.12.09
  • 조회수: 1,670

어려운 외국어의 우리말 대체, 언론이 먼저다

최보기(작가, 서평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에게 가장 난감한 문제 중 하나는 아마도 ‘망각’일 것이다. 양로원과 청년복지센터 개소식, 지역 축제 등 공식 행사는 물론 개별 복지 서비스 제공까지 주민을 직접 만나는 일이 잦다. 미리 원고를 준비해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즉석에서 인사말이나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때 꼭 해야 할 말이나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당황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이런 일은 주로 해당 용어가 어려운 외국어일 때 많이 발생한다.


그림 1. 즉석에서 연설을 해야 할 때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당황하기도 한다. 그림 1. 즉석에서 연설을 해야 할 때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당황하기도 한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거시기’다. 이 ‘거시기’는 사투리가 아니라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말인데 ‘거시기: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 않거나 직접 말하기 곤란한 사람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 ‘거시기하다: 적당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상태나 속성을 언급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현장 실무 공무원에게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쓰라고 하는데, 외국어를 대체하기에 적당한 우리말을 찾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누구나 익숙하게 쓰는 외국어 중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치킨처럼 이미 우리 국어 체계에 편입돼 국어 단어로 허용된, 쉬운(?) 외래어가 있는데 해당 외국어가 외래어인지 아닌지 딱 부러지게 판별해 주는 ‘규정’이 없는 것도 실무 공무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예를 들어 공공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쓰는 ‘콘텐츠(Contents)’라는 단어가 있다. 지역 축제를 기획할 때 ‘자발적 주민 참여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 콘텐츠 강화’ 같은 문장에 쓰고, ‘스마트 도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때는 ‘다양한 IT 콘텐츠 강화’ 식으로 쓴다. ‘문화 콘텐츠, 디지털 콘텐츠, 교육 콘텐츠, 공동체 의식 강화 콘텐츠, 킬러 콘텐츠’ 등으로 매우 널리 쓰는데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 따라 번역하자면 ‘내용’, ‘내용물’, ‘내실’ 등이 가능하겠으나 어떤 단어도 콘텐츠가 내포하는 의미를 100% 대변하지 못한다. 우리말로 설명하기는 복잡하지만, 암묵적으로 화자와 청자 사이에 통하는 ‘거시기’가 콘텐츠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콘텐츠와 유사한 단어로 센터(Center)가 있다. ‘주간보호소’나 ‘주간보호터’로 써도 되는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나 ‘도시농업센터’, ‘청년복지센터’ 등 어떤 목적을 위해 물리적 공간이 생겼는데 간판이 애매하거든 그냥 ‘000 센터’로 하면 거의 해결된다.


그림 2. ‘콘텐츠’를 사용한 공공기관 보도자료 그림 2. ‘콘텐츠’를 사용한 공공기관 보도자료 

이때 반드시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상황이 되면 공무원들은 주로 가장 최근 대체어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용례를 찾는데, 공적 기능이 있는 언론 기사를 상대적으로 많이 참조한다. 누가 뭐라고 하면 ‘언론사 기자도 그렇게 썼다.’라고 하면 충분히 면피할 수 있어 그렇다. 그러므로 어려운 외국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하려면 관계 기관이나 단체에서 무엇보다 언론을 향한 계도 활동을 우선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조형근

최보기(작가, 서평가)

  • 관악구청 청년정책과
  • 구로구청 구정연구관
  • ‘최보기의 책보기’ 연재 서평가
  • <저서 『거금도 연가』 『놓치기 아까운 젊은 날의 책들』 『박사성이 죽었다』 『독한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