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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워크’는 시민들이 국제관계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 수 있을까?

  • 등록일: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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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워크’는 시민들이 국제관계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 수 있을까?  

정태석(전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요즈음 국제관계에서 협력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표현하는 용어로 ‘프레임워크’라는 외국어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등에서도 볼 수 있고, 또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라는 기후변화 협약에서도 ‘프레임워크 컨벤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프레임워크(framework)’는 프레임(frame)과 워크(work)의 합성어인데, 프레임은 구조물의 뼈대나 틀을 의미하며 워크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것을 풀어서 설명하면 ‘어떤 작업의 얼개나 짜임새’ 정도가 되는데, 한자어로는 ‘골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프레임워크가 어떤 작업과 관련되어 있는지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아서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이런 이유로 우리말 번역어를 일률적으로 정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학문적 연구 활동을 시작할 때 학자들은 연구를 어떻게 진행해 갈 것인지를 구상하게 되는데, 이때 연구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짠다고 말한다.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들을 선택하고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상상해보면서 해석이나 설명의 기본 틀이 될 개념들의 얼개를 짜보는 것이다. 이처럼 학문적 구상은 서로 연관되는 개념들을 인과관계의 흐름에 따라 배치해보는 과정인데, 이것을 ‘conceptual framework’라고 한다. 우리말로 하면 ‘개념 틀’쯤 된다.

그렇다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나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서 프레임워크는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는 것이 좋을까?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는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에 있는 나라들이 경제적 교류를 위해 협력하는 조직을 말하는데, 이때 프레임워크는 교류조직이나 협력조직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래서 인도-태평양 ‘경제 협력조직’, ‘경제 협력틀’, ‘경제 협력체’와 같이 쓸 수 있겠다. 비슷한 맥락에서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목적으로 여러 나라가 서로 협력하기 위한 체계를 말하므로,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는 ‘생물다양성 협력체계’나 ‘생물다양성 협력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서 프레임워크는 협약(convention)을 수식하는 단어로서 기후변화에 관한 ‘뼈대가 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기본이 되는 틀’이라는 의미에서 ‘Framework Convention’은 ‘기본 협약’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그림1. IPEF는 '인도-태평양 경제 협력조직/경제 협력틀/경제 협력체'로 쓸 수 있다.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공식 블로그)


이처럼 ‘프레임워크’는 하나의 통일된 번역어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또 뼈대, 골격, 틀과 같은 우리말을 그대로 살려 ‘인도-태평양 경제 골격’이나 ‘생물다양성 틀’로 번역하는 것도 너무 어색해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 같지 않다. 결국 의미도 살릴 수 있고 사람들이 사용하기에도 어색함이 적은 번역어를 찾는 것이 최선일 텐데,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의미에 맞춰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거나 다른 단어와 결합하여 사용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프레임워크를 직역하면 뼈대, 골격, 틀이 되겠지만, 맥락에 따라 의미를 살려본다면 협력틀, 조직틀, 협의틀, 실행틀 등으로 옮겨볼 수도 있고, ‘틀’ 대신에 ‘체’나 ‘체계’를 넣어 협력체(계), 조직체(계), 협의체(계), 실행체계 등으로 옮겨볼 수도 있겠다.

2022년 12월 2일, 한글문화연대는 ‘로마자 약칭 대응 방안-우리말 약칭 만들기’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오늘날 세계화가 확대되고 국제 교류가 늘어나면서, 국제협력 조직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세계시장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기후 위기나 전염병 등으로 지구적 협력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어서 앞으로 로마자 약칭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누가 무슨 일로 어떤 협력체를 만들었는지를 쉽게 알지 못한다면, 좋은 의미로 만든 협력체들이나 거기서 맺어진 협약들은 시민 대중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이름만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우리말 약칭을 만드는 일이 꼭 필요하다. 물론 이 일은 누가 도맡아 할 수는 있는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점에서 한글문화연대의 ‘우리말 약칭 만들기’ 활동은 공공의 공간에서 시민 대중이 알기 쉬운 말을 사용하자고 하는 ‘공공언어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서로서로 좋은 우리말 번역어를 제안하려고 노력하고, 다양한 번역어들이 서로 경합하며 좋은 번역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말은 말뜻을 쉽게 알아챌 수 있으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더 좋은 공공언어가 될 것이다.

사진그림2. 누가 무슨 일로 어떤 협력체를 만들었는지를 쉽게 알지 못한다면,
좋은 의미로 만든 협력체들이나 거기서 맺어진 협약들은 시민 대중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
(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저자

정태석

  • 전북대학교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 비판사회학회 <경제와사회> 편집위원, 한국환경사회학회 감사,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역임
    저서로 “시민사회의 다원적 적대들과 민주주의”, “행복의 사회학”, “한국인의 에너지, 평등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