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

죽음을 죽음이라 이야기할 수 있기를

  • 등록일: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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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죽음이라 이야기할 수 있기를
                                    _ 웰다잉과 존엄한 죽음

유 경(사회복지사,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2004년 서울의 한 노인대학에서의 특강이 시작이었다.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썼던 저자”¹⁾라는 기사 내용처럼, 내가 죽음준비교육 현장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는 수강생 대부분이 어르신인 까닭에 조심스럽기도 했고 ‘죽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심해, 강의 제목에 ‘죽음’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담당자들과 번번이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떠남의 모든 과정을 품위 있고 존엄하게 대처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삶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죽음을 죽음이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강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는 담당자들의 의견에 마냥 반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빼고 만든 죽음준비교육과정 제목으로는 ‘하늘소풍 이야기, 아름다운 마무리 준비 교실, 홀로 가는 길’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진그림1. 죽음준비교육을 듣는 어르신들


그러던 중 ‘웰다잉(well-dying)’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2006년 미국의 ‘좋은 죽음’(Good Death)을 ‘웰다잉’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²⁾했다고 하지만 아직 규범 표기도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 뜻 또한 “임종문화에 관한 포괄적 용어로 정확한 정의 없이 사용되고 있”³⁾다. 내 개인의 경험으로는 죽음준비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던 시기가 마침 우리 사회에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던 시기와 겹치면서 웰빙의 짝 단어로 웰다잉이 등장했고, 별다른 이의 없이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웰다잉은 강의 제목뿐만 아니라 시민운동단체 이름에도, 지방자치단체 조례에도 본래 우리말이었던 것처럼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웰다잉을 알기 쉽게, 특히 죽음준비에 가장 관심이 많은 노년 세대가 단번에 이해하도록 바꿀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도 다양하게 정의하는 웰다잉의 뜻 - 좋은 죽음, 훌륭한 죽음, 준비된 죽음,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 편안하고 고통 없이 죽는 것, 행복한 죽음 맞이,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 유언 작성∙장례 준비∙상속과 기부∙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물건 정리∙관계 바로 세우기 등 - 모두를 아우르면서 좋은 죽음의 ‘죽음(Death)’과 웰다잉의 ‘죽어감(Dying)’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죽음 자체는 물론이고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함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또한, 이미 웰다잉을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나 제목에 그대로 집어넣어도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 좋겠다.

현재 사용하는 말 중에서 “존엄한 죽음”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에서도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⁴⁾이라고 밝히고 있다. 죽음의 시기를 인위적으로 무리하게 앞당기는 일(예: 자살), 현대 의학 기술에 의존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기를 놓치는 일(예: 지나친 연명의료), 삶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예: 중증 치매 노인의 요양시설 임종)이 무수히 발생하는 현실에서,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로 웰다잉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명칭에 적용해본다면, 〈서울특별시 웰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는 〈서울특별시 존엄한 죽음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로 바꾸어도 그 의미나 문장 흐름에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고독사(또는 무연사, 無緣死)도 인간의 삶과 죽음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는 가장 적나라한 현장이기에 사회 전체가 나서서 관심을 갖고 대책을 세우려 노력하는 것이니 존엄한 죽음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웰빙은 웰다잉으로 완성되고 웰다잉의 끝은 결국 생명 존중과 생명 사랑에 이르게 되는데, 존엄한 죽음이야말로 삶의 완성이며 생명 존중과 생명 사랑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죽어감’에 닿게 된다. 우리가 존엄한 죽음을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속에는 그 과정 또한 존엄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인데,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을 통해 존엄한 죽음과 존엄하게 죽어감을 충분히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사진그림2. 죽음준비교육 수업 중 작성한 어르신의 자필 유언장


다만 존엄사와 안락사의 의미가 혼동되고 ‘조력존엄사’⁵⁾가 논의되는 현실에서. ‘존엄한 죽음’을 ‘웰다잉’의 대체 언어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정확하게 그 뜻을 풀이하고 그 말이 품고 있는 다양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존엄한 죽음은 서로가 서로를 상호 인정하고 존엄하게 대우하는 삶의 끝자락에 만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품위이다. 그러므로 존엄한 죽음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과정과 순간 역시 친절과 배려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1) 2008. 11. 6. 연합뉴스
2)『지혜로운 삶을 위한 웰다잉』(건양대학교 웰다잉 융합연구회, 2016)
3)『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보건복지부∙국가생명윤리정책원, 2019)
4)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 제1조(목적)
5)말기환자에 해당하는 사람 중 조력존엄사대상자가 본인의 의사로 담당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하
    는 것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2022. 6. 15 발의. 의안번호 15986. 3쪽) 

저자

유 경

  • 사회복지사,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 『마흔에서 아흔까지』, 『유 경의 죽음준비학교』, 『엄마의 공책(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