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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 49. 끼워 맞춘 '블루 푸드', 국민의 선택은 '수산 식품'

  • 등록일: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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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끼워 맞춘 '블루 푸드', 국민의 선택은 '수산 식품'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해양수산부는 2023년 5월 17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글로벌 시장 선도 K-블루 푸드 수출 전략’을 발표하며,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블루 푸드 수출 규모를 2027년까지 45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블루 푸드(blue food)’란 생선, 조개류, 해조류와 같은 수산 식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 기관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수산 식품’이라는 엄연한 우리말을 두고 ‘블루 푸드’라는 외국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블루 푸드’라는 용어가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21년 7월이다. 26~28일에 열린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에서 세계 빈곤과 불평등을 퇴치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식생활을 전환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발표된 7개 실천 연합 중 기아 종식, 지역농산물 활용 학교급식, 식품 폐기물 감축 등과 더불어 ‘블루 푸드’가 꼽혔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지구 온난화 등 환경 위기를 맞아 수산 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잡지 <네이처> 등의 분석에 따르면 수산 식품은 먹거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생길 환경 오염의 가능성이 비교적 낮고 온실가스 방출량도 상대적으로 적다.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가 수산 식품에 주목한 이유다.

그래서 해수부도 “수산 식품이 최근 ‘블루 푸드’로 재정의되며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미래 식량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육성 방향을 설명(<주간조선>, 2023년 5월)”한 것이다. 나아가 ‘블루 푸드’라는 용어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7월 11일자 기사에서 “(설문 응답자 중) ‘블루 푸드’ 용어를 ‘못 들어봤다’고 답한 비중은 71.4%로 조사됐다”며 “미래수산특위는 ‘국민들이 블루 푸드의 영양학·환경적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 SNS,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한 정보 제공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정부는 ‘수산 식품’이라는 기존 용어에 ‘친환경’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블루 푸드’라는 외국어를 의도적으로 도입하여 홍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외국어를 써야만 하는 것일까? <뉴시스> 역시 2023년 1월 4일 기사에서 “바다를 연상시키는 ‘블루’로 그 뜻을 유추할 수도 있지만, 생소하다. 일반 국민들이 알기 쉽게 수산물이나 수산 식품, 미래 먹거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게다가 ‘블루 푸드’는 영어사전에 ‘색깔이 푸른 음식(블루베리, 블랙베리, 건포도 등)을 일컫는 말’로 등재되어 있는 바, 의미가 혼동될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블루 푸드’는 어떤 우리말로 갈음할 수 있을까. 그동안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우리말 가운데 ‘블루’라는 단어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대체되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로, ‘블루 콘텐츠’는 ‘해양 문화자원’으로, ‘블루 벨트’는 ‘청정수역, 근해 보호지역’으로, ‘블루칩’은 ‘우량주’로, ‘블루오션’은 ‘대안시장’으로 제시했다.

이번에 ‘블루 푸드’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서는 기존에 쓰여온 ‘수산 식품’, ‘푸르다/파랗다’는 색깔을 살린 ‘물푸른 식품’, ‘청청식품’을 후보말로 올렸다. ‘블루 푸드’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긴다면 ‘푸른 식품’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겠으나, 녹색 식품으로 혼동할 수 있어서 제외했다.

국민여론조사 결과, 익숙하게 접해온 ‘수산 식품’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최종 우리말로 결정되었다. 제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수산 식품에 긍정적인 의미를 더 부여하겠다는 정부 등의 의도는 좋았으나, 기왕 대대적으로 홍보할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영어 이름을 붙이는 대신 좀 더 새롭고 멋진 우리말 표현을 만들어냈다면 더욱 바람직했으리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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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희

  •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