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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슬 컬처, 그 용어의 모호함

  • 등록일: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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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슬 컬처, 그 용어의 모호함

장민지(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캔슬이라는 용어는 사전적으로 ‘취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내가 무언가를 실행하고자 계획했던 것을 없던 일로 되돌리는 것을 뜻한다. 약속이나 예약을 취소할 때, 우리는 외국어인 ‘캔슬(취소하다)’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캔슬 컬처라는 용어가 수사하고 있는 사회현상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기는 어렵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캔슬 컬처라는 용어에서의 ‘캔슬(cancel), 캔슬링(canceling)’이라는 영단어의 의미는 ‘공인들의 행동이나 의견에 관해 반대하거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이러한 반대 의사를 표면화’하고, 그들의 지지를 가시적으로 철회, 즉 취소하는 온라인 문화 현상을 뜻하고 있다(서경주, 2020). 캔슬 컬처는 인종, 종교 혹은 성 소수자들을 차별, 혐오하는 발언을 한 공인들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해시태그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이를 가시화하는 운동에서 시작된 역사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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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현상을 온라인상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단적으로 아이돌 멤버들의 학교폭력 사태가 온라인에서 다양한 증거를 통해 드러나자 그들의 지지를 철회하겠다(보이콧)는 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기획사들은 일제히 입장문과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광고주들은 재빠르게 그들을 광고계에서 삭제하기 시작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스비에스(SBS)의 과도한 역사 왜곡에 대한 수용자들의 강력한 비판과 이로 인한 <조선구마사> 드라마의 편성 취소는 바로 캔슬 컬처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수용자들의 강력한 저항과 판결이 대중적인 낙인 효과를 갖게 되었고, 이로 인한 대중적 인식의 변화가 실질적인 행동까지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캔슬 컬처라는 외국어의 사용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실질적인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심지어 어려움을 ‘더욱’ 겪게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우리가 캔슬이라는 외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캔슬 컬처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반대 의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의 ‘캔슬’이라는 방식이 이 용어를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캔슬은 ‘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캔슬 컬처에서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또한 적극적인 행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캔슬 컬처’라는 용어보다 ‘등돌림 문화’와 같은 한국어 사용이 훨씬 더 이 문화를 이해하는데 직관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배달의 민족>에 입점한 식당들이 소비자들의 평점과 리뷰를 왜 관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배달의 민족을 이용하는 구매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음식을 소비하는 위치만을 점유하진 않는다. 식당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리뷰와 높은 별점을 얻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이용자들은 리뷰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그리고 그 의견들은 웹 상으로 축적되어 다방면으로 노출된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어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화제가 된 현상들이 또 다른 사이트로 옮겨가며 계속 공유되고, 확산된다. 이것이 일상적으로 우리가 접해온 ‘등돌림 문화’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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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화 현상은 캔슬 컬처라는 용어보다 ‘등돌림 문화’라는 한국어를 통해 설명되기 용이한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박재범이 마이스페이스(myspace)*에 올린 글 때문에 빚어진 2PM 탈퇴사건은 단순한 소비자로 위치되었던 팬덤이 이에 반박하며 그가 속해 있었던 2PM의 모든 활동을 불매하고 배척(보이콧)하겠다는 대규모 시위로 확장되면서 주목받았다. 이 또한 팬들이 대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기획사로부터 등을 돌린 사건이다.

‘등돌림 문화’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단순히 수용자가 수용에 대해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며 대규모의 집단 행위를 동반한다는 문화적 현상을 설명하는데 용이하다. 특히 이러한 문화는 단순히 이전까지의 소극적인 수용거부와는 다른 행태를 보인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 생산-수용 위계에서 하부에 위치하던 수용자의 권력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 힘을 바탕으로 이러한 위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갖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는 면에서 이 용어의 한국적 사용이 빛을 발한다고 볼 수 있다.

*마이스페이스: 우리나라의 네이버 블로그, 싸이월드와 유사한 온라인 가상공간. 현재는 없어졌다.

서경주(2020). 캔슬컬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언론중재>.156.
Jenkins, H., Ford, S., & Green, J. (2013). Spreadable media. New York University Press.
Tom Cowie(2019.12.2.). The Sydney Morning Herald.
https://www.smh.com.au/culture/books/cancel-culture-is-the-macquarie-dictionary-s-word-of-the-year-for-2019-20191202-p53fzy.html

저자

장민지

  •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조교수
  • 저서: <섹슈얼리티와 퀴어>,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