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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끼워 맞춘 '블루 푸드', 국민의 선택은 '수산 식품'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해양수산부는 2023년 5월 17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글로벌 시장 선도 K-블루 푸드 수출 전략’을 발표하며,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블루 푸드 수출 규모를 2027년까지 45억 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블루 푸드(blue food)’란 생선, 조개류, 해조류와 같은 수산 식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 기관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수산 식품’이라는 엄연한 우리말을 두고 ‘블루 푸드’라는 외국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블루 푸드’라는 용어가 국내 언론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21년 7월이다. 26~28일에 열린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에서 세계 빈곤과 불평등을 퇴치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식생활을 전환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발표된 7개 실천 연합 중 기아 종식, 지역농산물 활용 학교급식, 식품 폐기물 감축 등과 더불어 ‘블루 푸드’가 꼽혔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지구 온난화 등 환경 위기를 맞아 수산 식품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잡지 <네이처> 등의 분석에 따르면 수산 식품은 먹거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생길 환경 오염의 가능성이 비교적 낮고 온실가스 방출량도 상대적으로 적다. 유엔 푸드시스템 정상회의가 수산 식품에 주목한 이유다. 그래서 해수부도 “수산 식품이 최근 ‘블루 푸드’로 재정의되며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미래 식량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육성 방향을 설명(<주간조선>, 2023년 5월)”한 것이다. 나아가 ‘블루 푸드’라는 용어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7월 11일자 기사에서 “(설문 응답자 중) ‘블루 푸드’ 용어를 ‘못 들어봤다’고 답한 비중은 71.4%로 조사됐다”며 “미래수산특위는 ‘국민들이 블루 푸드의 영양학·환경적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언론, SNS, 온라인 플랫폼 등을 활용한 정보 제공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정부는 ‘수산 식품’이라는 기존 용어에 ‘친환경’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블루 푸드’라는 외국어를 의도적으로 도입하여 홍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외국어를 써야만 하는 것일까? <뉴시스> 역시 2023년 1월 4일 기사에서 “바다를 연상시키는 ‘블루’로 그 뜻을 유추할 수도 있지만, 생소하다. 일반 국민들이 알기 쉽게 수산물이나 수산 식품, 미래 먹거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게다가 ‘블루 푸드’는 영어사전에 ‘색깔이 푸른 음식(블루베리, 블랙베리, 건포도 등)을 일컫는 말’로 등재되어 있는 바, 의미가 혼동될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블루 푸드’는 어떤 우리말로 갈음할 수 있을까. 그동안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우리말 가운데 ‘블루’라는 단어는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대체되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로, ‘블루 콘텐츠’는 ‘해양 문화자원’으로, ‘블루 벨트’는 ‘청정수역, 근해 보호지역’으로, ‘블루칩’은 ‘우량주’로, ‘블루오션’은 ‘대안시장’으로 제시했다. 이번에 ‘블루 푸드’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서는 기존에 쓰여온 ‘수산 식품’, ‘푸르다/파랗다’는 색깔을 살린 ‘물푸른 식품’, ‘청청식품’을 후보말로 올렸다. ‘블루 푸드’를 고스란히 우리말로 옮긴다면 ‘푸른 식품’이라는 표현도 가능하겠으나, 녹색 식품으로 혼동할 수 있어서 제외했다. 국민여론조사 결과, 익숙하게 접해온 ‘수산 식품’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최종 우리말로 결정되었다. 제 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수산 식품에 긍정적인 의미를 더 부여하겠다는 정부 등의 의도는 좋았으나, 기왕 대대적으로 홍보할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영어 이름을 붙이는 대신 좀 더 새롭고 멋진 우리말 표현을 만들어냈다면 더욱 바람직했으리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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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국산 영어 그린 오션 대신 친환경 시장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특정 산업을 시장 점유 정도, 발전 가능성 등에 따라 색깔로 나타낸 영어 명칭들이 있다. 아직 경쟁자가 없는 유망시장을 가리키는 ‘블루 오션’, 경쟁이 심하고 포화상태에 이른 시장 ‘레드 오션’, 기존 레드 오션에 발상의 전환을 꾀해 새로운 시장 가치를 개척하는 ‘퍼플 오션’이 그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미 이들 중 ‘블루 오션’을 ‘대안 시장’으로, ‘레드 오션’을 ‘포화 시장’으로 다듬어 선보인 바 있다. 아직 ‘퍼플 오션’은 우리 새말로 다듬어 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색깔’이 등장했다. ‘그린 오션(green ocean)’이다. ‘그린’이라는 단어의 쓰임새로 뜻을 짐작해보시라. 농산물 시장? 그럴 수도 있겠다. 실제로 2006년 한 신문에서 그런 의미로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 이 용어는 ‘친환경이 가진 가치를 경쟁 요소로 내세워 새로운 시장과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뜻한다. 영어에서 ‘친환경’은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 혹은 말머리에 ‘에코’만을 붙여 표현하지만 ‘그린’ 역시 보편적으로 쓰인다. 친환경 단체로 유명한 ‘그린 피스’나 ‘친환경 에너지원’을 뜻하는 ‘그린 에너지’ 등이 익숙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그린 오션’도 영어권에서 쓰이는 말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영어권에서 ‘그린 오션’은 ‘녹색’이라는 단어의 원뜻 그대로 ‘녹색 바다’라는 뜻이다. 친환경과 관련된 뜻은 없다. 환경친화적 산업, 혹은 친환경 시장을 의미하는 ‘그린 오션’은 ‘국산 신조어’인 셈이다. 언론에서 ‘그린 오션’을 처음 언급한 것은 2005년 7월 <경향신문> 기사이다. 당시 경제 전문가 인터뷰에서 “경제와 환경이 살아야 사회가 산다는 ‘그린 경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발언에 기자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그린 오션’이 요구된다는 말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인 것이 첫 사례다. 이후 한동안 쓰임새가 잦지 않았던 이 표현은 2000년대 말 무렵부터 시민 환경 의식이 높아지고 친환경 상품이나 사업이 각광을 받으며 자주 쓰이게 되었다. 언론 용례는 다음과 같다. “음료 가운데 가장 먼저 비닐 라벨을 제거한 생수업계는 이에스지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친환경을 기반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그린 오션’ 진출에 앞장서고 있다.” (<매일경제> 2021년 10월) “그린 오션이 세계 경제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각국이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도체부터 자동차, 전자, 금융, 식품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 걸쳐 경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이투데이> 2021년 6월) 이외에도 친환경과 관련해 ‘그린’이라는 표현이 비 온 뒤 대나무 순 돋듯 등장했는데, 이미 많은 ‘그린~’이 새말로 다듬어져 발표되었다. ‘그린 모빌리티’는 ‘친환경 이동 수단’, ‘그린 테일’은 ‘친환경 유통’, ‘그린웨이’는 녹색길, ‘그린 시티’는 ‘녹색도시’, ‘그린슈머’는 ‘녹색소비자’ 등 대부분 ‘친환경’ 혹은 ‘녹색’으로 다듬어졌다. 그런 맥락에서 ‘그린 오션’도 ‘친환경’ 혹은 ‘녹색’으로 바꾸어 넣고, ‘오션’을 ‘시장’ 혹은 ‘산업’으로 대체해 조합한 새말을 후보로 올렸고, 그 중 설문조사 결과 88.1%의 높은 선호도를 보인 ‘친환경 시장’이 새말로 결정되었다(‘녹색 산업’이 76%, ‘녹색 시장’은 67%). 한편 씁쓸한 사실은 영어권에서도 쓰지 않는 ‘국산 영어’, 불필요한 영어 신조어를 국민들에게 ‘적극 소개하고 홍보하는’ 데 정부 관련 기관들이 여전히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 지정 국가환경교육센터 누리집은 ‘새 환경용어’라며 “최근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개념, 그린 오션이 등장했다”고 홍보하는가 하면, 초중등 학생을 대상으로 ‘그린 환경일기’를 공모하기도 했다.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누리집에서 역시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경계하고, 리얼그린(Real Green)을 실천해야 해요”라는 글과 함께 ‘리유저블컵’, ‘리필스테이션’ 같은 영어가 등장하고 있다. 환경만 사랑해서 쓰겠는가. 우리말도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검색을 계속하던 중 앞에서 말한 환경교육센터 누리집에서 ‘초록작당소’라는 단어와 마주쳤다. 정부가 환경 교육을 진행하고자 하는 시민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는 장비와 공간에 붙은 이름이었다. 이 얼마나 깜찍하고 발랄한가. 앞으로 ‘그린 어쩌고 센터’ ‘에코 어쩌고 플레이스’ 대신 이런 이름을 보다 자주 접할 수 있길 바라본다. ※ 새말 모임은 어려운 외래 '다듬을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새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문학, 정보통신, 환경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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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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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마이크로 투어리즘? 근거리 여행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이전에 가끔 쓰였던 용어가 시기적 상황 때문에 갑자기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이크로 투어리즘’(micro tourism) 역시 그렇다. 코로나19 때문에 급부상한 용어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대형 관광지를 찾는 ‘매크로(macro) 투어리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이 소규모 단위로 멀지 않은 곳의 숨은 명소를 찾는 방식의 여행을 일컫는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으려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등 외국 여행이 위축되고, 사람들 스스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유명 여행지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뜬’ 여행 방식이다. 비교적 가깝고 좁은 범위의 지역을 소규모 인원으로 여행하다 보니 ‘주마간산’식 관광이 아니라 현지의 소소한 볼거리를 밀착해 들여다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우리 언론에 처음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언제였을까.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최초의 기사는 2009년의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친환경적 생태 여행의 하나로 자전거 여행을 권장하기 위해 ‘느린 템포로 구석구석 둘러보는’ 방식을 제안하며 사용됐다. 하지만 이때 한 번 반짝 등장한 이후로 10년간은 드문드문 쓰였던 용어인데, 코로나 시대를 맞아 2020년부터 그 쓰임의 봇물이 터졌다. “감염자가 많은 지역의 자택에서 약간 떨어진 호텔과 여관에서 마이크로 투어리즘을 시험하는 직장인도 있다.”(중앙일보 2021년 12월), “비용이 더 싼 것은 물론 곁에 두고도 미처 몰랐던 고향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 … 짧은 이동 거리와 소소한 볼거리가 특징”(오비에스2020년 6월) 등의 기사가 그 예다. 혹은 “새로운 곳을 탐방하는 것을 선호하던 기존의 여행과 달리 친근하고 자신이 잘 아는 곳을 방문해 그 안에서 미처 몰랐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여행 스타일”(스포츠서울 2021년 4월) 을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여행 방식은 코로나 감염 위험을 줄이는 것은 물론 국내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용어다. 불필요한 외국어 사용이라는 점 외에도 마음에 꺼려지는 바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7.2%가 이 말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대체어로서 가장 적합할까. 언론에서는 마이크로 투어리즘이라는 용어와 함께 ‘작은 여행’, ‘근거리 여행’ 등의 풀이를 덧붙여 쓰곤 했다. 더러는 여행의 성격이 지역의 숨어 있는 세세한 가치를 발굴한다는 뜻에서 ‘근거리 밀착 여행’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새말모임에서는 이들 중 ‘작은 여행’과 ‘근거리 여행’을 후보로 골랐고, ‘소소한 여행’도 덧붙였다. 여행의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려면 ‘밀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게 좋겠지만 간결한 표현을 위해 빼기로 했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이 선택한 다듬은 말 후보는 ‘근거리 여행’. 무려 84.2%가 이 용어에 손을 들어 주었다. 사실 영어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작은’이라는 표현이 더 말뜻에 가깝겠고, 가까운 거리를 여행한다는 의미 외에도 여행 단위가 소규모에, 소소한 즐길거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근거리’라는 표현은 품이 좁다는 느낌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들에게는 이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가까운 거리’라는 특징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제는 집단면역력도 높아지고 감염률도 줄어드는 등 코로나19의 위세가 한풀 꺾인 듯 보인다. 외국 여행도 재개되고 각종 ‘대규모’ 여행상품이 다시 시장에 나오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새삼 발견하게 된 ‘근거리 여행’의 미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근거리 여행’을 통해 가까운 지역에서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나만의 보물찾기를 즐겨 보자.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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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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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쉬운 우리 새말] 친환경 의식도 자라고, 우리말 사랑도 자라길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새말 모임에서는 회의마다 6~7개의 외국어 후보 중 두세 개를 골라 알기 쉽게 다듬는다. 아무래도 가장 널리 알려져 시급하게 바꾸어야 할 용어나 비교적 일반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만한 단어부터 우선 살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클린 뷰티’(clean beauty)는 이번 회의에서 이견 없이 제일 먼저 손을 볼 대상으로 꼽혔다. 언론에 최초 등장한 때가 2018년으로 그만큼 다른 후보 말보다 일찍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2022년 3월 25일 기준으로 구글 뉴스에서 무려 2만 2700개가 검색될 만큼 많이 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클린 뷰티’는 ‘유해 성분을 배제하고 환경 보호를 고려해 만드는 화장품’을 이르는 말이다. “자연 유래 유효 성분을 활용한 별도의 케이스가 필요 없는 고체 비누 형태의 샴푸로 환경까지 보호하는 클린 뷰티 제품”(디지틀조선일보 2022년 3월 16일), “지난해 화장품 시장에는 제로 웨이스트와 비건·클린 뷰티 바람이 불었다. 팬데믹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폭증했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위기감이 밀접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컨슈머타임스 2022년 3월 21일) 등 언론 기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다. ‘클린’이라는 말은 ‘클린 뷰티’ 외에도 환경 오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유기농 작물로 만든 음식인 클린 푸드, 친환경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클린 라이프, 생활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수거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쓰레기를 내놓도록 만든 시설인 클린 하우스 등이 그 예다. 이렇게 광범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라서인지 ‘클린 뷰티’를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도 수월했다. 새말모임 위원들의 의견은 금세 ‘친환경 화장품’으로 모였다. ‘뷰티’라는 단어는 ‘아름다움’, ‘미용’을 뜻하는 추상명사지만, ‘클린 뷰티’에서는 ‘화장품’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어서 이를 그대로 옮기기로 했다. 덧붙여 또 다른 다듬은 말 후보로 ‘녹색 화장품’, ‘청정 화장품’을 골랐다. 시민들의 의견은 어땠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클린 뷰티’라는 말이 이미 많이 쓰이고는 있었으나 국민 수용도 조사에서 응답자 71.2%가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새말모임 위원들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친환경 화장품’이 적합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89.8%). 사실 ‘클린 뷰티’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친환경’이라는 뜻을 품고 사용된 것은 아니다. 시작은 ‘내 몸에 해롭지 않은 성분으로 만든 저자극 화장품’으로 ‘환경’보다는 ‘내 몸’에 이롭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 말에 담은 의미가 확대되면서 내 몸에 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자연을 덜 파괴하는 제품을 일컫는 데까지 이른 셈이다. 지금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만든 화장품이나 과대 포장하지 않은 화장품, 내용물을 재충전할 수 있는 용기로 만든 화장품까지 모두 포괄해 ‘클린 뷰티’라 일컫고 있다. 이렇게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고, 환경을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미로 새롭게 생겨나는 개념이나 단어의 많은 수가 영어라는 사실이다. 소비에 신념과 가치를 더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 쓰레기 배출을 0에 가깝게 줄인다는 ‘제로 웨이스트’,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식물성 재료로 만든 ‘비건 코스메틱’, 친환경적인 콩기름으로 만든 ‘소이 잉크’, 빈 병을 수거해 반납하면 혜택을 주는 ‘공병 프리퀀시’ 등등. 우리말로도 얼마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도 영어로 사용되고 있다. 바라건대 친환경 의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만큼 우리말 사랑도 함께 발맞춰 자라나기를.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을 보호하려는 이들이 우리말도 함께 아끼고 보듬어 ‘쓰레기 안 만들기’, ‘빈 병 모아 보내기’, ‘다시 쓰기’, ‘덜 버리기’와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써 주기를 소망해 본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김정희 한글문화연대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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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김정희
- 등록일 : 20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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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물과 언어 – ‘모빌리티’를 보면서 최기영 / 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최기영 인하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전 인하대학교 국제화사업단장, 현 교무처장) 무인기 개발, 항공우주관련 각종 정책 자문 등 업무 수행 몇 해 전에 유학생 유치와 교류 확대의 목적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중앙아시아는 소련이 해체된 후 독립한 5개의 국가로 구성된 지역으로, 과거에 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투르크(돌궐) 사람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들 국가의 언어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서로 간의 일상적 소통은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이 출장길에 우즈벡인 직원 한 명과 같이 다녔다. 우즈벡은 과거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곳이다. 오랜 기간 동안 동서 교역의 중심이었던 만큼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산다. 중국에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있다고 하는데, 우즈벡은 인구 3천만 명에 150개가 넘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언어도 다양해서 우즈벡인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안다. 공용어인 우즈벡어를 기본으로 서남쪽은 이란과 가까워 페르시아어까지 함께 쓴다. 오랜 기간 소련에 속해 있었기에 도시에 사는 노인들은 러시아어가 더 편하기도 하다. 동행했던 이 친구는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지 한국 회사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한 덕에 가끔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다. 게다가 러시아어와 영어도 잘했기에 어느 나라를 가든 통역으로 든든했다. 한 번은 함께 터키에 갔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그쪽 운전기사와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래서 터키어도 배웠느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터키어도 같은 어족에 속해서 기본적인 말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언어에 특별히 소질이 있는 친구여서 그러려니 했지만, 궁금해서 어떤 말들이 주로 다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비행기’를 예로 들었다. 비행기를 터키어로는 ‘우착 uçak’이라하는데, 우즈벡어로는 ‘사말리오트 samolyot’라고 한다. 우즈벡어 samolyot는 러시아어 ‘써말리오트 самолет’에서 왔다. 우즈벡이 소련에 편입된 것이 1924년이고, 비행기가 우즈벡에서 일상적으로 날아다닌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니 소련이 비행기와 함께 들여온 러시아어가 우즈벡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문물의 발달과 함께 단어들은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 문물이 수입될 때 단어들도 함께 들어오기 일쑤다. 사신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궁전의 사신도 우리가 요즘은 드론이라는 걸 자주 보게 되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그 말을 쓴다. 드론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무인기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영어권에서는 Unmanned Aerial Vehicle 혹은 줄여서 UAV라고 쓰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무인항공기 또는 무인기가 되는 것이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처음 성공한 것이 1903년이었는데 불과 10-20년 후에 혼자서 날아가는 무인기가 등장했다. 물론 그 당시의 무인기는 주로 군사용이고 성능도 지금보다 형편없었지만, 이처럼 무인기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930년대 영국군은 무선 조종기로 날리는 비행기를 개발해서 훈련에 쓰고 있었고, 그걸 본 미국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무인기를 개발했다. 당시 영국의 무인기 이름은 Queen Bee(여왕벌)였는데 이걸 개량한 미국인들은 자기들 무인기에 Drone(수벌)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여기서 우리가 쓰는 드론이라는 용어가 유래하였다. 취미용으로 가지고 다니며 사진이나 찍고 하는 드론이 이제는 승객을 싣고 복잡한 도심을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아직은 개발 단계이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이 도심의 교통체계를 바꿀 혁명적 수단이자 미래의 주요 산업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런 항공기를 언론에서는 ‘드론 택시’라고 부르고 전문가 집단에서는 Urban Air Mobility(도심 항공), 줄여서 UAM이라고 한다. UAM-Cover: 미래 도심 항공운송 체계 (미국 나사NASA)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점점 더 빨라지면서 새로운 물건과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그에 맞게 새로운 말들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도심 항공을 포함한 미래교통체계를 나타내는 말로 많이 쓰는 것이 스마트 모빌리티라는 용어다. 물론 이 말도 우리보다 좀 더 일찍 이 분야에서 기술 개발을 시작한 미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지능형 교통체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능형 smart’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해보면 자율주행 기능이 들어가서 교통상황을 인지하며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데려다 줄 수 있는 수단인데, 실제 스마트 모빌리티는 이 범위를 넘어서 차량 공유, 친환경 등의 개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전동킥보드 같은 이동 수단을 언론에서는 퍼스널 모빌리티라 부르는데, (교통 안전을 담당하는) 경찰에서는 이를 ‘개인형 이동장치’라 부른다. 하나의 용어가 사람마다 분야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나라마다 쓰임새가 다를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교통수단을 나타내는 transportation과 구별하여,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는 체계를 모빌리티라 정의하기도 한다. 내가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빌리티를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가 있어도 꽉 막힌 도로 한가운데 있으면 모빌리티는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파생 기술과 제품이 빠르게 늘어남에 따라 용어와 물건 또는 기술을 1 대 1로 맺어주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OPPAV: 풍동시험 중인 미래형 개인비행기 (항공우주연구원) 블록체인, 오버더탑(OTT), 메타버스, ... 어떻게 보면 우리 일상 속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들인데 그 단어만 봐서는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새로운 용어와 기술에 대한 적응도는 세대와 계층을 가르는 경계석이 될 것이다. 국어의 위기다. 우리말의 구조야 바뀌지 않겠지만, 새로운 문물에 관련된 단어들은 외국어 또는 신조어로 가득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개념조차 사람마다 다르게 쓰일 수 있다. 나라에서 모든 단어를 정의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핵심이 되는 사물, 기술, 개념에 대해서는 사회가 공용으로 쓸 수 있는 표준 단어의 제정이 필요하다. 마치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등 다양한 이름이 혼용될 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용어로 통일했던 것처럼. 그리고 ‘모빌리티’의 쓰임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를 사용 분야에 알맞은 구체성과 추상성을 담은 용어로 번역하려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하나의 말로 1:1 대응이 불가능하니 그냥 외국어를 쓰자는 쪽으로 기울어져 개념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에 한계를 자초할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 때 북한과 협력해서 하면 어떨까 제안한다. 북한은 우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한글전용주의를 실시하고 있고, 외국어를 가급적 우리말로 뜻풀이해서 쓰고 있다. 어떤 단어들은 그 기발함에 놀라기도 한다. 앞의 우즈벡-터키어의 분화에서 본 것처럼 언어는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문물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겪고 난 후에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언어의 이질감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질 것이다. 우리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통된 언어의 사용이 필수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나날이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 세계가 인터넷과 편리한 항공운송 체계를 바탕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그만큼 새로운 개념이 늘어나고,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동일한 개념에 동일한 용어를 써야 하는 기본 방침을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정책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해야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우리 민족 전체가 함께 쓸 수 있는 말들이 정립되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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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최기영
- 등록일 : 202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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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을 ‘사회 가치 경영’으로 부르자 강민정 / 한림대학교 사회혁신경영전공 교수 ‘ESG’가 화두다. 이에스지(ESG)가 뭐지? 최근 ‘SG워너비’를 본뜬 ‘MSG워너비’ 가 있다던데 이에스지는 후속 그룹 이름인가? 에스지워너비는 2천년대 중반 많은 인기를 끌었던 남성 3인조 가수 그룹의 이름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음악 세계를 잇고 싶다는 뜻이라고 들었다. 한때 에스지워너비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필자이기에 그 뜻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뜻을 아는지라 그들의 음악을 더 좋아했다. 이에스지도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꽤 알려진 개념이기에 엠에스지(MSG)나 에스지워너비와 헷갈릴 일은 없으나,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염려되어 주위에 물어보았다. 잘 몰랐고 관심도 없다고 한다. 물론, 전문 분야에 대해 모든 사람이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에스지는 다르다. ‘ESG’는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 기준(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criteria)의 약자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들을 기업의 성과 평가에 적용하는 기준을 뜻한다. 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평가 기준을 고려한 경영이라는 용어를 ‘ESG 경영’이라고 부른다. 어떤 기업이 ‘ESG 경영’을 하겠다는 말은,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 기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기업의 건전한 지배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경영활동의 주요 의사 결정이 전문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벌 기업이 지배주주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지배구조를 왜곡하는 행태는 ‘ESG’ 중 기업지배구조를 뜻하는 ‘G’의 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투명하고 전문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오늘날 많은 기업이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전문적이고 투명한 의사 결정 체계를 갖추었다면 ‘G’ 영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에스지 경영은 새로운 용어 같지만, 그간 기업과 사회의 관계를 나타내어 온 용어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기업 활동과 이해관계자의 관계에 사회적·환경적인 고려 사항들을 통합해 나가는 자발적인 시도를 뜻한다. 공장 폐수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막고 미세 먼지 배출을 최소화하는 활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은, 기업이 사회적·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성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학 교실에서는 물론 기업의 전략경영, 사회공헌 담당자들 사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업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개념으로 ‘공유가치창출(CSV)’이 관심을 받아 왔다. 세계적 기업인 제네럴 일렉트릭스(GE)가 ‘친환경 상상(Ecomagination)’을 통해 환경과 의료 분야의 연구개발 투자 확충 및 신제품 출시로 사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대표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사례가 그것이다. 기존의 ‘CSR’, ‘CSV’가 경영학 연구자들이나 경영인들 사이에서 다뤄지던 상황과는 달리, ‘ESG 경영’은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꽤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그 덕에 일반 시민들에게도 훨씬 많이 노출되고 있다. ‘ESG 경영’이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게 된 것은 기업이 맞닥뜨리는 긴장감의 측면에서, 그리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측면에서 기존의 ‘CSR, CSV’와는 다른 차원으로 기업과 사회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에스지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제기된 개념이다. 기존에는 투자자가 재무적 성과만을 중시하였다면, 이제는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성과들을 고려하여 투자하겠다는 흐름이 생겨났다. 그리고 ‘CSR, CSV’ 접근에서는 이에스지 요소들이 성찰과 전략의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경영활동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투자도 못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짚을 것이, 시민들은 넓은 의미의 투자자이자 이해관계자로서 이에스지 경영의 당사자이다. 시민들은 국민연금의 가입자이자 수혜자로서 이에스지 경영 관점에서 연기금 투자의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또한 시민들은 기업 경영의 이해관계자로서, 기업은 시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시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민사회는 직접적인 투자자 관점을 넘어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이에스지 경영을 판단하고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에스지 경영’이라는 용어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와닿는가? 시민들은 이에스지 경영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고, 이에스지 경영을 이루고 있는 기준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이에스지 경영’이라고 부르면 대다수는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느낄 것이다. 혹시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아직도 시민들을 그런 존재로 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도 드는 순간이다. 일상에서 쓰이는 언어는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강화한다. 이대로 이에스지 경영을 계속 쓸 경우, 이에스지 경영의 주요한 당사자인 시민은 자신이 당사자인줄도 모른 채,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로 여기고 외면할 것이 자명하다.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 기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경영’. 길기는 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뜻을 잘 나타내는 짧으면서도 영향력 있는 용어로 나는 ‘사회 가치 경영’을 제안한다.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를 번역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에 수동적인 의미로서 ‘책임’을 요구했다면, 이제 이에스지 경영의 흐름 속에서 기업은 인류가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관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환경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어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투자도 많이 받고 시민들의 신뢰와 사랑도 받게 된다. 기업 경영의 새로운 흐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이에스지 경영에 대해 시민들이 알게끔 하자. 시민은 기업 경영의 이해관계자로서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평가기준’에서 볼 때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는 칭찬을,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비판을 가함으로써 기업들이 올바른 ‘기업 시민(Corporate Citizenship)’으로서 지속가능한 기업과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도 시민도 지금 그 기회를 맞았다. 이를 위해 먼저 ‘ESG 경영’이라는 아리송한 말이 아니라 쉬운 말로 하자. ‘사회가치경영’이 그것이다. 강민정 현재 한림대학교 사회혁신경영전공 교수 카이스트 경영대학 사회적기업가MBA 연구부교수, SK텔레콤 경영전략실 부장 역임 저서: 《탈일자리 시대와 청년의 일》 (박영사, 2021)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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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자 : 강민정
- 등록일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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