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2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병영문화 개선'은 우리말 사용으로부터

  • 등록자: 유성진
  • 등록일: 2022.11.07
  • 조회수: 466

'병영문화 개선'은 우리말 사용으로부터

유성진(보람상)


 뙤약볕이 내리쬐던 2007년 여름, 부대 간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곧 있을 유격훈련에 대해 이런 저런대화를 나누다가 한 후배가 얘기했다.

 “이번에 ‘패스트로프 훈련’ 참가할 희망자 뽑는다는데, 지원 안 하십니까? 훈련비도 지급된답니다.”

 ‘패스트로프 훈련’이라는 말에 줄다리기가 떠올랐다. 나는 팔 힘이 세서 줄다리기를 곧잘 했기 때문에 ‘어, 그럼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패스트로프 훈련이라는 말에 나는 ‘빠르게 굵은 밧줄 잡아당기기’ 훈련이라고 예상했는데 명확하지 않아서 후배에게 물었다.

 “근데 ‘패스트로프 훈련’이 뭐야?”

 “아, 그거 말입니까? 그런 훈련이 있습니다. 좀 위험한 훈련입니다.”

 후배는 그냥 좀 위험한 훈련이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계속 궁금했다. 도대체 ‘패스트로프 훈련’이 무엇일까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패스트로프는 헬기에 탑승해서 굵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훈련방식이었다. 헬기가 착륙할 수 없는 장소에 헬기의 병력을 배치하는 데 유용한 훈련으로 높은 상공에서 빠르게 강하하는 훈련이었다. ‘패스트로프 훈련’은 영국의 밧줄 제조업체인 ‘말로우 로프(Marlow Ropes)’사에서 처음 개발해서 포클랜드 전쟁 때 처음으로 진행된 훈련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고, 군에서 훈련 명칭으로 계속 사용해 온 것도 확인했다. 그렇지만 나는 ‘저공 밧줄 강하 훈련’이라는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는 여차하면 즉각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 집단이다. 어느 순간에 상황이 급박하게 전환될지 모르기 때문에 용어 하나하나가 전 인원이 즉각 이해할 수 있는 단어여야 한다. 


 군에는 장교, 부사관, 용사라는 신분이 공존한다. 장교들은 교육기관에서 군사 용어, 훈련 용어 등을 자세히 학습하지만 부사관과 용사는 이러한 훈련 용어라든지, 긴박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군사 용어를 자대에서 배우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군 생활 중 이런 용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게 주어지는가? 군 생활 기간은 1년 6개월 정도다. 부대에서 자신이 맡은 직책을 이해하고, 병영생활에서 여러 가지 익혀야 할 것들과 부대 주변 전우들의 이름을 확인하여 적응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현 실태는 어떤가? 부대에서 패스트로프 훈련이 있어서 시행한다고 하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용사들은 ‘그게 뭐지? 하라면 그냥 해야지.’ 하고 그냥 참여한다.

 그 일이 내 머릿속에서 잊힐 무렵, 나는 과학화 전투 훈련을 통제하는 부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사용하는 모든 장비들의 명칭은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점차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었다. ‘이제 군에서도 외국어들을 우리말로 바꾸어 사용하는구나.’ 하는 기쁨과 함께 우리 군도 이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과학화 전투 훈련 장비가 도입되었을 때, 이 장비의 명칭은 ‘마일즈 장비’였는데, ‘마일즈 장비’란 실전 같은 무기 효과 및 전장 효과를 묘사하기 위해 레이저 빔 특성을 이용하여 사격을 모의하고, 화기 사용의 시청각적 효과를 묘사하는 장비다. 이 장비의 명칭이 ‘전투 훈련 장비’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 과장님이 과원들에게 우리 과가 락드릴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락드릴장? 암석과 드릴로 조형물 제작하는 작업장인가 보네.’ 작업을 많이 하는 부대에서 근무하던 나는 당연히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장인 줄 알았다. 과장님께서 준비 물품을 챙기라고 하셔서 전기드릴과 나사못을 잔뜩 챙겼지만 막상 현장에 가서 망신을 당했다. 

 “야, 이 사람아, 그걸 왜 가져왔어? 락드릴장 만든다니까? 락드릴장 몰라? 모의 훈련하는 곳 말이야.”

 그 작업의 준비품은 군사지도와 부대를 표시하는 말판이었다. 그곳은 작업장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하는 모의 전술훈련의 한 형태로 부대 배치나 기동 등을 검증하기 위해 미리 짠 시나리오를 가지고 지도에 아군과 적의 부대 배치, 적의 예상 기동로 및 공격 형태, 아군 기동로 등을 표시해 가면서 작전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큰 공터에서 지도와 부대 말판으로 토의하면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그걸 왜 락드릴이라고 하지? 그럼 진짜 암석을 뚫는 드릴하고 헷갈릴 텐데....’

 내 의문은 현실과 같았다. ‘락드릴(rock drill)’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첫 번째 뜻은 모의 전술훈련이었고, 두 번째 뜻은 암석을 뚫는 드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헷갈릴 수 있는 ‘락드릴’보다는 ‘모의훈련 예행연습’이라든지, ‘전투 개념 모의 진행’ 등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면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저변에서부터 외국 용어들이 우리말로 바뀌고는 있지만, 우리 군은 한미 연합 작전 체계도 있고, 주로 용어들이 미군 또는 연합군에서 유래된 말들이 많아서 외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자주국방을 외치면서 용어 사용에서 외국어를 남발한다면 자주국방은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 두 가지 사례에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초급간부였던 나에게 아무도 ‘패스트로프’가 무엇인지, ‘락 드릴’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다 눈치껏 알겠거니 했지만 초급간부들이나 용사들이 모두 그렇게 주도적으로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렇게 공식적으로 외국어를 남발하다 보니 병영생활의 저변에서는 예전부터 관행처럼 사용해 오던 여러 가지 은어와 외국어를 사용하는 일이 마치 병영 문화인 듯 넘쳐난다. 은어 사용의 예를 들어 보면 방상 내피를 ‘깔깔이’라고 하고, 전역이 얼마 안 남은 병장을 ‘말년 병장’이라고 하며 식사 후 남은 잔반이나 군 생활을 했던 기간을 ‘짬’이라고 표현한다. 이발병을 ‘깎새’라고 하며 부대 내 마트 관리병을 ‘피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표현들은 고참병으로부터 들은 것을 후임병이 고참이 되어 되풀이하다 보니 완전히 일상 용어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군 간부들부터 이러한 용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외국어로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가짜이거나 제대로 일하지 않고 대충 일하는 것을 ‘가라’라고 표현하며, 삽으로 지면을 평탄화 작업하는 것을 ‘나라시’라고 한다. 일을 끝마치는 것을 ‘시마이’ 한다고 하며 아예, 깨끗이, 깔끔히 한다는 것을 ‘아싸리’라고 얘기한다. 이러한 용어들은 일제 시대의 잔재로, 군에서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아직까지 일본어 표현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일본식 한자어를 사용하는 일이 있는데, 군의 각종 행사 등에서 공식적인 용어로 사용되는 각개 점호는 인원 점검을 뜻하고, 구보는 달리기, 내무반은 생활관, 요대는 허리띠를 뜻한다. 점차 우리말로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일본식 외국어 표현도 남발되는데 시멘트 작업, 콘크리트 작업를 일컬어 ‘공구리’ 친다고 하고, 식당이라든지 생활관 바닥 물청소를 ‘미싱’ 한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군에서는 사회와 구별된 고유의 언어로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이 일들이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군인은 없다. 이러한 군대 언어 속 일본어의 잔재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 민족에게는 아픈 역사다. 계속해서 이러한 일본식 한자어와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우리는 이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용을 줄여 나가야 한다.


 이 밖에도 군에서 사용하는 외래어와 외국어는 많다. 지침이나 방침을 일컬어 ‘가이드라인’이라고 공문서에 표기하며, 의무병을 ‘메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발 기구는 ‘바리깡’이라고 부르며, 호위 차량을 ‘사이드카’라고 부른다. 이러한 외래어나 외국어는 위화감을 주고 소통에 벽을 만들 수 있다. 군 내에 이렇게 잘못된 언어 습관이 너무나 많아 국방부와 군에서는 언어 개선을 위한 장병 교육 및 캠페인을 다년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루아침에 전군이 개선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고쳐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이를 실제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말을 사랑하고 바른 언어생활을 하는 것도 나라를 지키는 것처럼 애국의 한 방법이다. 최근 ‘병영 문화 개선’을 목표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며 실행하고 있는 우리 군이 정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말을 사용함으로써 올바른 군대 언어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병영 문화 개선’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