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버금상 - 모듈러 교사? 그분은 어떤 선생님이셔?

  • 등록자: 최혜정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934

모듈러 교사? 그분은 어떤 선생님이셔?

최혜정(버금상)


나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15년 차 교사이다. 매일 아침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약 1시간 정도를 운전하며 출퇴근하는데,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교육부 장관이 ‘모듈러 교사’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 학교 현장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교사인 탓인지 교육 관련 소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모듈러 교사’에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새롭게 생긴 교원 제도인가?’, 아니면 ‘어떤 특별한 경력을 가진 선생님을 뽑는 새로운 제도인가?’, ‘새로운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지?’ 등등 혼자 별별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학교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과 함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 운영 등을 논의하는 협의회에 참석했다. 협의회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문득 아침에 들었던 ‘모듈러 교사’에 관한 라디오 방송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같이 얘기를 나누던 몇몇 선생님들께 ‘모듈러 교사’를 아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 혹시 모듈러 교사라고 들어봤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 들어보니 교육부 장관님이 모듈러 교사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어떤 학교를 방문하신다던데요?”

“모듈러 교사요? 저도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 옆에 계신 선생님께 물어보아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다들 생소해 했다. 그래서 예정에 없이 다 함께 ‘모듈러 교사’를 조사하게 되었다. 어떤 이는 휴대 전화로, 어떤 이는 컴퓨터로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듈러 교사’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자, 

“‘과밀 학급 해소에도 모듈러 교사(뉴스1, 2021. 10. 8.)’라는 기사가 있어요.”

“‘모듈러 교사 운영 학교 현장 목소리 청취(대경일보, 2021. 10. 13.)’라는 기사도 있네요.”

“‘유은혜 부총리, 모듈러 교사 현장 의견 청취(뉴시스, 2021. 10. 8.)’라는 기사도 있어요.”


여기저기서 ‘모듈러 교사’와 관련한 기사 제목을 읽었다. 다들 교사이기에 현장의 교원 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그에 따라 어떤 교사들이 학교에 새로 오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설명한 자료를 마땅히 찾을 수 없던 상황에서 누군가 ‘교육부’ 보도자료*를 찾았다고 말하며, 뜻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듈러 교사’의 뜻이 우리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름을 알고 모두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교육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모듈러 교사’는 임대형 이동식 학교 건물이란 뜻이었다. 낡고 오래된 학교 건물을 새 단장하거나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임시로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가 예상했던 새로운 교원 제도나 특정한 역할을 하는 선생님을 가리키는 게 전혀 아니었다.


* ① 안전하고 쾌적한 이동식 학교 건물(모듈러 교실) 마련을 위해 관계 부처 간 협력 강화(2021. 7. 26.)  ② 임대형 이동식 학교 건물(모듈러 교사) 조달청 혁신 과제 선정(2021. 2. 8.)


힘든 과정을 거쳐 ‘모듈러 교사’의 뜻을 알고 나니,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교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여기저기서, 

“우리 너무 무식한 거 아녜요?“”

라며, 반성하는 목소리와 함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교육부 보도자료에서 ‘모듈러 교사’를 ‘이동식 학교 건물’이라고 풀어 써서 독자들에게 정확한 뜻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한 것처럼, 국민이 보는 자료를 작성할 때는 쉬운 우리 말글을 쓰는 게 좋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보는 방송과 신문 기사에서 굳이 이런 정체불명의 용어를 쓸 필요가 있었나 하는 반감이 들었다. 따져 보면, ‘모듈러’는 조립과 관련된 ‘영어’ 표현이고, ‘교사(校舍)’는 학교 건물을 가리키는 ‘한자어’로 우리말이 아닌 다른 두 나라의 말이 만나서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말이다. 가뜩이나 뒤에 붙은 ‘교사’는 선생님을 뜻하는 ‘교사(敎士)’와 소리는 같고 뜻은 다른 ‘동형어’이기에 우리의 이런 오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교육에 몸담은 선생님들조차도 이렇게 혼란을 겪고 헷갈리는데, 일반 국민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쉽고 바른 공공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공공언어란, 공공 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라고 한다. 즉,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모든 언어이기에 국민 누구나 알 수 있게 쉽게 써야 할 것이다. ‘가이드’를 ‘지침’이나 ‘안내’ 등으로,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19 이후’로, ‘워크북’은 ‘익힘책’으로, ‘퍼실리테이터’는 ‘조력자’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생활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언어의 경제성이나 명료성 차원에서도 훨씬 이득이 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어려운 행정 용어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이 연간 약 17억 원에 달하고, 어려운 정책 용어를 개선함으로써 절감되는 비용이 연간 114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모듈러 교사’처럼, 언론이나 공공 기관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국적 불명이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전문 용어, 외국어 표현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표현을 이른바 ‘공급자 중심의 언어’라고 부르고 싶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지향하기에, 쉽고 분명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수요자 중심의 언어’, ‘소비자 중심의 언어’로 전환될 때 비로소 이러한 소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나 정부 기관 등의 공공 기관에서는 각자 준비한 소식(뉴스)과 정책 등을 국민이 알기 쉽게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공급하는 태도로 정보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접하게 될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수요자 중심’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노력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