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그녀의 새로운 도전

  • 등록자: 권혜준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942

그녀의 새로운 도전

권혜준(보람상)


“아~ 그거? 홈페이지 제출이라던데? 안 보인다고? 스크롤 내려보면 있어”

 나는 모든 인터넷 용어, 외국어, 그리고 모든 유행어까지 섭렵하고 있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나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와서 영어도 유창하게 할 줄 안다. 내가 모르는 영어 단어라고는 의사들, 변호사들이 쓰는 전문 용어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난 한국에 살면서 어려운 외국 낱말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홈페이지를 누리집이라고 부르고 북마크를 즐겨찾기라고 해서 곤란했던 경험이 있던 것 같다. 국어국문학과에 다니면서 우리말보다는 외국어가 더 친숙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앗! 참 모순적이다. 


 난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사시는 할머니 집에 놀러 간다. 사실 놀러 간다기보다는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쉬러 가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78세이시다. 누군가는 많은 나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우리 할머니가 가장 젊게 사시는 것 같다. 나보다 다리 찢기나 물구나무도 잘 하시며 나보다 도전하는 데 두려움이 없으시다. 어딜 가나 젊게 사시고, 젊은이들의 유행어나 신문물을 몰라도 절대 기죽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멋쟁이신 분이다. 최근 들어 할머니는 스마트폰 사용법에 새로 도전하셨다.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계셨는데, 난 그것부터가 이미 우리 할머니는 젊은 세대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젊은이들이 쓰는 모든 것들을 배우고 싶다며 주민센터에서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 드리는 수업에 주저 없이 참여하셨다. 1주일에 2시간씩 비대면으로 만나 다양한 앱 사용법을 배우셨다. 많은 어르신이 참여하셨는데 그중에서 우리 할머니가 연세가 제일 많으셨다. 난 침대에 누워 내 할 일을 하며 할머니가 수업 듣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사실 나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끙끙거리면서 스마트폰을 두들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귀여우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했다. 

“주변 소음이 시끄러울 수 있으니 다들 뮤트 해주세요.”

단 한 분도, 정말 단 한 분도 뮤트를 하지 않으셨다. 시끄러운 TV 소리부터 주변에서 떠드는 소리, 또 누구는 지하철에서 듣는지 시끄러운 지하철 소리까지. 흔히 말하는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선생님이 여러 번 요청했지만, 끝까지 아무도 소리를 끄지 않으셨다. 결국, 선생님이 강제 뮤트를 누른 것 같았다. ‘뮤트’라는 말을 몰라서 아무도 하지 못했던 것인데, 계속 같은 말만 고집하며 점점 목소리를 키운 선생님이 웃겨서 난 속으로 킥킥거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번 수업은 길 찾기 수업이었던 것 같았다. 

“다들 플레이스토어에 들어가서 카카오맵 앱을 다운로드 해주세요.”

할머니는 열심히 공책에 적고 멀뚱거리셨다. 그러자 선생님이 할머니 모습을 보고는 카카오맵을 깔았냐며 물어보셨다. 할머니는 얼버무리며 원래 깔려 있었다고 거짓말을 하셨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다들 자신의 위치를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해주세요.”

할머니 전화에서 카톡 알림이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선생님이 하라는 숙제를 잘 수행하셨다. 그 와중에 우리 할머니는 공책에 적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하셨다. 선생님이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스크롤을 내리면 보이는 버튼을 터치하세요. 할머니” 

할머니는 알겠다고 대답하시며 동시에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위치를 카톡으로 보내 달라고 하셨다. 난 순식간에 앱을 깔고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드렸고 할머니는 다른 분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공유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칭찬에 할머니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뭐라 하는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며 풀이 죽었다. 난 그때 할머니가 기죽은 모습을 처음 봤다. 어떤 일에도 기죽지 않는 할머니가 단지 스마트폰 사용법 수업을 들으면서 기가 죽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할머니의 공책을 보니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말 이것저것 많이 적혀 있었다. 그중 내 눈에 띈 것은 선생님이 말했던 모든 외국어 단어 옆에 물음표가 붙어 있던 것이다. ‘플리스토? 스콜?’


 그렇다. 할머니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셨다. 선생님은 말이 빠르지도, 발음이 어눌하지도 않았다. 따라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런데도 우리 할머니는 앱을 까는 첫 단계부터 성공하지 못하셨다. 플레이스토어가 뭔지 몰랐고, 카카오 맵이 뭔지도 몰랐으며 혹시나 기존에 깔려 있었더라도 스크롤이 뭔지 몰라 공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질문하기에는 할머니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그냥 아는 척 끄덕끄덕하며 넘어가기 일쑤였다. 아마 선생님도 미처 이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플레이스토어’가, ‘맵’이, ‘스크롤’이 익숙한 단어일 것이고 자주 쓰는 단어일 것이다. 아마 ‘플레이스토어’, ‘스크롤’을 우리말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런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할 방법은 정말 많다. 앱을 설치하는 파란색 앱을 들어가 주세요, 노란색 배경에 파란색 위치 표시가 되어있는 앱을 켜주세요, 화면을 내려주세요. 외국어를 사용할 때보다는 말이 정말 길어지긴 하지만 수업의 대상은 젊은이들이 아닌 어르신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내가 만진 코끼리의 한 부분이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는 단어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단어가 생소할 수도 있고, 나에게는 어렵고 생소한 단어가 다른 이들에게는 일상어일 수도 있다. 내가 쓰는 외국어로 누군가는 기가 죽을 수도, 도전을 멈출 수도 있다. 난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우리 할머니가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할머니의 스마트폰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난 할머니를 위해 외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혹시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할 때는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드렸다. 

“할머니 이거 다운로드 하셔야 해요! 앗 죄송해요. 이거 설치하세요.”

 사실 아직은 나도 노력하는 단계라 문득문득 외국어가 습관적으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할머니가 기죽기 전에 난 다시 한국말로 바꿔서 말씀드린다. 할머니가 기죽지 않게, 할머니가 그녀의 도전을 포기하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