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세대 간 의사소통 막는 외국어 남용

  • 등록자: 김선규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1,000

세대 간 의사소통 막는 외국어 남용

김선규(보람상)


 “아버님, 얼마 안 있으면 생신이신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 가기는 힘드니까 대신 호캉스를 가면 어떨까요?”

 지난해 겨울 어느 날 며느리가 내게 호캉스를 가자고 제안했다. 당시 호캉스의 뜻을 잘 몰랐던 나는 뜻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해 “한 번 생각해 보자”며 웃어 넘겼다. 

 다음 날 지인에게 호캉스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지인도 뜻을 알지 못했다. 이번엔 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그러자 딸은 깔깔깔 웃으면서 “아빠는 TV도 안 봐? 요즘 방송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잖아. 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라는 뜻이야! 요즘 코로나 때문에 호캉스랑 스테이케이션이 유행이래.”라고 말했다. 


 딸은 스테이케이션이 휴가를 멀리 가지 않고 집이나 집 근방에서 보내는 근거리 휴가라고 설명하면서 “이렇게 신조어를 모르면 언젠가는 의사소통이 안 될 수도 있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에게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며느리나 딸아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외국어로 된 여행 용어들을 쓰고 이해하는데, 왠지 나와 내 또래 지인들만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노인들도 알기 쉽게 우리말을 쓰면 젊은 세대와 의사소통하기에 훨씬 원활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TV 뉴스를 보던 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언론에서 외국어가 섞인 용어들을 쉴 새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TV만 틀었다 하면 메타버스와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코로나 관련 뉴스에는 1~2분짜리 단신 뉴스에 외국어가 5개 이상 나왔다. 팬데믹에서부터 포스트 코로나, 백신접종 인센티브, N차 감염, 드라이브스루 등의 단어들은 70대 노인인 내게는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무분별하게 외국어 단어를 사용한 탓에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기사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많았다.  


 뜻을 모르는 외국어 용어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최근 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휴대 전화로 외국어들을 찾아보면서 대략적인 뜻만 파악하고 넘어갔다. 

 노마드, 거버넌스, 컨퍼런스, 콜드체인, 퍼스널 모빌리티 등의 경제 용어는 더욱 어려웠다. 전문 용어들이야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굳이 쉬운 우리말로 써도 될 단어까지 왜 외국어를 쓰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어떤 사회 현상을 기사로 보도할 때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어나 영상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말과 글을 쓰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이 어려운 외국어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행 분야에서도 외국어는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여행사 누리집에 접속하거나 TV에서 여행 관련 영상들이 나올 때면 브로슈어, 로드 투어, 어메니티, 해시태그, 에코 마일리지, 스카이 워크 등 생소하고 어려운 외국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단어들의 뜻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일도 쉽지 않아 포기하고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 혼자 TV나 여행 누리집을 볼 때는 모르는 외국어들을 무심히 넘기면 되지만, 어린 손자와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자의 입에서 일상적으로 “할아버지 스탬프 투어 해보셨어요?”라든가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에코티어링 프로그램에 참여 못할 것 같아요!” 등 외국어로 된 여행 용어들이 나올 때면 그 뜻을 알지 못해 좀처럼 대화가 되지 않았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아예 대화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어린 아이들이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말의 소중함을 잊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가 밀려오곤 한다.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은 세대 간 의사소통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소통 장애가 생기지 않는다. 앞으로는 외국어 용어를 대체할 만한 우리말 용어 만들기에 더욱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