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우리글 속의 외국 낱말은 잡초 같은 거

  • 등록자: 윤재열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883

우리글 속의 외국 낱말은 잡초 같은 거

윤재열(보람상)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언어생활을 성찰하는 활동을 많이 했다. 우리말 우리글에 관한 자부심을 심어주고, 바른 언어생활의 당당한 주역이 되는 길을 안내했다. 학생들이 배우고 사회에 나가서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혼탁한 언어 현상이 개선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까웠다. 특히 우리 언어에 외국어가 침입하는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잦아지고 있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국어 애호 교육 개발위원(2004년 4월~2005년 10월)으로 참여했다. 도 교육청은 일상에서 외국어를 사용하여 청소년들 사이에 우리말과 우리글에 관한 자긍심이 낮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에 국어 애호 교육 강화를 지시하는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다. 그리고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훈화 자료를 만들었다. 


자료는 올바른 언어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실용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엮었다. 학생들이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에 들도록 신경을 썼다. 말은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도구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규제한다. 따라서 난폭하고 거친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뜻한 삶과 정이 배어 있는 말을 나누기를 권했다.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삼가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 자료가 학생들의 언어생활에 좋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런 바람을 뭉갠 것이 경기도교육청이다. 도 교육청에서 학교로 보내는 공문에 외국 낱말을 쓰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재들의 두드림(Do Dream) 잔치, Dream job고 놀아보는 즐거운 토요일 운영, 교사 월례 연수 Opening Festival, 교육웹진 놀이뷰[VIEW],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Healppy(Healing-Happy) Dog 프로그램, 체험으로 배우go 배움으로 실천하go, One-Click 교육비 신청, 사이버 글로벌 학습관, 청소년 Vision-up 콘서트, 교육과정 클러스터, NTTP(New Teacher Training Program) 교원 연구년, Vision21 경기 실업 교육’ 등이다. 


공문은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외국 낱말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주고 방해를 한다. ‘Dream job고 놀아보는 즐거운 토요일 운영’은 ‘Dream’에서 보듯이 고등학생들이 인생 진로를 어떻게 설계할지, 꿈을 고민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뒤에 ‘잡(-고)’ 대신에 ‘job’을 써서, 꿈이 곧 직업을 희망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Healppy Dog’은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난다. 억지 영어 표현이다. 소통하려는 의지보다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공문을 만드는 데만 힘쓴 기분이다. 연결 어미 ‘-고’에 무턱대고 ‘go’를 쓰는 것은 재치도 없고, 참신하지도 않다. ‘사이버 글로벌 학습관’은 어떤 학습관인지 알 수가 없다. ‘NTTP 교원 연구년’도 영어 때문에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영어 표현은 그냥 멋을 부린 것이다. NTTP를 쓰지 않으면 거부감도 없고 의미도 명확해진다. 이런 낱말들은 우리 사회에서 쓰인 적이 없는 말이다. 혼자서 급조했으니, 불완전하고 허점도 많다. 이런 말이 하향식으로 퍼지면, 읽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생각을 담을 확률이 높다. 외국어에 서툰 사람들은 소외당하는 경험도 한다. 소통도 안 되고,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다. 


국어 애호 교육 담당 장학사와 통화했다. ‘교육청 정책과 홍보 내용은 미래 주역인 학생들이 바로 맞닥뜨린다. 그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국어 애호 교육하라고 공문 보내고, 다른 쪽에서는 외국어투성이인 공문을 보내는 것은 공공 기관답지 않다. 일관성이 없는 엇박자 정책이다.’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다른 부서라 간섭하기 어렵다는 한숨이 전부였다.


외국어를 섞어 쓴 공문 담당 장학사에게 전화도 해 봤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큰 틀에서 보라며 충고를 건넨다. 큰 틀이 뭐냐고 물었더니 공문 전체 내용이 중요하다고 답한다. 심지어 장학사의 표현으로는 외국어 표현은 임팩트가 있고 글로벌 시대에 맞으며, 전달 효과도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고민해서 지어낸 사업 이름이고, 윗선까지 결재가 난 것이니 받아들이라고 한다. 우리 언어를 짓밟는 일에 항의했는데, 외려 마음만 헝클어졌다. 


그들에게 「국어기본법」을 이야기했더니,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공공 기관에서는 한글로 공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하니 알았다고 건성으로 답한다. 외국 문자 표현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통을 위한 장치라고 믿는다. 이것은 세련된 것이 아니라 혼란을 더하고, 불편을 준다는 것은 모른다. 그들은 모순적인 행정을 하면서도 당당했다. 경기도 교육 가족들과 공감을 나누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보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흐름이 외국 문자로 치장을 하는데 서슴지 않고 있어, 언어생활이 흙탕물이 되고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외국 낱말을 섞어 쓰며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의 일탈이다. 공공 영역에서는 언어생활의 모범과 규범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동안은 이런 일이 멀리 있었는데, 이번에는 눈앞에서 일어났다. 2016년 10월에 학교 다목적실에 들어섰다가, ‘Learning High, Dream High, Happy High’라고 쓴 현수막을 만났다. 학부모 연수 자리였다. 교장 선생님은 연수에 참여한 학부모들에게 인사하고, 교감 선생님과 수석 교사인 나를 소개했다. 그때 교장 선생님이 소개하면서 담당 과목이 국어라고 밝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 방은 학생들이 특별 수업을 받고, 선생님들끼리 모일 때도 쓰는 공간이다. 하지만 선생님들이나 학생들도 자기 몫을 감당하는 데 몰입할 뿐 현수막 영어 표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을 자주 봐서 무뎌진 것이다. 시대의 변화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다 밖 첨단 기술이 한나절 만에 건너오고, 우리 문화도 세계로 뻗어 나가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긴다. 학교에서도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큰 문화의 물결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정도 영어는 초등학생도 안다며 이상한 너그러움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 영어를 내리고 새로 써 걸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학교도 공공 기관으로서 바른 언어를 사용하고, 무엇보다 학생들과 소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인상 깊은 감화를 주기 위해 고민하다 영어로 써 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특별한 조치를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걸어 놓은 것이니 당분간은 그대로 두자는 분위기로 흘렀다. 하지만 영어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생명력도 없는 글을 학생들이 보게끔 방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기획위원회에서 현수막 문구를 학생들에게 공모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동안 학생들을 격려하고, 의지를 북돋아 주기 위해 현수막을 자주 걸었지만, 학생들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말이 형식적이고 공허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직접 생각하고 쓴 글은 달랐다. ‘꿈이 있는 1학년, 도전하는 2학년, 감동의 3학년, 초지고에서 세상을 열다’였다. 어떤 조건도 주지 않았는데, 학년에 맞게 잘 표현했다.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글은 지극히 평범하고 쉬운 말이라는 것도 느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만들어 낸 말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스며들고 가슴을 뛰게 했다. 늘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걷는 모습을 봤다. 


수원에서는 며칠 전부터 ‘2021 가을 세계유산여행 힐링폴링 수원화성’이라고 쓴 현수막이 가을바람에 펄럭인다. 어머니께서 이를 보시고 ‘힐링폴링’을 궁금해 하신다. 왜 저런 말을 썼는지. 그 말이 없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굳이 넣고 싶으면 ‘문화에 스며들다/문화와 만나다’ 정도로 하면 어땠을까. 시민을 살피지 않고, 자기들만 아는 말로 축제를 한다. 어머니처럼 선량한 어른들이 불쾌한 경험을 하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얕은 지식을 가진 자의 횡포다. 우리글에 비집고 들어온 외국 낱말은 짜증스럽고 역겨울 때가 많다. 아무리 정을 주려 해도 가까이 오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줄 때는 불평을 넘어 저주의 대상이 된다. 아름다운 우리말에 섞이지 못하는 잡초 같다. 이런 내용으로 <이(e)수원뉴스>에 칼럼을 썼는데, 바르게 잡힐지 궁금하다. 


주변을 지나다 보면, 가슴을 파고드는 말은 결국 우리말이고, 우리글이다. 우리말과 우리글은 단순히 의미만 전달하는 것을 넘어 향기와 고운 빛깔까지 담고 있다. 우리말과 글 살이가 사색을 키워주고 위안과 희망을 품어다 준다. 가슴속에서 뿌듯함이 솟구쳐 오르고, 당당함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가 하는 말로 만들어낸 표현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멋진 삶으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