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도로 위에서 Kiss & Ride의 뜻은?

  • 등록자: 최옥숙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783

도로 위에서 Kiss & Ride의 뜻은?

최옥숙(보람상)


나는 오십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에 도전했다. 인생 이모작을 앞둔 시점에서, 기동성이 있으려면 운전이 필수라는 판단에서였다. ‘늦은 나이에 과연 운전대를 잡고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운전대를 채 잡기도 전에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게 나타났다. 책자를 펼쳐 놓고 운전면허 필기시험 준비를 하는데 IC, JC, 사인보드, 바리케이드, 가드레일 등의 생소한 영어들이 나왔던 것이다. 영어라서 그런지 뜻이 분명하게 와 닿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운전자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도로 관련 용어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우리나라 도로에서 쓰는 용어인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게 영어를 쓰고 표지판에도 로마자로 쓰는 것인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영어 단어들은 운전면허를 따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기에, 뜻도 잘 모르는 영어 단어들과 도로 법규들을 열심히 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첫 시험에서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분명히 열심히 외웠던 영어 단어들이 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도로 용어를 우리말과 한글로 썼더라면 이해하기도 쉽고 외우기도 쉬워 필기시험도 한 번에 붙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영어 단어들을 더 열심히 외운 나는 두 번째 필기시험에서 드디어 합격했고, 도로 주행을 거쳐 꿈에 그리던 운전면허를 딸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 운전을 시작하자, 운전면허 시험 공부를 할 때보다 더 어렵고 거부감이 드는 도로 관련 영어 단어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용어가 싱크홀과 포트홀이었다. 몇 년 전 자식들이 사는 지역에 다니러 갔던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그때 처음 ‘싱크홀’이라는 단어를 들었는데, 땅이 주저앉은 현장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싱크홀’보다는 ‘땅 꺼짐 현상’이라고 하는 게 위험성을 알리는 데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홀도 마찬가지였다. ‘포트홀’이라는 영어 단어보다는 ‘도로 파임’이라고 해야 운전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 운전자들도 쉽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블랙아이스 주의’라는 말도, ‘블랙아이스’라는 생소한 영어 단어보다는 ‘도로 위의 살얼음’이라는 우리말을 사용해야 아스팔트 표면에 코팅한 것처럼 얇은 얼음막이 생기는 현상을 운전자들에게 더 잘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밖에도 가드레일은 보호 난간, 스키드 마크는 타이어 밀린 자국, 도로 블로 업은 도로 솟음 등으로 쓰는 게 도로 상황과 위험성을 쉽게 알리는 데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영어로 된 도로 표지판을 보고 뜻을 몰라 당황했던 일도 있었다. 운전 중에 ‘Kiss & Ride’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뽀뽀하고 타는 곳이라니’. 머릿속으로 아무리 조합을 해보고 단어를 분석해 봐도 도무지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우리말로 써 놓으면 뜻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어려운 영어와 로마자를 써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Kiss & Ride’의 뜻을 찾아보았다. 우리말로 잠시 정차 구역, 또는 환승 정차 구역을 의미한다고 했다. 차에서 내릴 때 운전자에게 뽀뽀하며 인사하는 영어권 문화를 담아 만든 말인데, 우리나라에 들여오면서 문화적 고려 없이 말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 뜻을 알게 되어 궁금증은 없어졌지만,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받아들여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공공의 언어는 국민 누구나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특정 계층이나 개인이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일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로 용어들은 운전자나 보행자 등 모든 이들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단어들이다. 따라서 도로 용어들이 어려운 영어와 로마자로 쓰여 있어 운전자나 보행자가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해 생명이나 안전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앞으로 도로 관련 용어들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으며, 기억에도 잘 남는 우리말로 풀어서 사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