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북돋움상 - 우리말을 사랑하는 습관을 들이자

  • 등록자: 강은아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833

우리말을 사랑하는 습관을 들이자

강은아(북돋움상)


“딸. 이게 무슨 뜻이야?”

벌써 다섯 번째다. 십 분에 한 번씩 나를 불러 어린아이가 막히는 문제를 보여주듯 인쇄한 A4용지를 내미는 엄마.

“실버 비즈니스. 그러니까... 노인들을 위한 산업 그런 거야.”

“으응...”

처음 몇 번은 이해했다는 듯 경쾌한 눈빛이었지만, 질문하는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늘진 얼굴에 어쩐지 움츠러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십 년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오신 엄마는 얼마 전 요양 보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여 요양 보호사로 제2의 인생을 계획하던 참이셨다. 학원에서 실습과 이론 수업을 마친 뒤 시험을 앞두고 있었는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외국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왜 굳이 어려운 외국어를 써야 했을까? 더구나 복지 수혜 대상도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노인들일 텐데 말이다.


사실 잘 느끼지 못했지만, 대중문화에서부터 각종 사회 문제 심지어 공공 기관의 홍보물에 이르기까지 흔히 접하는 일상 곳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외국어가 깔려 있다. 물론 나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야 이해하는 축이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부모님 세대로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더구나 생계를 위한 공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커다란 장벽처럼 다가온다는 뜻이다.


무사히 시험에 합격하여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엄마는 여전히 난감한 상황에 마주치곤 했다. 하루는 담당하고 있는 치매 할머니와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이따가 센터에서 센터장님이 오실 거예요.”

“그게 누구여?”

“그러니까... 데이케어 센터... 그 센터장님이요.”

“뭔 소리여.”

데이케어 센터란 치매 노인 요양 시설로 주야간에 환자를 보호하는 곳인데, 아무래도 이름이 우리말이 아니다 보니 할머니께서 알아들으시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으신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부를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은 엄마는 어찌어찌해서 그 상황을 겨우 넘겼지만, 줄곧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탄했다.

본디 치매 환자와 의사소통할 때는 우리말, 그중에서도 일상적이고 단순한 어휘를 사용하거나 환자의 고향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유행어나 외래어, 외국어, 약어 등은 치매 환자의 기억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데이케어 센터라든지 실버타운이라든지 하는 무분별한 외국어가 웬 말인가? 이는 복지 노동자는 물론이고 정책의 수혜자에게도 그다지 현명한 방식은 아니다.

대체할 우리말이 없는 외래어라면 몰라도 ‘충분히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외국어는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왜냐하면, 외국어인 ‘센터’를 대체할 만한 순화어가 마땅치 않아 아예 ‘센터’라는 외국어가 널리 쓰이다 보니 언제부턴가 그것이 외국어인지 외래어인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기 때문이다. 결국 웰다잉, 실버 케어 등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이 언택트, 팬데믹 등 변종 외국어의 출연을 가져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쩌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을 촌스럽게 여기고 외국어 사용을 더 추켜세우는 사회 분위기가 되었을까? 어쩌다 부모님 세대가 외국어 앞에서 주눅이 들고, 회피하고, 급기야 공포감마저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것은 바로 우리말로 순화해서 사용하는 것의 중요성과 이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단발령을 강행하고 한복이 아닌 출처가 불분명한 신식 옷을 고집한 것은 바로 행동을 지배하는 옷차림을 규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창씨개명에서는 어떤 속내를 읽을 수 있을까? 바로 언어가 곧 정신의 옷이니 그것을 홀딱 벗겨버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만큼 한 나라 그 민족의 언어는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유전 같은 고유함이며 지켜야 할 문화이고 전통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세계화가 되었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외국어를 남용하여 본토에서 고유의 문화를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유행을 선도하는 대중문화 속 유명 인사들부터 사회 지도층, 각종 정책 기관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사용하는 단어는 외국어투성이다. 이렇듯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세련되고 선진화되었다는 사대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선결 과제다.

전 세계 석학들이 인정하고 주목하는 한글은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오히려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일 만하다. 과학적이며 애민 정신이 묻어나는 고도의 창의력과 기술력을 가진 글자로, 자음과 모음의 조합만으로 표현하지 못할 단어는 없다는 얘기다. 영화 ‘말모이’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절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선각자들이 고귀한 희생을 치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 우리말을 더욱 사랑하고 열심히 애용하는 것이 세계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처음이야 어렵고 낯설겠지만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 그 길로 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말이 세계화의 중심에서 반짝이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