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북돋움상 - 어깨띠를 받아주세요

  • 등록자: 권ㅇㅇ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660

어깨띠를 받아주세요

권ㅇㅇ(북돋움상)


“어깨띠를 받아 달라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어깨띠?”

30년 전, 친정어머니는 1종 스틱 면허를 따셨다. 그 시절엔 1종 면허를 따는 여자도 드물었고 오토 자동차 보급이 많이 안 되었던 때라 면허 실기 시험을 두세 번 치는 일은 다반사였다. 중학교 중퇴이지만 ‘뭐든 배우면 된다.’가 어머니의 생활신조였다. 내 기억 속 그녀는 항상 하고자 하는 것은 해내는 사람이었다. 면허 필기 시험도 98점을 받아 1등으로 통과하고 코스와 주행 모두 한 번의 실패 없이 합격했다. 게다가 20년 동안 1톤 트럭을 몰며 장사를 한 무사고 운전자였다. 그녀는 틈틈이 책을 보았고 사극을 볼 때면 나의 역사 지식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모르는 게 없던 그녀였는데 어깨띠를 받아 달라는 내비게이션의 말을 통 못 알아듣겠다는 것이다.

“안전벨트 매라는 소리 아니야?”

“내비게이션이 내가 안전벨트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어. 지가 인공 지능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운전하기 전에 벨트 안 하는 거 봤니.”

‘어깨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엄마 차를 타고 같이 나갔다.

“니가 타니까 내비가 조용하네.”

“그런데 엔진 소리가 왜 이래? 오일 언제 갈았지? 내일 내가 차 가지고 공업사 한 번 다녀올게.”


어머니는 20년 동안 해 오던 1톤 트럭 장사를 끝내고, 손주를 보며 지내시게 되었다.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시라고 경차를 하나 사드렸다. 그 차로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신다. 본인이 못했던 공부를 손주들이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경차는 5년이 지나니 손볼 데가 자꾸 생겼다. 그녀답지 않게 주차를 하다가 1톤 차보다 한참 작은 차에 흠을 냈다.

“가는 길에 지난번에 내가 실수한 거 그것도 고쳐서 와. 내 운전 실력도 녹슬었나 봐.”

“차 바꿔 달라고 일부러 흠을 낸 거 아니었어?!”

스스로의 실수를 용납 못하는 엄마 성격을 알기에 작은 사고니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겼다. 그리고 나 혼자 공업사로 차를 몰고 가는 길에 어깨띠의 정체를 알게 됐다.


“업데이트를 받아주세요”

업데이트를 어깨띠로 들으신 것이다. 귀가 어두워지셨다기보다는 업데이트라는 영어를 모르셨던 것이다. 영어 뜻을 알려드리면 민망해하실 것 같았다. 중학교 중퇴 학력이라 아이들이 영어를 물을 때면 ‘예전에 다 알았는데 잊어버렸어 할머니에게는 영어 묻지 마!’ 하시며 약간 화를 내셨다. 내비게이션에 업데이트가 필요하듯 어머니는 배우지 못한 영어를 이제서라도 업데이트해야 하는 걸까. 아이들은 커가고 나의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간다.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그녀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 일은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내비게이션 회사가 잘못한 것이다. 회사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써야 했다. 한국에서 운행되는 차에 영어 안내라니.

 ‘자료를 새롭게 해주세요.’로 바꿔 달라! 바꿔 달라! 바꿔 달라! 


어머니에게는 어깨띠의 정체를 말씀 드리지 않았다.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을 업데이트 하는 데 노력한 그녀다. 업데이트를 어깨띠로 들을 만큼 늙어가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그녀가 새롭게 업데이트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는 것이 당연하게, 영어를 한국말로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도록 우리가 새로워져야 한다.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