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북돋움상 - 코로나19 시대, 혼란을 부채질하는 외국어 남용

  • 등록자: 김경진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861

코로나19 시대, 혼란을 부채질하는 외국어 남용 

김경진(북돋움상)


 “먼저 QR코드를 찍으시고,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주문하시면 됩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한 뒤, 어머님과 함께 한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입구에서 식당 종업원이 온도계로 체온을 잰 뒤, 종업원이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자 어머님은 ‘QR코드’와 ‘키오스크’ 두 단어가 생소했는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내게 무슨 뜻인지 물으셨다. 나는 ‘QR코드’와 ‘키오스크’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뜻을 말로 풀어서 설명하려니 쉽지 않았다. 

 곧바로 휴대 전화로 뜻을 검색해서 설명을 드리자, 어머님은 “왜 누구나 쓰는 물건에, 굳이 어려운 영어로 된 이름을 붙인 거니? 이름부터가 저렇게 낯설고 어려우면 나 같은 노인들은 분명 거부감부터 들 텐데….”라며 탄식하셨다. 

 만약 혼자서 이 음식점에 들어왔다면, 남들은 다 아는 걸 혼자만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창피해서 그냥 밖으로 나와 버렸을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그러면서 “QR코드는 정보 막대, 키오스크는 무인 주문기 같은 쉬운 우리말로 이름 붙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아쉬움을 드러내셨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어머님이 생소한 외국어로 혼란을 겪은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엔 ‘위드 코로나’와 ‘부스터샷’이 무슨 뜻인지를 내게 물어보셨다. 

 “뉴스를 보니까 위드 코로나나 부스터샷 같은 말들이 나오더라. 문맥상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주변 지인들한테 물어보면 무식하단 소리를 들을까 봐 궁금한 걸 꾹 참고 있었지, 뭐니.”

 “어머님, 궁금하실 때는 언제든 제게 편하게 물어보셔도 돼요. 불필요하게 외국어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그 뜻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뜻으로,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를 풀고 단계적으로 일상을 회복하자는 뜻이에요. 부스터샷은 백신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백신 접종 완료자들에게 추가로 백신을 접종한다는 뜻이에요! 이건 저도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낯선 영어라서 입에 잘 붙지도 않고 기억하기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코로나19와 관련된 외국어들이 낯설고 어렵기는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엄마, e-러닝이 뭐야?”, “코로나블루는 무슨 뜻이야?”, “셧다운은 무슨 뜻이야?”라고 쉴 새 없이 묻는 통에, 그때마다 단어들을 검색해 보면서 정확하게 뜻을 숙지하고 설명해줘야 했다. 

 그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로나19와 관련된 신조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 용어들이 지나치게 외국어 일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TV 뉴스와 언론 기사 등에서 사용하는 코로나19 관련 공공 언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더니 외국어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19와 관련된 새로운 낱말들이 적절하게 번역되거나 고민을 거치지 않고 해외에서 쓰던 용어 그대로 국내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퍼진 것이다. 


 어머님처럼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나이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인 나조차도 생소한 외국어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수시로 인터넷을 찾아봐야 했다. 외국어로 된 코로나19 용어들 때문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안 그래도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외국어 때문에 시민들이 적절하게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언론 매체에 가장 많이 노출된 단어는 ‘언택트’와 ‘온택트’였다. ‘언택트’는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ㆍ반대를 뜻하는 언(un)을 붙인 신조어로 비대면을 뜻하고, ‘온택트’는 언택트에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On)을 더한 개념으로 영상으로 대면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일찌감치 이 과정을 알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초, 우리나라는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이라는 찬사와 함께 전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국제 표준이 되었지만, 용어 자체는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된 낱말이었다. 

 또 ‘코로나 블루’나 ‘코호트’, ‘팬데믹’, ‘트윈데믹’처럼 코로나19 이전에는 미처 들어보지 못했던 어려운 외국어들이 수시로 언론 매체에 등장해 국민들이 전염병을 정확하게 아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최근 국립국어원에서는 ‘QR코드’를 ‘정보 무늬’라고 순화했고, ‘드라이브스루 검사’는 ‘승차 검사’로,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우울’로 바꿔 쓸 것을 권고했다. 또 ‘위드 코로나’라는 용어도 ‘단계적 일상 회복’이라는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했지만, 여전히 TV 자막이나 뉴스 기사에서는 각종 생소한 외국어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방침 등은 전 국민이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써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관련 공공 언어들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야 한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무슨 뜻인지도 모를 외국어를 남용하는 것은 전염병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외국어 실력에 따라서 이해의 정도에 차이가 나는 상황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공공 언어에서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남용하여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쉬운 우리말을 사용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코로나19와 같은 중요한 일에 관련된 용어를 낯설고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