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북돋움상 - 공공의 대상과 공공의 가치를 잊은 창조적 표현

  • 등록자: 이수민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733

공공의 대상과 공공의 가치를 잊은 창조적 표현

이수민(북돋움상)


‘공공 언어’에 관련하여 겪은 경험을 떠올리자니,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금연 캠페인이 떠오른다.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는 형식으로, 청소년들의 금연을 유도하려 만든 캠페인이다. 금연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직접 전하기 어려운 말이라서 그 내용을 캠페인 형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영어와 우리말의 줄임말을 혼용한 표현이 주를 이룬다. 캠페인의 주요 표현은, ‘담배는 노답, 지금 노담: 담배와도 거리두기, 노담태그(TAG) 캠페인, ‘노담 메시지’ 등이다. 한글로만 써 놓으면 언뜻 무슨 뜻인지 갸우뚱할 만도 하다. 어쩌면 영어와 우리말을 조합해 창의적인 표현을 즐겁게 구사하려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해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영상 광고를 처음 봤을 때는 ‘노담이 뭐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호기심을 이끌어 내었고, 영상을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요즘은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 새로 말을 만들어 내는 일이 매우 흔하다. 이런 신조어들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주로 젊은 층인데, 그들에게 신조어는 더 이상 거부감이 있다거나 낯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공공 언어라는 면에서 ‘노담’과 그 밖의 문구들을 살펴보자면, 이런 말들을 이해하기 쉬운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뉠지도 모른다. 영어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디지털 취약 계층인 노인 세대에게는 이런 말들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공공 언어란 공공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특정한 일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용어나 표현 선택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도 ‘노담’이라는 표현을 처음에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영상을 보며 곧 금연 관련 광고임을 알았고, ‘노담’에서 ‘노’는 ‘NO’이며, ‘담’은 ‘담배의 줄임 말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 설명에 따르면 이 금연 광고는, 디지털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능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였다고 한다. 청소년 대상의 금연 광고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공감을 우선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수 있다. 캠페인의 목적을 생각하면 청소년들에게는 쉽게 ‘노담, 노담’ 하며 금연에 관해 편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언어의 표현이 일부 대상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은 고민이 필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나도 청소년이기에 이런 표현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영어와 우리말의 혼용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다. 2021 세종시민걷기 행사 포스터의 주요 문구는 ‘DADA RUN SEJONG, DA함께 DA안정, 2021세종 시민이 함께 하는 장애인식개선 비대면 걷기대회’였다. ‘DA함께’의 ‘DA’는 한글로 쓰면 ‘다’이고, 이는 우리말 ‘모두’라는 의미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다’를 ‘DA’로 바꾸어 쓴 것에는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DA함께 DA안정’은 ‘DADA’로 묶여 걷기 대회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다 런 세종’은 상당히 모호한 이름이다. 청소년 금연 광고의 주요 표현인 ‘노담’도 사실 광고 영상을 제대로 보지 않고 단어만 듣는다면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다. 억지로 조합해 낸 표현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낯선 신조어를 만나면 부지런히 찾아 공부하지만, 이조차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벽이 되지 않을까 한다. 공공을 대상으로 한다는 가치 기준을 따른다면, 공공 언어를 만드는 방식이 유행처럼 만들어 내는 신조어의 구성 방식과 유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가치 기준을 헤아려 공공 언어를 만들고 사용해야 한다.


공공 언어 관련 내용을 공부하며 왜 이러한 방식의 공공 언어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지 부모님과 토론을 했고,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행정부의 광고 제작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라는 것이다. 담당 행정 부서나 위탁 업체의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이 젊은 세대이고, 그들이 주도하여 내는 아이디어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담당 행정 부서가 결정한다. 공공 언어라는 측면보다는 창의적 관점에서 목적에 맞는 언어의 이미지를 찾고, 그 이미지를 강조하는 전달 방법을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본디 목적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 부모님의 주된 의견이었다. 실제로 언어의 본질에는 자의성, 창의성, 사회성, 역사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외국어와 혼용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흥미 있는 이미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영문과 한글을 혼용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창작 과정에서 차별화를 이뤄내야 하므로, 창작 이전의 본디 목적을 잃은 채 창작 자체에만 몰두한 결과물도 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듯 창작에만 지나치게 빠져버리면 공공의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거부감 없이 듣고 이해해 왔던 신조어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여러 매체에서 넘쳐 나던 신조어가 공공 영역에까지 무심하게 파고드는 것은 우리말 파괴 현상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생겼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고,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사용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영역에서 공공의 가치를 잊은 채 불필요한 부분에까지 발휘하는 강박적 창의성은 생각해 봐야 한다. 공공의 목적을 갖고 그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본질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대상을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낮고, 디지털 취약 계층인 세대들도 우리와 함께 사는 공공의 대상이다. 공공의 가치 기준을 명확히 하여 더 많은 이해와 공감대를 이루어 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