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1 공모전 당선작] 북돋움상 - 알 수 없는 우리말

  • 등록자: 한승희
  • 등록일: 2021.12.29
  • 조회수: 733

알 수 없는 우리말

한승희(북돋움상)


오후 8시쯤 나는 하릴없이 휴대 전화만 보고 있다. 그와 달리 TV는 바쁘게 소식을 전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로 우리 사회가 힘겨운 시간을 보낸 지 어언 2년, 포스트 코로나 논의를 넘어 언택트·온택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위드 코로나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11월에 위드 코로나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편 포스트 코로나의 메인 토픽 중 하나인 환경 문제는 예삿일이 아닌 듯합니다. 환경 문제가 계속 이슈화되자 정부가 기업에 ESG 경영을, 개인에게는 에코 라이프를 이끌 수 있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 문제와 관련되어 정부는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룸으로써 탄소 제로 사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요, 시작으로 민간 거버넌스, 캠페인 같은 활동을 강화하여 적극적인 에코 사회를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일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시민들은 SNS에 에코 라이프·제로 웨이스트·미니멀 라이프 실천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SNS는 이제 에코 라이프의 가이드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 방송사의 뉴스 시간, 아나운서의 말이 이어지고 나는 잠시 생각이 멈췄다. 포스트 코로나·위드 코로나·언택트·온택트·미니멀 라이프…. 어떤 내용인지 대략 감은 오지만, 정확히 그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다. 일부는 아예 뜻을 다르게 생각하게 하는 단어도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는 ‘포스트’라는 말이 영어 ‘post’를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막연하게 소설 속에 나오는 공상 미래 사회를 상상했다. 정보를 얻어야 할 뉴스에서 지금 도대체 뉴스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 채, 아나운서가 끝인사를 했다. 나는 분명히 한국어를 들었고, 뉴스에서 무슨 논의를 이어 나가고자 하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옅은 베일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부모님께서 학교에서 받으신 영어 교육으로는 한국식 발음으로 단어 몇 개만 배우신 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우리말과 많은 부분에서 의미를 공유하는 한자를 주로 배우셨다. 옛 신문에 쓰인 한자를 무리 없이 읽어 나가시며 나에게 신문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통역’해주셨다. 지금까지도 한자에 바탕을 둔 표현에는 학문적인 내용까지도 능통하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이 쓰는 용어들에서는 조금 다르다. 요즘 사회에서는 한자 기반의 우리말보다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부모님께서는 영어 기반의 단어를 마주하시면 그 뜻을 짐작하지 못하셨다. 한자에 바탕을 둔 한국어 단어는 단 하나의 음절만으로도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반면, 외국어는 한글로 쓰여 있어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을 알 수는 없었다. 이제는 내가 두 분께 기사에서 다루는 내용의 단어를 ‘통역’해 드린다. 최대한 우리말 표현으로 바꾼다. ‘un/in’을 접두어로 사용하는 영어 단어에서 온 표현은 ‘불(不)/비(非)’로, ‘co’가 접두어인 단어는 ‘함께/공통의’ 등으로, 뜻이 통한다면 바꾸어서 ‘한국어’로 알려드린다. 한국어를 이해하려 해도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오늘날에는 외국어를 이해하는 데 들여야 하는 노력이 지나치다고 느껴진다. 


다른 날 저녁 8시, 뉴스 아나운서는 여러 가지 소식을 신속하게 전한다. 집중하며 앉아 있어도 바로 이해하긴 힘든 내용이었다. “딸! 근데 ESG 경영이 뭔 소리라니?” 전문 용어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로 지목되는 단어였다. “엄마, ESG는 친환경의 Environment, 사회라는 뜻의 Social, 관리라는 뜻의 Governance가 합쳐진 말인데, 친환경 활동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중점을 두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는 뜻이래.” 그러자 이어진 엄마의 답변은 생각 외로 간단했다. “아~ 그러면 그냥 지속 가능한 사회 경영을 추구하는 거라고 말하면 되지. 뭘 그리 어렵게 표현한다니!” 그렇다. 이렇게 간단해지는데, 왜 우리는 굳이 어려운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일까. 포스트 코로나는 ‘코로나 이후’, 에코 라이프는 ‘친환경 삶’, 미니멀 라이프는 ‘비우는 삶’. 외국어 단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데 10분이나 걸렸을까. 내가 뉴스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단어를 줄줄이 말씀드리자 어머니께서는 쉬운 우리말로 모든 단어를 바꿔주셨다. 한국어에 대응되는 뜻이 없거나 이미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외래어까지 굳이 바꿀 필요는 없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바꾼 것이다. 한국어를 번역하여 한국어로 만드는 건 품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외국어로 곤욕을 겪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시절, 혁신 학교를 주제로 교육청이 주최한 토론장에 참석한 적이 있다. 행사 제목이 ‘교육포럼’이었는데 나중에서야 그게 토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부에서는 퍼실리테이터분들과 그룹 디베이팅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행사 안내자의 말에 도대체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긴장이 되며 어떤 활동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2부 시간이 되고,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진행자와 함께 모둠 토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내는 분명 한국어로 진행되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내겐 외국어 못지않은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영어’ 표현에 능통하지 않음이 더 큰 걸림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어 수업이 아님에도 교수님은 특정 단어를 영어로 바꿔서 수업하셨다. “어젠다 세팅 이론이에요. 이론을 적용할 때는 액셉테블한 어프로치 방법을 가져야 합니다.” … “훗날 여러분이 기업에 어플라이 했을 때, 메리트가 되는 부분을 미리 정리해 두세요.” 대부분 알아듣긴 했으나 약간 거북해지면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한국어 문법과 정확히 대응되지 않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니 수업 내용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고 지나가는 한 학생이 교수님께서 영어를 섞어서 대화하는 모습이 지적으로 보이고, 자신도 영어를 더욱 잘하고 싶다고 하는 말을 스쳐 들었을 때, 과연 그게 정말 ‘지적인’ 것일지 의구심이 들었다. 미처 수업 때 의미를 명확히 몰랐던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한국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이어서 왠지 모를 허무함마저 느껴졌다. 부모님께서 애써 벗겨주신 베일이 다시금 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참된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이 되고 싶다. 우리 사회가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하면서 관련된 용어들이 외국어 그대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것이 당연한 흐름인 양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한국어로 받아쓰기하고 있다.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모두들 한글의 감사함을 표현하지만, 나는 한글날이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를 넘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아름다움, 우수성을 기억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받아쓰기한 한국어가 참된 한국어의 자리를 대체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 똑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너무 당연하지만, 잘 인지하지 못하는 말이다. 공공 언어에서 우리말 표현을 늘리는 것은 서로 다른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공론장에 걸림돌 없이 참여하고, ‘표현’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특히 영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한국어만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이해할 수 있으면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옛 사회를 살아온 나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 모두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참된 우리말 쓰기, 모두가 베일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