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3 공모전 당선작] 버금상 - 행복함을 주는 단어 선택

  • 등록자: 황규희
  • 등록일: 2023.10.31
  • 조회수: 132

행복함을 주는 단어 선택

황규희(버금상)

 

지난 3~4년간은 대혼돈의 시간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연인, 친구, 가족과의 식사는 커녕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으며, 갑자기 찾아온 전염병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나는 이 모든 시간을 겪게 한 코로나19 최전선에 있었던 여러 역학 조사원 중의 한 명이었다.


 서울의 한 보건소에서 일했던 나는, 우리가 담당하는 코로나 확진자 수가 두 자릿수였을 때부터 십만 명이 넘을 때까지 일했다. 능동 및 자가격리자 통보부터 확진자 동선 역학조사, 위중증 환자 이송을 위한 간호력 확인 등 다양한 절차들을 진행해오면서 외국어 사용으로 불편했던 몇몇 사례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단어는 내가 공유하려는 이번 사례 외에도 많이 사용하는 ‘모니터링’이다. 주민에게 나가는 안내문에도 ‘모니터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우리가 민원인에게 설명할 때도 모니터링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확진자와 접촉한 이력이 있는 분들에게 ‘모니터링 전화나 문자가 갈 것’이라고 안내하고는 했다. 설명하는 사람은 한정적인데, 코로나 환자부터 접촉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우리에겐 설명해 드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영어 공용화 시대에 당연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곤 ‘모니터링’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모니…? 무슨 전화를 한다꼬?”라고 하시며 되묻곤 하셨다. 어르신들은 기저질환을 앓고 계시거나 전체적으로 기력이 약하시니, 건강과 직결된 사항인 만큼 처음부터 조금 더 세심하게 안내해 드리지 못한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다. 우리가 바쁜 걸 기사로 많이 접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해 되물을 때면 연신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땐 내가 먼저 “저희가 전화로 괜찮으신지 관찰해 드린단 뜻이에요!”하고 말씀드렸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에게는 ‘불안 대신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남아있다.


 두 번째 단어는 ‘키트’다. 위중증 환자가 아닌 그 외의 환자분들은 재택 치료를 하는 게 원칙이었다. 재택 치료 담당자분들이 체온계, 코로나 진단 도구 등을 구성하여 환자분들께 보내드렸던 적이 있었다. 재택 치료에 관한 안내가 나가기 전 역학조사 및 접촉자들에 대한 정보를 묻는 과정에서 환자분들은 나와 먼저 연락이 닿아 궁금했던 부분들을 물어보시곤 했다. 집에만 계시기도 하고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경험들이 있으니 체온계는 오는지, 다른 걸 지원해주진 않는지 물었지만 우린 간단하게 ‘키트’가 나간다고 뭉뚱그려 말씀드렸다. 어르신들에게 생소한 단어일 수 있는데, 배려가 조금 부족한 단어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이해하지 못하실 땐 하나하나 어떤 물품을 지원해드리는지 설명해드렸지만, ‘키트’라는 외국어 대신 ‘의료 물품 꾸러미’로 보내 드린다고 정감 가게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론 앞서 말한 두 단어처럼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의료 용어에 대해서도 짧게 말하고 싶다. 전문 용어이긴 하나, 우리말로 풀어쓸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준다면 생소한 단어를 듣는 상대방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의료 쪽 전공이 아니라서 설명하는 나도 많이 당황스러웠기에 더더욱 듣는 상대방 처지를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의료 쪽 용어들은 내가 먼저 찾아 우리말로 대체해 설명해 드렸다. ‘앰뷸런스’를 구급차로, ‘환자 히스토리’를 ‘간호력’으로, ‘디엔알(DNR)’을 ‘소생술 포기’로 들을 때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대체했더니 긴박한 상황에서도 의사소통이 잘 됐었다. 사소한 배려를 느끼셨는지 한 어르신은 “노인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셨다. 힘든 하루 속 눈물 나는 한마디였다.

 젊은 나도 생소한 단어들이 많다 보니,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가 섞인 설명을 듣는 어르신들은 어떨까 하며 우리말로 된 단어를 곰곰이 생각했었다. 별거 아닌 단어 선택 하나에 상대방과 나의 하루를 다르게 행복함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