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3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태그리스, 한국어 맞아요?

  • 등록자: 박서영
  • 등록일: 2023.10.31
  • 조회수: 118

태그리스, 한국어 맞아요?

박서영(보람상)

 

  즉, 태그리스 결제입니다


 아침을 먹다가 아나운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태그리스’라는 말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라 금방 집을 나서야 했고, 나의 궁금증은 오후가 되어서야 해결이 되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급급했던 저녁, 학교 앞 우이신설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내려온 나는 한 알바생이 나누어준 휴지를 무심코 받아들었다. 휴지에는 아침부터 궁금했던 ‘태그리스’라는 말을 강조한 문구가 있었다.


  “지나가면 결제되는 티머니 태그리스”


 대체 태그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휴대전화를 들어 검색하고 나서야 알았다. ‘교통카드 비접촉 결제’라는 말을 ‘교통카드 태그리스’로 표현한 것이다. ‘Tag’와 ‘Less’의 조합인 ‘Tag-less’. 너무 생소한 나머지 단어를 보자마자 해석하기보다, 어떤 브랜드 이름이거나 제품의 이름인가 싶었다. 로마자로 표기하더라도 단어가 쓰인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상품 꼬리표 없음’인지, 아니면 ‘야구에서 아웃을 적게 당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검색어 없음’인지. 어느새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외국어에 온갖 불평불만을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기사를 읽었다. 어떤 기사는 ‘태그리스’의 순화된 표현을 적어놓았고, 어떤 기사는 ‘태그리스’의 뜻을 상세하게 적어놓았고, 또 대다수의 기사는 ‘태그리스’ 이외에도 다양한 외국어들을 섞어 글을 완성했다. 순간 어떠한 불편함이 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왜 꼭 외국어로 표기할까? 우리말이 아니라, 그것도 외국 말이 아주 ‘그럴듯하고’, ‘있어 보이고’, ‘편리할 것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는 건가? 알고 보면 현실적으로 과도한 외국말은 ‘이해하기 어렵고’, ‘말이 되는지 모르겠고’, ‘아주 불편한’ 이미지를 가질 뿐인데.


 이 생각은 비단 ‘태그리스’라는 단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신조어라는 범주는 항상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새로운 단어, 새로운 낱말들을 모아가며 자기 집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너무 많은 외국어가 신조어를 침범하고 있다. 신문 기사와 사회관계망이나 누리집에서 출몰하는 ‘00페이’, ‘게이트’, ‘베타테스트’, ‘배리어 프리’ 등 새롭게 만들어진, 혹은 아주 일상적인 단어들 역시도 순우리말이 아닌 외국어가 쉽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말이 아니라면 안 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으레 외국어로 대화를 청한다. 회사나 학교에서 사람들과 협업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내용을 좀 더 ‘디벨롭’ 해주세요, 파일을 좀 ‘어레인지’해서 보내주세요, 제가 단체 ‘톡방’에 ‘인폼’해볼게요. 모두 영어지만 사람들은 마치 한국어를 말하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영어를 섞어 말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당혹스러워한다. 마치 그것이 모두가 아는 한국어인 것처럼 표현하는 셈이다. 이렇게 우리 옆에는 외국어가 너무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있다. 하지만 외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다. 외국어는 무늬만 한글로 표기되었지, 속뜻을 알기 어려운 외국 단어들의 집합이다. 그런 외국어가 난무하는 글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한국어의 자리에 침범한 외국어들에 대항해야 우리말이 더 많은 곳에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순화된 우리말을 언론에서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린 다양한 소식을 전달하고 받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 언론에서 사용하는 외국어들도 우리에겐 너무 새로운 정보로 다가온다. 선뜻 다가온 이 정보들을, 우리는 그대로 쓰게 된다. 그러면서 새로운 말들은 공공언어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요컨대 ‘태그리스’도 언론에서 계속 언급한다면 공공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너 태그리스 들었어?’, ‘태그리스 되게 편하지 않니?’, ‘태그리스가 있다면 지하철 더 타고 다닐 것 같아.’처럼 정작 처음 듣는 사람은 태그리스의 정체를 알지 못할지라도, 정보를 알게 된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언론에서 제공한 새로운 외국어를 공공언어처럼 쓰고 마는 것이다. 만약 언론이 태그리스를 ‘비접촉 결제’라고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더 많이 접해본 ‘순화된 표현’이기에 쉽게 그 내용을 파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쉽게 입에 붙은 말을 공공언어로 사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전하는 언론이 외국어보다 더 순화된 우리말 표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외국어와 조우하는 난처한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순화된 표현들과 밀접하게 지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도 우리말로 쉽게 표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외국어 사례도 많다. 언론에서 자주 다루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외국어를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언론이 외국어를 다량으로 쓰는 걸 한 번에 막기도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옆을 두드리고 찾아올 외국어들이 주는 불편함을 없애려면, 우리 역시 우리에게 스며든 외국어도 천천히 순화된 말들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내 입에 붙은 외국어를 순화된 말로 바꿔보려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찾아온 단어, ‘태그리스’를 주변에 ‘비접촉 결제’라고 말해보려고 한다. ‘태그리스 게이트가 좋은 스마트인프라 같아’보다는 ‘비접촉 결제 문이 좋은 지능형 기반 시설 같아’로. 입에 달라붙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