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2023 공모전 당선작] 보람상 - 미주 엄마, 홀로그램과 홀로 고민 사이

  • 등록자: 박소영
  • 등록일: 2023.10.31
  • 조회수: 119

미주 엄마, 홀로그램과 홀로 고민 사이

박소영(보람상)

 

나는 서울의 어느 정신지체 특수학교 행정실 직원이다. 우리 특수학교에서는 매일 초, 중, 고 전 과정 학생들에게 필요한 여러 정보를 가정 통신문에 게시한다. 이는 초등학교에서만 운용하는 일반 학교의 가정 통신문이나 일반 국민의 알 권리보다 훨씬 절박한 의미를 지닌다. 특별히 학부모님과 학생에게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사회통념적인 예고일보다 한참 전에 그 정보를 통지한다. 물론 우리 특수학교 교사들도 행사 전까지 학생들에게 심혈을 기울여 반복 설명해준다. 그러나 통신문을 읽어본 학부모님들이 각 가정에서 평소 자식들과 익숙한 소통 방식으로 자주 설명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박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오늘 가정 통신문 ‘흡연 예방 홀로그램 공연’ 안내문에 쓰인 일부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불편해요. 사실 공연단의 영어 명칭이야 고유한 이름이고 ‘오프닝’과 ‘엔딩’도 가끔 들어본 낱말이라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홀로그램’과 ‘스토리텔링’이란 말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오늘 미주한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몰라 홀로 고민하다 이렇게 선생님께 전화했어요.”


  “아, 네. 그게 그러니까 미주 어머니, 제가 잠시 후 다시 전화를 드리면 안 될까요?.”


  작년 11월 초였다. 나는 창가에서 운동장의 스산한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잠시 가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와 이름이 같고, 사이가 아주 가까운 미주 어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안타깝게도 그분도 심하진 않지만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었다. 그분은 아홉 살배기 딸 미주에게 설명해 줄 그날 가정 통신문의 몇몇 영어가 너무 난감하다고 하셨다. 물론 그 안내문은 내가 올린 공문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도 ‘스토리텔링’은 알고 있었지만, ‘홀로그램’의 뜻은 명확하지 않아 순간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홀로그램’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를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문양이 달라지게 만드는 기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의미로는 ‘공연’이라는 낱말과 ‘홀로그램’의 뜻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그 통신문을 찾아보기 위해 정중히 양해를 구한 후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확인해보니 우리 초등학교 과정 전체 학생들에게 흡연의 무서움을 알려주려고 상급기관에서 교육용으로 이첩한 공문이었다. 그리고 우리 팀 신입직원이 그 공문을 우리 학교 실정에 맞게 일부 수정하여 게시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직원도 게시하기 전에 역시 ‘홀로그램’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아 포털 검색을 통해 대략 알고 있는 정도였다. 나는 차분하게 ‘홀로그램’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로그램’은 “두 개의 강렬한 빛들이 만나 시청자로 하여금 평면의 화면 영상인데도 마치 3차원의 입체로 인식하게 만드는 모든 기록, 문서, 그림 등 완벽한 정보의 총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주 어머니! 아까 문의하신 그 ‘홀로그램’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이달 말에 상영할 ‘흡연 예방 홀로그램 공연’은 우리 학교 강당의 그 평평한 화면에 두 가지 빛을 쏘아 마치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연출하여 모든 초등 과정 학생들에게 흡연의 폐해를 보다 완벽하고 현실감 있게 전달하려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은 어떤 글 등의 내용을 마치 이야기하는 식으로 풀어 전달해주는 기법을 말합니다.” 

  “박 선생님, 매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은 제가 초등학교 졸업자라 어려운 외국어를 잘 모르는데 선생님 덕분에 오랜만에 미주한테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나는 곧바로 미주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고, 전화기 너머 미주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웃자란 설렘이 피어올랐다. 나는 작은 일로 감동하시는 솔직하고 여린 미주 어머니가 그간 세상에서 장애, 학력 등으로 얼마나 많은 차별과 퇴짜를 받고 힘겨워하셨을까라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나는 더 오래 전화를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애써 웃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는 곧바로 그 사례를 예로 들어 같은 과 직원들과도 외국어 오〮·남용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조심스레 논의했다. 다행히 직원들도 상당히 호응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최대한 우리글로 알기 쉽게 공문을 쓰면서 덤으로 재미까지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두 살배기 사랑하는 우리 아기의 엄마다. 아기들은 부모의 말과 가지고 노는 물건들을 보며 말을 배우는 편이다. 사랑하는 내 아기가 말을 배울 때 혼선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처음부터 장난감 등 각종 우리 아기용품도 우리말로 된 것만 구입했다. 물론 내가 무슨 대단한 애국자라기보다 기왕이면 국산품을 쓰고 싶었다. 더구나 이제 우리나라 아기용품들도 이미 국제적인 유통시장에서 크게 인정받는 우리의 화장품만큼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 직장이 소재한 서울시에서는 2014년에 『서울특별시 국어 사용 조례』를 제정 후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문서 등에서 불필요한 외국어 절제 운동을 벌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실제로는 최근까지도 그 효과가 별로 없었다. 물론 올해 들어서부터는 ‘한글문화연대’ 등 우리말 쓰기 운동 관련 기관으로부터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 결국 대형 플래카드에 아무리 국어를 바르게 쓰자는 문구가 소리 내어 펄럭여도 우리들이 실천하지 않으면 허망한 구호로만 그칠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우연히 어떤 표어 공모전에서 이상하게 축약한 영어와 한글이 섞인 표어가 대상 수상작으로 뽑힌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작품을 보며 그 공모전을 주관하는 기관에서 우리말을 훼손하는 일을 권고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구나 수준 높고 멋진 영어의 감각과 적절히 줄인 우리말의 멋이 아주 조화롭게 구성되었다는 그 심사평에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내친 김에 한국어도 잘 아는 가까운 미국인 친구에게 그 표어를 보여주었더니 무슨 영어 표현인지 모르겠다며 황당해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것이 우리나라 어느 표어 공모전의 대상 작품이란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주시경’ 선생의 최초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는 일본과의 우리말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광복절에 어느 티브이(TV) 프로그램에서 몇 년 전 상영된 그 ‘말모이’를 다시 방송했었다. 나는 우연히 그 방송을 시청하면서 번져오는 우리말과 광복절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물밀듯 밀려드는 외국어 남용은 그것과는 또 다른 방식의 싸움인 것 같다. 전자가 외세와의 싸움이었다면 후자는 더욱 근원적인 우리들 자신과의 정체성 싸움일 것이다. 


  놀랍게도 독일인들에게 독일 역사상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는 ‘프리드리히 5세 대왕’은 평소 자국어인 독일어보다 프랑스어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프랑스인 사상가 ‘볼테르’를 초청하여 프랑스어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누구든 평소 외국어를 남용하고 은연중에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대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법정 공휴일’이 너무 많다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후 ‘한글문화연대’ 등 한글을 사랑하는 단체들의 사명감과 진심을 담은 노력에 힘입어 다행히 2013년부터 다시 휴일을 되찾았다. 나는 당시 한글날 법정 공휴일 폐지는 우리 국민의 영혼을 빼앗는 슬픈 22년이었다고 생각한다. 


  창밖, 능소화가 주홍으로 흔들리며 조금씩 떠날 날을 기다리는 것 같다. 꽃들도 저렇듯 피고 지는 때와 이치를 안다. 우리도 함께 외국어에 대한 오·남용의 유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지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