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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만의 철도 용어 표준화

  • 등록일: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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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만의 철도 용어 표준화

김상철 / 부산교통공사 건설계획처 팀장

	김상철 / 부산교통공사 건설계획처 팀장, 	김철홍 / 부산교통공사 시설사업소 대리김상철 / 부산교통공사 건설계획처 팀장
1997년 부산교통공사 입사 후 부산도시철도 2~4호선 건설 업무를 담당하였고, 지금은 건설계획처 계획설계팀장을 거쳐 공사관리팀장으로 신규 노선의 건설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철홍 / 부산교통공사 시설사업소 대리
2011년 부산교통공사 입사 후 도시철도 계획과 설계를 담당하는 건설계획처를 거쳐 운행을 관리하는 시설사업소에서 근무중이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 처음 건설되었으며, 일제 침략의 기억과 애환이 철도에 함께 깃들어 있다. 철도가 근대사의 생생한 기록인 셈이다. 해방이 될 때까지 일본은 우리나라 철도를 독점 운영하여 식민지 착취와 침략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토가 분단되고 철도마저 갈라지게 되어 우리나라 철도의 규모는 해방 전보다 모든 면에서 반 정도로 축소되었고, 6.25 때 또다시 처절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복구와 재건에 주력하여 오늘날과 같은 철도 수송 체계의 기반을 다지고 기술을 발전시켜 철도를 명실공히 민족의 동맥으로 부활시켰다.

우리나라 철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철도 용어는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청산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2017년 2월 신임 건설본부장께 첫 업무보고를 하던 중 철도 전문용어에 이해하기 어려운 생소한 단어와 일본식 표현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순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용어가 시대에 맞지 않고 철도를 이용하는 고객, 나아가 시민과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철도 용어를 바꿔보자며 부서 직원들과 함께 일본식 표현이나 외래어, 한자어를 추려내기 시작했다.

그간 철도 분야 전문용어의 정비와 순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으나 철도 산업계에서 용어 정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또 중앙정부와 이해관계자가 용어 정비와 순화에 동의하지 않는 등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여 당위성을 얻지 못했다. 표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정책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신규 도시철도 노선의 계획과 설계 업무를 담당하는 나와 김철홍 대리는 2017년 3월부터 일과가 끝난 뒤 철도 용어집을 참고하며 관계 기관에 공문을 보내 자료를 수집하였고 의견조회를 거쳐 총 140개의 단어를 추려냈다. 그러나 철도 용어 순화는 철도산업 전반에 걸친 현안으로, 지역의 건설‧운영기관인 부산교통공사 단독으로 표준화 작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2017년 6월 전국 도시철도 운영 회의에 철도 용어 표준화 추진을 안건으로 올렸으며, 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여러 철도 관계 기관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국립국어원의 자문을 위해 철도 용어의 정의와 사용 예시 등을 설명하며 국어전문가의 이해를 도왔으며, 자문 결과를 반영하여 순화어를 최종적으로 마련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순화한 용어가 공신력을 얻을 수 있는 절차를 찾던 중 국어기본법이라는 법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어기본법에서는 전문용어 표준화 절차 및 보급 등에 관한 규정을 두어 전문용어 표준화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팀원들은 2017년 7월부터 중앙행정기관의 승인을 받으려 여러 차례 세종시와 서울을 오갔다. 철도 용어 표준화 작업을 위해서는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의 전문용어 표준화 협의회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어심의회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국토교통부는 우리의 제안에 난색을 표하였다. 그동안 국토교통부에서 전문용어 표준화 추진 실적이 없어 부서 내 업무 담당이 명확하지 않았고, 부산교통공사에서 직접 심의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적 관련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충분한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수차례 협의를 거쳐 국토부 대변인실 박은주 사무관의 적극적인 협조 약속을 받았으며 다 같이 함께해 보자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2017년 10월 전문용어 표준화 협의회를 위하여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어려운 철도 용어를 순화해야 한다는 뜻에는 모두 공감하였지만, 우리가 제안한 140개 용어를 대체할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과 기술 종사자들만이 사용하는 전문용어까지 순화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빈도와 활용도가 높은 용어를 우선 선정하기 위하여 거대자료(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과거 3년간 언론 보도자료에 많이 나온 철도 용어 16개를 우선 선정하였다. 이후 문체부 국어심의회를 위하여 국토부에서는 대내외 의견조회를 거쳐 전문용어 16개의 순화어를 보완하여 2017년 12월 국어심의회 심의가 개최되었다.

서울에서 열린 국어심의회에는 국어전문가들이 참석하여 순화 용어에 대다수가 찬성하였으며, 16개 중 15개의 용어가 통과되어 최종 확정되었다. 통과되지 못한 용어는 ‘선로용량’이라는 전문용어로 ‘선로이용최대횟수’로 순화하였으나 단어가 길어져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고, 원래 용어의 의미를 모두 담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로용량’이란 ‘선로에서 운행할 수 있는 1일 최대 열차 운행 횟수’를 말한다. ‘용량’을 영어로 표현하면 ‘capacity’라고 할 수 있는데, 기술 종사자들이 사용하는 명확한 기술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같은 현실에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음을 느끼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철도 분야 전문용어 표준화 행정규칙 고시(2018.8.27)>

쉬운 우리말 에이피아이 서비스 이용 안내요청변수명, 형식, 필수 선택, 설명으로 구성된 쉬운 우리말 에이피아이 서비스 이용 안내하는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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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운전교대 운전열차다이아열차 운행 도표공차허용 오차
타행운전무동력 운전역행운전동력 운전퇴행운전후진 운전


전문용어는 특정 학문 또는 직업 분야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기술표준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전문성이 강하고 다양한 학문적 입장만큼이나 용어에 관한 견해도 다양하여 표준화에 합의를 보기 쉽지 않았다. 또한 철도 전문 분야별로 용어가 고착화되어 있고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일반 시민들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국어심의회에서 의결된 용어 15개에 대하여 2018년 초부터 국토부에서는 또 한 번의 대내외 의견조회를 실시하였고, 국어기본법에 따라 행정규칙 제정을 위한 방침 결정, 입안 및 국무조정실 확인 등 내부 행정절차에 들어갔다. 그 결과 8월 말 고시되어 120년 만에 처음으로 철도 전문용어 표준화라는 역사를 남김과 동시에 순화 용어에 대한 공신력을 얻게 되었다.

철도 전문용어 표준화 고시 절차가 진행되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2018년 3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외래어가 법령이나 공문서에 많이 쓰이고 있으니 정부가 나서서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일 것을 대통령이 지시하였고, 문체부가 5월 국무회의 안건으로 ‘공공언어 개선방안’을 내어 범정부적 협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부산교통공사에서 제안한 철도 용어 표준화는 날개를 단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국토교통부는 새롭게 만든 순화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누리집에 국민 참여 행사를 실시하고 철도 관계 기관의 누리 소통망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홍보를 펼쳤다.

표준화 고시된 철도 용어의 보급 및 확산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현실적인 수용성을 고려하여 순화 용어가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기존 용어와 병용, 병기하는 등 철도 산업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또한 이들 철도 용어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철도 전문용어를 장기적인 순화의 대상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순화해야 할 용어를 발굴하여 표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철도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말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 120년 만의 철도 용어 표준화 기사자료
  • 120년 만의 철도 용어 표준화 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