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나누기

어려운 용어 개선, 언어 환경 개선의 밑거름

  • 등록일: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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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용어 개선, 언어 환경 개선의 밑거름

최동주(영남대학교 국어문화원장)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언어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용’ 또는 그 결과이므로, 언어의 변화는 언어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언어 사용’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언어 사용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어휘의 측면에 국한하여 생각해 보자. 이전에 적절한 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혹은 이전에 있었더라도, 새로운 표현이 좀 더 적절하거나 고급스럽게 여겨진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낱말이 만들어질 수 있다. 반대로 어떤 낱말은 그 낱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주변에서 사라지면서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낱말이 대신하면서 화자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적절한 표현의 유무’, ‘표현이 어떻게 여겨지는가’ 등은 곧 언어 사용의 환경이므로, 언어 사용의 변화는 언어 사용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언어 사용 환경은 어떠한가? 최근 ‘우리말약칭제안모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국제기구를 제외한 기구들의 로마자 약칭(ILO, FOMC, WMO, ICAO, BIE...)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지도가 평균 12%에 불과했으며,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을 사용하기를 원한다는 응답자가 71.2%에 달했다. 이는 낯설거나 어려운 용어가 소통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정부나 지자체의 누리집 어느 곳이든 잠깐만 살펴봐도 외국어를 쉽게 찾을 수 있음은 이를 확인시켜 준다.

일상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힐스테이트(HILLSTATE)’, ‘○○캐슬(CASTLE)’, ‘더샵(THE SHARP)’, ‘위브(We've)’, ‘○○스타힐스(STARHILLS)’, ‘○○포레나(FORENA)’, ‘아이파크(IPARK)’, ‘SK뷰(SK VIEW)’, ‘자이(Xi)’, ‘더 플래티넘(The Platinum)’, ‘굿모닝힐(Goodmorning Hill)’... 최근 우리나라 아파트의 고급 상표명들이다.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 혹시 외국어나 어려운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품격이 있어 보이고, 고상하다는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일부의 화자들에게 그러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한 인식이 우리의 언어 사용 환경을 지배하게 된다면, 우리말의 변화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날은 지난 시절에 비해 언어 소통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시급하다고 하겠다.

영남대학교 국어문화원에서는 2022년 ‘정부 공공기관 대상 어려운 전문용어 개선 사업’을 수행하면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과 협업하여 정보 통신 기술 영역의 어려운 용어를 개선하였다. 아직 대체어가 제안되지 않은 용어들이 대부분이나, 국립국어원의 [다듬은 말]이나 ‘쉬운 우리말을 쓰자’ 누리집의 [쉬운 우리말 사전]에 대체어가 이미 제시되어 있는 경우도 포함하고 있다. 다음은 그 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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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트아웃/옵트인’은 대체어가 제시되지 않은 용어로서, 영어의 뜻을 알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해커톤’은 [다듬은 말]에서 ‘끝장 마라톤 찾기, 끝장 마라톤 토론, 끝장 마라톤 대회’로 제시되었으며, [쉬운 우리말 사전]에서는 ‘끝장 토론’으로 제시되었다. 이미 대체어가 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안한 것은 정보 통신 기술 분야에서 사용하는 뜻과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체어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제안된 대체어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는데, 위의 ‘해커톤’([다듬은 말]의 풀이: 마라톤을 하듯 긴 시간 동안 결과물, 결과물 시제품을 완성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당연한 지적으로, 대체어를 마련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용어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항상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팔굽혀펴기’는 ‘엎드려뻗친 자세에서 짚은 팔을 굽혔다 폈다 하는 운동’을 뜻하나, 그 용어에는 ‘자세’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나타나 있지 않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커톤’이라는 말도 ‘hack(ing)+marathon’을 줄인 것이나, 어느 쪽도 그것이 뜻하는 바를 직접 드러내고 있지 않다. 대체어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잘 드러내도록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고려 사항이나, 한계가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려운 전문용어’ 다듬기와 관련하여, 몇 개의 용어를 바꾼다고 해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용어를 다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언어 변화는 언어 사용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이다. 쉬운 우리말 사용을 반갑고 정겹게 여기고, 품격있게 여기는 인식을 확산함으로써 언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언어 사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끎으로써 최대의 효과를 얻는 길일 수 있다. 어려운 용어에 대해 대체어를 제안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례 나누기’와 같은 자리를 활용하여 널리 홍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영남대학교 국어문화원과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협업하여 마련한 대체어들을, 널리 사용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아래에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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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동주

  • 영남대학교 국어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