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나누기

OECD 대신 ‘경협기구’로 WHO는 ‘보건기구’, WTO는 ‘무역기구’

  • 등록일: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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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약칭제안모임, OECD 대신 ‘경협기구’로
WHO는 ‘보건기구’, WTO는 ‘무역기구’

이경우 (서울신문 기자)

지난 6월 16일 우리말약칭제안모임(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의 안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세계보건기구, 세계무역기구의 우리말 약칭을 어떻게 만들어 제안할 것인가’였다.

현재 정부 보도자료와 언론에서는 이 국제기구들의 약칭을 각각 ‘OECD’, ‘WHO’, ‘WTO’로 쓰고 있다. 우리말 약칭을 만들지 않고 각 기구가 쓰는 로마자 약칭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신문에서 OECD는 1960년 5월 22일자 경향신문에 처음 보이기 시작했으니 60년이 넘었다. 하나의 규범처럼 돼 버렸다.

쓰는 방식은 경제협력개발기구를 예로 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을 했다. OECD는 …를 할 것으로 보인다. OECD가 이런 결정은 한 것은…” 같은 형태다. 쉽다고 할 수 없는 ‘OECD’가 계속 이어진다. 제목에서도 짧다는 이유로 ‘OECD’를 흔하게 사용한다. 신문들은 나름 친절한 방식이라고 한다. 처음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라고 쓴다는 게 이유다. 덧붙여 여덟 글자인 ‘경제협력개발기구’보다 네 글자가 적은 ‘OECD’는 경제적이라고까지 한다. 쉽지 않아서 경제적이지 않다는 의견에는 ‘OECD’ 정도면 상식으로 알아 둬야 할 용어라고 답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로마자로 된 약칭에는 생소하거나 본래의 번역어들과 바로 연결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약칭으로 쓰이는 ‘ICAO’를 아는 독자와 시청자, 국민이 얼마나 될까. ‘WHO’는 눈으로 볼 때만 세 글자이고 읽을 때는 ‘더블유에이치오’로 일곱 글자나 된다.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의 머리글자를 딴 ‘OECD’가 상식이고 경제적이라는 건 공급자, 전달자의 시각이다. 수용자 쪽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를 줄인 말이 더 쉽고 경제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건 물어보나 마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우리말 약칭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논의가 모아졌다. 먼저 ‘기구’를 줄일 수 있을까? 국제 단체와 조직들은 대부분 ‘기구’라는 이름으로 번역돼 쓰인다. ‘기구’를 줄이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를 수 있다는 데 의견이 같았다. ’기구’는 살리기로 했다. ‘기구’를 더 줄여 ‘기’로 하는 건 오해할 수도 있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개발’은 빼도 무리가 없다고 봤다. ‘경제협력’을 줄인 ‘경협‘은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을 만큼 널리 쓰이고 있었다. 자연스레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약칭은 ‘경협기구’로 정해졌다. 세 글자인 ‘경협기’도 논의해 보았으나 수용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컸다.

다음은 세계보건기구(원어 World Health Organization). 방송에서는 줄이지 않고 그대로 세계보건기구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발음하기도 편하고 알아듣기도 쉽기 때문이다. ‘보건’은 중심에 있는 낱말이어서 그대로 두는 게 나았다. ‘세계’는 빼도 무리가 없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나라에 같은 이름의 조직이나 단체가 없어서 혼동될 우려도 없었다. 이견 없이 ‘세계보건기구’의 약칭은 ‘보건기구’가 됐다.

세계무역기구(원어 World Trade Organization)의 약칭은 세계보건기구의 방식을 따라 ‘세계’만 빼고 ‘무역기구’로 결정됐다.

약칭제안모임은 내친김에 쉽게 정할 수 있는 국제기구들도 살펴보았다. 그래서 국제노동기구는 ‘노동기구’, 국제해사기구는 ‘해사기구’, 국제표준화기구는 ‘표준화기구’, 국제민간항공기구는 ‘민항기구’,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지재권기구’, 국제수로기구는 ‘수로기구’, 세계관세기구는 ‘관세기구’, 세계관광기구는 ‘관광기구’, 세계기상기구는 ‘기상기구’,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자력기구’, 국제박람회기구는 ‘박람회기구’, 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기구’로 정하고 정부와 언론에 제안하기로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을 했다. OECD는 …를 할 것으로 보인다. OECD가 이런 결정은 한 것은…”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경협기구)는 …을 했다. 경협기구는 …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경협기구가 이런 결정은 한 것은…”이 더 쉽고 전달력도 높아 보인다. 이런 방식을 따르면 정부의 보도자료들은 국어기본법을 어기지 않게 된다. 언론은 쉬운 언어를 써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하게 된다.

이후에 우리말약칭제안모임에서 우리말 약칭에 관한 국민 수용도 조사를 하였다. 조사는 전문 여론조사 기관 티앤오(TNO)코리아에서 맡았다. 이번 조사는 7월 7일부터 7월 13일간 진행했으며, 조사 대상은 전국 각지의 남·여 응답자 1,047명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국민 71.2%는 우리말 약칭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해당 표는 수용도가 높은 순으로 정렬하였는데(왼쪽에서 오른쪽), 세계무역기구(WTO)를 무역기구로 줄여 사용하자는 목소리가 가장 높았다(79.9%).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경협기구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를 지재권기구로 줄여 사용하자는 목소리는 비교적 저조했다(약 60%). 이는 주요 단어의 머리글자만으로 약칭을 지은 영향이라 분석된다. 앞으로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은 앞으로 유엔(UN) 관련 조직,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국제 조직, 새로 설립되는 국제 조직의 우리말 약칭을 만들어 보급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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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경우

  • 서울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