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년 만의 철도 용어 표준화 김상철 / 부산교통공사 건설계획처 팀장 김상철 / 부산교통공사 건설계획처 팀장 1997년 부산교통공사 입사 후 부산도시철도 2~4호선 건설 업무를 담당하였고, 지금은 건설계획처 계획설계팀장을 거쳐 공사관리팀장으로 신규 노선의 건설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김철홍 / 부산교통공사 시설사업소 대리 2011년 부산교통공사 입사 후 도시철도 계획과 설계를 담당하는 건설계획처를 거쳐 운행을 관리하는 시설사업소에서 근무중이다. 우리나라 철도는 1899년 처음 건설되었으며, 일제 침략의 기억과 애환이 철도에 함께 깃들어 있다. 철도가 근대사의 생생한 기록인 셈이다. 해방이 될 때까지 일본은 우리나라 철도를 독점 운영하여 식민지 착취와 침략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토가 분단되고 철도마저 갈라지게 되어 우리나라 철도의 규모는 해방 전보다 모든 면에서 반 정도로 축소되었고, 6.25 때 또다시 처절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복구와 재건에 주력하여 오늘날과 같은 철도 수송 체계의 기반을 다지고 기술을 발전시켜 철도를 명실공히 민족의 동맥으로 부활시켰다. 우리나라 철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철도 용어는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청산되지 않은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2017년 2월 신임 건설본부장께 첫 업무보고를 하던 중 철도 전문용어에 이해하기 어려운 생소한 단어와 일본식 표현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순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용어가 시대에 맞지 않고 철도를 이용하는 고객, 나아가 시민과 소통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 철도 용어를 바꿔보자며 부서 직원들과 함께 일본식 표현이나 외래어, 한자어를 추려내기 시작했다. 그간 철도 분야 전문용어의 정비와 순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으나 철도 산업계에서 용어 정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또 중앙정부와 이해관계자가 용어 정비와 순화에 동의하지 않는 등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여 당위성을 얻지 못했다. 표준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정책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신규 도시철도 노선의 계획과 설계 업무를 담당하는 나와 김철홍 대리는 2017년 3월부터 일과가 끝난 뒤 철도 용어집을 참고하며 관계 기관에 공문을 보내 자료를 수집하였고 의견조회를 거쳐 총 140개의 단어를 추려냈다. 그러나 철도 용어 순화는 철도산업 전반에 걸친 현안으로, 지역의 건설‧운영기관인 부산교통공사 단독으로 표준화 작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2017년 6월 전국 도시철도 운영 회의에 철도 용어 표준화 추진을 안건으로 올렸으며, 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여러 철도 관계 기관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국립국어원의 자문을 위해 철도 용어의 정의와 사용 예시 등을 설명하며 국어전문가의 이해를 도왔으며, 자문 결과를 반영하여 순화어를 최종적으로 마련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순화한 용어가 공신력을 얻을 수 있는 절차를 찾던 중 국어기본법이라는 법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어기본법에서는 전문용어 표준화 절차 및 보급 등에 관한 규정을 두어 전문용어 표준화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팀원들은 2017년 7월부터 중앙행정기관의 승인을 받으려 여러 차례 세종시와 서울을 오갔다. 철도 용어 표준화 작업을 위해서는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의 전문용어 표준화 협의회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어심의회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국토교통부는 우리의 제안에 난색을 표하였다. 그동안 국토교통부에서 전문용어 표준화 추진 실적이 없어 부서 내 업무 담당이 명확하지 않았고, 부산교통공사에서 직접 심의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적 관련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충분한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수차례 협의를 거쳐 국토부 대변인실 박은주 사무관의 적극적인 협조 약속을 받았으며 다 같이 함께해 보자는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 2017년 10월 전문용어 표준화 협의회를 위하여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 어려운 철도 용어를 순화해야 한다는 뜻에는 모두 공감하였지만, 우리가 제안한 140개 용어를 대체할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과 기술 종사자들만이 사용하는 전문용어까지 순화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빈도와 활용도가 높은 용어를 우선 선정하기 위하여 거대자료(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과거 3년간 언론 보도자료에 많이 나온 철도 용어 16개를 우선 선정하였다. 이후 문체부 국어심의회를 위하여 국토부에서는 대내외 의견조회를 거쳐 전문용어 16개의 순화어를 보완하여 2017년 12월 국어심의회 심의가 개최되었다. 서울에서 열린 국어심의회에는 국어전문가들이 참석하여 순화 용어에 대다수가 찬성하였으며, 16개 중 15개의 용어가 통과되어 최종 확정되었다. 통과되지 못한 용어는 ‘선로용량’이라는 전문용어로 ‘선로이용최대횟수’로 순화하였으나 단어가 길어져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고, 원래 용어의 의미를 모두 담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선로용량’이란 ‘선로에서 운행할 수 있는 1일 최대 열차 운행 횟수’를 말한다. ‘용량’을 영어로 표현하면 ‘capacity’라고 할 수 있는데, 기술 종사자들이 사용하는 명확한 기술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같은 현실에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았음을 느끼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철도 분야 전문용어 표준화 행정규칙 고시(2018.8.27)> 쉬운 우리말 에이피아이 서비스 이용 안내요청변수명, 형식, 필수 선택, 설명으로 구성된 쉬운 우리말 에이피아이 서비스 이용 안내하는 표 대상 용어 표준화 용어 대상 용어 표준화 용어 대상 용어 표준화 용어 핸드레일 안전 손잡이 편성 열차 편성/ 열차/대 촉지도 점자 안내도 량 칸 격간운행 감축 운행 주재소 파견소/파견 분소/관리소 열차시격 배차 간격 운행시격 운행 간격 운전사령/ 운전사령실 운행 관제사/ 운행 관제실 승계운전 교대 운전 열차다이아 열차 운행 도표 공차 허용 오차 타행운전 무동력 운전 역행운전 동력 운전 퇴행운전 후진 운전 전문용어는 특정 학문 또는 직업 분야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기술표준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전문성이 강하고 다양한 학문적 입장만큼이나 용어에 관한 견해도 다양하여 표준화에 합의를 보기 쉽지 않았다. 또한 철도 전문 분야별로 용어가 고착화되어 있고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일반 시민들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국어심의회에서 의결된 용어 15개에 대하여 2018년 초부터 국토부에서는 또 한 번의 대내외 의견조회를 실시하였고, 국어기본법에 따라 행정규칙 제정을 위한 방침 결정, 입안 및 국무조정실 확인 등 내부 행정절차에 들어갔다. 그 결과 8월 말 고시되어 120년 만에 처음으로 철도 전문용어 표준화라는 역사를 남김과 동시에 순화 용어에 대한 공신력을 얻게 되었다. 철도 전문용어 표준화 고시 절차가 진행되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2018년 3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외래어가 법령이나 공문서에 많이 쓰이고 있으니 정부가 나서서 우리말 사용에 모범을 보일 것을 대통령이 지시하였고, 문체부가 5월 국무회의 안건으로 ‘공공언어 개선방안’을 내어 범정부적 협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부산교통공사에서 제안한 철도 용어 표준화는 날개를 단 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국토교통부는 새롭게 만든 순화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누리집에 국민 참여 행사를 실시하고 철도 관계 기관의 누리 소통망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홍보를 펼쳤다. 표준화 고시된 철도 용어의 보급 및 확산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현실적인 수용성을 고려하여 순화 용어가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기존 용어와 병용, 병기하는 등 철도 산업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또한 이들 철도 용어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철도 전문용어를 장기적인 순화의 대상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순화해야 할 용어를 발굴하여 표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철도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말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 글번호 :
5
- 등록자 : 김상철
- 등록일 : 2021.10.14
- 조회수 : 1653
-
시민감사관들, ‘경기도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특정감사 김명진 / 한글문화연대 부대표 한글문화연대 등 민간에서 추천한 시민 감사관 8명과 경기도청 직원 8명으로 이루어진 경기도 공문서 합동감사반이 경기도청과 산하 기관에서 작성한 공문서 3만 3천여 건의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실태에 대해 특정감사를 벌였다. 정부 지자체에서는 처음 있는 감사 활동이었다. 감사 결과 46.3%의 공문서에서 외국어 단어와 낯선 한자어, 일본어 투 용어, 권위적 표현 등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내 또는 알림이라고 하면 될 것을 통보, 송부 등으로 쓴 한자어가 53.1%로 가장 많았고, 설명서, 안내서, 지침서 등 충분히 우리말로 쓸 수 있는데 ‘매뉴얼’이라는 외국어로 쓴 경우가 23.5%를 차지했다. 도를 굳이 道라고 쓰고, 先, e-mail, AI 등 불필요하게 한자나 로마자를 쓴 경우는 16.7%였다. 시민감사관으로 참여했던 나는 관공서 최초의 공공언어 사용 실태 감사이자 시민과 함께 벌인 감사라는 점에서 이번 특정감사의 의미를 높이 평가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많다. 신속한 개선, 직원 교육 강화, 조사 범위 확대 등의 후속 작업이 시급하다. 2021년 4월 중순, 경기도청 감사관실에서는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국민에게 어려움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국어기본법의 취지에 따라 정부 지자체 최초로 공공언어 사용 실태에 대한 특정감사를 기획하였다. 이에 국민의 눈높이에서 함께 감사를 진행하고자 한글문화연대 등 민간 국어단체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국어문화원 부원장인 나를 비롯해 4명의 회원, 경기도 소재 한양대 한국어문화원에서 백경미(책임연구원)를 포함한 4명을 추천하였다. 경기도청에서는 4월 30일에 이들 8명을 시민감사관으로 위촉하였다. 경기도청 감사실의 의도가 좋아서 이 일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계획을 들어보니 너무 무지막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서량이 많아서 감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가며 서너 달에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이에 나는 10년 동안 한글문화연대에서 해왔던 공공언어 실태조사 경험에 바탕을 두어 감사 자료 집계 방안을 설계하고 감사 대상 용어 선정을 주도하였다. 5월부터 8월까지 대국민 공개문서와 언론보도 자료 등 총 33,422건에서 감사 대상 용어를 사용한 곳을 1차로 추출한 후 시민감사관이 2차 확인하는 방식으로 예비 감사를 진행했다. 4개 조로 나뉜 시민감사관이 문장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감사 대상으로 삼을지 논의하며 기준을 확정해 나갔다. 감사 결과, 쉬운 말로 바꾸어 써야 할 문서는 총 15,467건(46.3%)이었고, 어려운 용어를 52,265회 사용했다. 가장 많이 지적된 용어 종류는 어려운 한자어(53.1%)였고 그 뒤로 외국어(23.4%), 로마자와 한자 표기(16.7%)가 지적되었으며 이는 전체의 93.3%를 차지했다. 〈 공공언어 순화대상 문서 및 용어 사용 건수 〉 내가 보기엔 안전과 주거 등 도민의 생활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분야에서 어려운 말을 많이 쓰고 있어서 행정의 효율 면에서나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면에서나 문제가 큰 것 같았다. 2021년 17개 광역지자체에서 낸 보도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서도 9월까지 경기도는 외국어 남용 면에서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매우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2015년에 국어바르게쓰기 조례를 제정하였음에도 이런 정도 성적이라면 더 분발할 일이다. 특히, 경기도의 정책명, 행사명, 기관명에서 불필요하게 외국어를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정책명 등에서 쓴 어려운 말은 다른 공무원이 쓰고 싶지 않아도 서로 물고 물리며 어쩔 수 없이 쓰게 하는 물귀신처럼 작용한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일이다. 중앙정부 기관이든 17개 광역자치단체든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에 대해 스스로 감사 형식의 조사를 벌인 일은 경기도가 처음이다. 게다가 민간의 시민과 국어 전문가들을 시민감사관으로 위촉하여 합동 감사를 벌인 일은 국어기본법의 취지를 매우 정확하게 이해한 기획이다. 다른 관공서와 공공기관에서 본으로 삼을 만한 일이다. ※ 경기도 공공언어 바르게 쓰기 시민감사관(8명)
- 글번호 :
4
- 등록자 : 김명진
- 등록일 : 2021.10.07
- 조회수 : 1384
-
한국도로공사, 일본어와 외국어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다. 곽현준 / 한국도로공사 건설계획팀장 곽현준 / 한국도로공사 건설계획팀장1992년 한국도로공사 입사 후 구조물처, 기획조정실, 지역본부 및 건설사업단 등을 거쳐 지금은 건설처 건설계획팀장으로 고속도로 건설사업 총괄 업무를 맡고 있다. 누군가에게 처음 경험은 두 번째 경험과는 사뭇 다르고, 유난히도 깊은 기억의 굴곡을 만든다. 나에게도 건설 현장의 첫날은 유독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현장에서 나눈 대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장에서 처음 들은 일본어는 ‘아시바’였다. 순간, ‘시바’라고 들은 혈기 왕성한 그때의 나는 이를 욕설로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반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시마이, 노가다’ 같은 진작 들어본 말은 기본이요, ‘사시낑, 반생’ 같은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일본어 낱말들의 향연을 맞닥뜨려야 했다. 한마디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이질감도 잠시, 기이하게도 만 1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원래의 우리말이 오히려 생각나지 않았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 건설 현장은 대한민국의 독립 이후 70년이 넘은 현재에도 건설 국어가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채로 있다. 아니, 오히려 일본어 용어를 쓰지 않으면, 현장을 잘 모르는 샌님으로 여기거나 비하하는 일이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언제부터인가는 영어와 한자어까지 범벅이 되어, 건설 현장이 국제시장을 방불할 만큼 다양한 국적의 언어들이 판치고 있다. 얼마 전 개통한 영화 제목 ‘싱크홀’같이 영어 단어 뜻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언어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블로업’, ‘포트홀’, ‘블랙아이스’, ‘램프’ 같은 영어와 ‘나대지’, ‘벌개제근’ 같은 한자어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누구나 문제를 제기하지만, 누구도 오래된 관행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은 하지 못한 채로 건설 현장은 그렇게 70년을 일본어 잔재와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흐름을 바꿔보고자 시도한 게 한국도로공사의 우리말 순화 정책이었다. 건설 현장의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2020년 한국도로협회, 대한토목학회, 한글문화연대 등 고속도로 및 국어 분야 전문가 그룹을 구성하고 그동안 발간된 국어 순화 자료집과 고속도로 설계도서, 도로 분야의 최근 3년간 보도자료 등에서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건설공사 관련 순화 대상 용어를 찾기 시작하였다. 또한 대국민 사전홍보와 소통강화를 위해 2020년 7월 ’전문용어 순화집 이름 짓기’ 공모전을 개최하여 이름 짓기에 2,067건, 외래용어 개선의견 70건의 참여를 끌어냈다. 총 13,800개의 건설 현장 외래용어를 검토하였으며, 건설 현장 순화용어의 공신력 확보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해 국립국어원의 최종 감수를 거쳐 240개의 단어로 구성된 책자 “우리길 우리말”을 발간하였다. 한국도로공사는 위와 같은 고속도로 건설용어의 우리말 순화에 이바지한 노력을 인정받아 2020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에 이어 올해 4월30일 공공기관 중 유일하게 정책소통 유공분야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였다. 그림1. 국무총리 단체 표창(정책소통 유공분야)을 받다 그림2. 국무 총리 표창 시상식에서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왼쪽)과 함께 그러나, 이 정도 노력으로 오랜 시간 굳어온 건설 현장의 일본어 사용이 과연 바뀔 수 있을까? 그러한 의구심이 드는 올해 봄, 국토교통부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대변인실에서 우리 공사의 우리말 순화 노력을 우수하게 보고, 전문용어 표준화 고시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전문용어 표준화 고시’는 국어기본법에 따라 전문용어를 국민이 알기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여 고시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 도로 분야의 전문용어 고시가 된다면, 관련 기준 개정이나 교과서 등에 순화된 용어가 실릴 수 있으니, 우리말 표현의 도로용어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후, 제도는 현재까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도로 관련 공무원, 도로 전문가, 언어 전문가 15명이 한자리에 모여 문화체육관광부에 보낼 도로 분야의 전문화 표준안을 심의 의결하였다. 도로 전문가로는 도로학회, 대한토목학회 등에서 참석하고, 국어 전문가로는 영남대학교 이미향 교수님, 한글학회 리의도 이사님,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님과 국립국어원에서도 참여해주셔서 우리가 추진하는 ‘도로 분야 전문용어’의 전문성과 공신력을 더욱더 공고히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단어에는 도로 전문가의 반대의견도 있었다. 이미 오랫동안 굳어져 사용해서 용어가 바뀌면 오히려 현장이나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어 당장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순간 ‘초등학교’와 ‘오른쪽 통행하기’와 같은 오래된 일본문화 혹은 언어를 바꾼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결국 우리 고유의 것으로 환원시켰으니 말이다. 협의회에서는 일부 단어는 다음에 개정할 때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협의회를 마무리하였다. 다듬은 전문용어는 국립국어원의 검토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심의가 끝나면, 국토교통부의 고시로 행정절차는 마무리하게 된다. 행정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적절한 홍보와 후속 조치가 필수적이다. 한국도로공사와 국토교통부는 다가오는 575돌 한글날을 맞아 널리 홍보하기로 했다. 코로나 상황에도 비대면으로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쉬운 영상 홍보물 제작, 도로 전문가의 인식 개선을 위한 학회 기고, 토목 박람회(Civil Expo) 참여,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 자료 배포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 밖에 건설 현장 근로자들이 바뀐 우리말에 적응할 수 있게 건설 현장 근로자의 출퇴근 앱 알리미를 활용하고, 도로 관련기관에 알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의견 받는 절차를 마련하여 정기적으로 전문용어를 개정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가 계획한 노력을 마무리할 때, ‘그래도 좋은 시도였다’라고 평가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단 하나의 우리말이라도’ 건설 현장과 우리의 삶에 제대로 자리잡힐 수 있는 제대로 된 물결이 시작되길 바란다.
- 글번호 :
3
- 등록자 : 곽현준
- 등록일 : 2021.09.29
- 조회수 : 1770
-
‘Safe Korea’, 이제는 우리말로 약속한다.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아마도 많은 사람이 소방서 벽면에 크게 적어 놓은 이 문구를 본 적이 있으리라. “119의 약속 Safe Korea”, 이 약속은 2006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은 국민제안 공모를 통해 최종 선정된 브랜드 ‘119의 약속 Safe Korea’라는 구호를 소방본부와 일선 소방서 등의 소방기관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구호는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국민 공모전에서 국가 홍보 구호로 뽑힌 ‘다이나믹 코리아’와 많이 닮았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질서가 우리나라에도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가던 때였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와 문화의 빗장이 풀리면서 ‘강자의 언어’인 영어는 모든 분야의 ‘필수’로 자리를 잡았다. 외환위기 직후의 영어 선호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동아줄 잡기였다면 2002월드컵을 거치면서 영어 선호는 자신감에 바탕을 둔 공세적 성취 표상으로 바뀌어 갔다. 이런 사회 분위기 탓이었는지 영어 사용에서는 여야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에 시내버스 체계를 바꾸면서 B, G, R, Y 로마자를 대문짝만하게 버스에 인쇄했고, 2007년부터 노무현 정부에서는 전국의 2,200여 개 동사무소 이름을 ‘주민센터’로 바꾸어갔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는 영어몰입교육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 뒤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영어 사용에 거리낌이 없어진 것 같다. 세이프 코리아 구호는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였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이 구호를 고치자고 두어 차례 소방청에 공문을 보냈었고, 2017년에 “안전용어는 쉬운 말로!” 사업을 하면서도 문제를 제기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외국어 남용 사례에 대처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뛰어다니는 동안 이 구호의 개선에 제대로 힘을 쏟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2019년 어느 국민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분은 공무원 출신인데, 관공서의 영어 남용을 한탄하시면서 그 대표 사례로 “119의 약속 Safe Korea”를 들었다.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2021년 3월에 이분한테서 다시 편지가 왔다. 또 ‘세이프 코리아’ 이야기를 꺼내셨다. 나는 답장을 쓰면서 한글문화연대가 반드시 이 구호를 없애기 위해 나서겠노라고 약속했다. 2021년 4월 9일, 우리는 실태 파악을 위해 소방청에 이 구호를 사용하는지 문의하였는데, 뜻밖에도 이미 구호를 바꾸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2019년 3월 15일 2기 소방청 출범 당시 벌인 ‘소방청 브랜드 슬로건 공모’에서 “국민 중심의 안전가치에 일상의 안심을 더합니다.”라는 우리말 구호를 뽑아 “119의 약속 Safe Korea” 대신 사용하고 있으며, 2020년에 전국 소방서에 우리말 구호로 바꿔쓰라고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지도의 거리보기로 살펴보니 전국 많은 소방서에서 ‘Safe Korea’ 대신 우리말 구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 양주 소방서 설치 전 ▲ 양주 소방서 설치 후 ▲ 의왕소방서 119구급대 전 ▲ 의왕소방서 119구급대 후 그러나 다 바뀐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얼룩처럼 세이프 코리아 구호가 남아 있었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4월 30일 서울시 종로소방서를 시작으로 9월까지 서울, 경기, 강원, 충청 등 ‘Safe Korea’를 사용하고 있는 전국 47곳의 소방서에 우리말 구호로 바꿔 달라고 공문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협조를 부탁하였다. 확실히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뒤처리가 만만치 않은 법이다. 그래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47곳 중 36곳에서 호응해 주었다. ‘하나되는 국민소방, 함께하는 국민안전’(의왕, 구리, 성북 등 소방서 6곳), ‘국민중심의 안전가치에 일상의 안심을 더합니다.’(밀양, 평창소방서), ‘ㄱㄱㄷ경기도 소방’(하남소방서), ‘119의 약속! 안전한국!’(동해소방서), ‘부산을 안전하게 119’(부산북부소방서) 등 17곳의 소방서가 쉬운 우리말 구호로 바꾸었다. 9곳은 우리말로 변경할 예정이며, 10곳은 ‘Safe Korea’를 벽에서 삭제했다고 답을 보내왔다. 소방서는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지라 일일이 실태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 지도의 거리보기로 확인하다 보면 ‘Safe Korea’ 구호가 없던 곳에서 새로 내거는 일도 일어난다. 서울에도 아직 27곳의 소방서와 소방대에 이 영문 구호가 남아 있다. 이제 대학생 연합 동아리인 우리말가꿈이 학생들이 575돌 한글날을 맞아 이 구호를 바꾸기 위해 나선다. 국민이 알아듣는 약속,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약속을 할 때 소방청과 소방대원들의 눈물겨운 헌신은 더욱 빛날 것이다.
- 글번호 :
2
-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1.09.29
- 조회수 : 1345
-
‘키스 앤 라이드(Kiss & Ride)’와 두더지 잡기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작가, 서울시와 경기도 국어바르게쓰기위원, 국토교통부 철도역명심의위원 역임 저서에 <언어는 인권이다>, <한자 신기루> 등 처음 듣거나 보고 이 말의 뜻을 알아챌 사람은 아무도 없다. “키스 앤 라이드”라고 내가 한글로 적었지만 실제로는 로마자로 “Kiss & Ride” 또는 줄여서 “K & R”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는 유흥주점 이름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기차역 근처 찻길 바닥에 이걸 크게 적고 작은 간판도 세워두었지만, 도무지 뜻을 알 수 있는 다른 정보는 없다. 역 주변에 만들어둔 이 공간은 기차 타러 온 사람을 배웅하거나 기차 타고 오는 사람을 마중하러 차를 몰고 왔을 때 잠깐 차를 세워둘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이 말을 처음 접했던 때는 2017년 여름이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한글문화연대 회원 한 분이 신분당선 동천역 앞에 이런 표시가 있는데 도무지 무엇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면서 우리에게 알린 것이다. 마침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안전용어 가운데 어려운 말을 찾아 알기 쉬운 말로 바꾸는 운동을 한창 벌이던 때라 이 제보가 매우 반가웠다. 공공정보에서 외국어를 남용하게 되면 외국어 능력 차이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를 차별할 위험이 있다. 특히 안전용어는 생명을 다루는 말이니 국민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국민에게서 제보받은 용어와 안전 관련 공문서에 담긴 용어 가운데 130여 개를 골라 정부 부처 여기저기에 이를 고쳐 달라는 운동을 펼치면서 그중 16개를 한글날 시민투표에 붙였다. 굿닥, BRT, 싱크홀 등과 함께 ‘Kiss & Ride’도 꼭 바꿔써야 할 어려운 안전용어 5위 안에 들어갔다. ▲ 경기도 고양시 탄현역 앞 ▲ 경기도 광주시 초월역 앞 ▲ 경기도 시흥시 정왕역 앞 ▲ 인천 중구 영종역 앞 우리는 두 차례에 걸쳐 용인시 도로정책과에 개선을 요청하였고, 2018년 봄에 이 표시는 ‘환승정차구역’으로 바뀌었다. 국립국어원에서 ‘환승정차구역’으로 대안어를 내놓았고, 용인시는 이를 따른 것이었다. 사실, 이 용어가 등장하는 국토교통부의 규칙에서는 ‘배웅정차장’이라는 말을 썼었고, 우리는 용인시에 ‘마중주차장’이라는 말을 제안하였지만, ‘마중’과 ‘배웅’이 차를 세워두는 두 가지 목적을 따로 표현하는지라 국립국어원에서는 그다음의 행동과 연결 지어 ‘환승’이라는 말로 두 목적을 다 아우른 것 같았다. 나는 국토부에서 ‘배웅정차장’이라는 말을 이미 제시하였음에도 스스로 ‘Kiss & Ride’를 시민들 보는 도로에 버젓이 표기한 까닭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게다가 ‘배웅’이라는 말은 “떠나가는 손님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나가서 작별하여 보내는 일”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니 어찌 아깝지 않을쏜가. 어쨌거나 나는 이 표시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이 만족하였다. 어려운 용어 때문에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므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아,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글문화연대에서 이끄는 대학생 연합 동아리 ‘우리말가꿈이’ 가운데 2019년 봄에 활동을 시작한 어느 학생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떡하니 ‘Kiss & Ride’가 씌어 있었던 것이다. 사무실에 갇혀 살던 우리 직원들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말가꿈이 대학생 신수호 님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년 동안 이 위험한 안전용어와 씨름하면서 개선 운동을 펼쳤다. 어떤 때는 그 혼자, 어떤 때는 우리말가꿈이 동료들과 함께, 어떤 때는 한글문화연대의 힘까지 합쳐서 새로 생기는 ‘Kiss & Ride’를 ‘환승정차구역’, ‘잠시정차구역’ 등의 우리말 표시로 바꾸어냈다. <바뀐 모습> ▲ 탄현역 앞 ▲ 초월역 앞 ▲ 정왕역 앞 ▲ 영종역 앞 그런데 이 일은 오락실의 두더지 잡기 같았다. 여기서 없애면 저기서 삐죽 솟아오르고, 거기를 없애면 또 이쪽에서 튀어나오고…. 게다가 여기서도 줄임말 남용 경향이 나타났다. 새로 지은 역에서는 ‘Kiss & Ride’가 아니라 ‘K&R’로 쓰기 시작하였으니, 이 정도면 암호 중에서도 암호다. 심지어는 세종대왕의 도시임을 자랑하던 여주시의 ‘세종대왕릉역’ 앞에도 이 ‘K & R’이 자리를 잡고 한글을 비웃는 일이 벌어졌다. 2020년 5월 15일 즈음하여 신수호 님은 비 오는 어느 날 세종대왕릉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1인 시위 중인 우리말가꿈이 신수호 님 ▲ ‘Kiss & Ride’를 줄여 ‘K&R’라고 쓰기도 했다.(세종대왕릉역 앞) 그렇게 수원의 광교중앙역, 고양의 탄현역, 인천의 영종역, 경기 광주의 삼동역, 이천의 이천역 등 수도권에서 17곳을 바꾸어내도록 두더지는 계속 솟아올랐다. 만들 때는 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가 주도하는 것 같은데, 일단 만들어지면 관리 주체가 지자체로 바뀌는 것인지 서로들 떠넘기는 전화 돌리기에 지치기도 여러 번. 2021년 들어 한글문화연대에서는 사태의 뿌리를 뽑기 위해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에게 개선 요청 건의서를 보냈으나, 국토교통부 법규를 바꾸지 않는 한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2021년 2월 초에 한글문화연대에서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에게 이 사안에 대한 감독과 개선 관리를 요청하였다. 2021년 3월 12일에 국회 교통위에서는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에서 강릉역 등 18곳의 표기를 바꾸었고, 앞으로는 우리말로 시설을 하겠다는 답을 받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이제 두더지 잡기는 끝난 것이다. 이게 나의 또 다른 착각이 아니길 빈다.
- 글번호 :
1
- 등록자 : 이건범
- 등록일 : 2021.09.02
- 조회수 : 1805